잎맥의 결을 그대로 살리며 겸손하게 내리는 비가 난 반갑다.
비는 도심에도 내리고 시골에도 오지만 시골 단층의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내겐 정겹다. 시골에서 비를 맞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시간이 한몫하리라.
요즘은 서정적인 감성보다는 현실적인 물욕을 기준으로 비를 반긴다. 가령, 내 뜰을 채운 꽃들과 상추, 배추, 들깨 같은 채소를 생각하며 조용조용 내려오는 보슬비를 선호한다. 바람을 세차게 몰고 오거나 굵은 빗줄기로 내 뜰의 식물들을 후려치듯 내리는 너무 대찬 비는 하늘로 되올려 보내고 싶다.
강아지풀의 몸짓을 따라 가만가만 키 작은 풀의 귓속말을 들어주며 속삭이듯 내리는 비를 반긴다. 초록 잎이 짓이겨지거나 흐트러지지 않도록 잔잔하게 내리는 비가 그냥 고맙다.
햇빛이 연일 쨍쨍한 날은 뜰에 물을 먹여주는 일이 시답잖을 때가 있다. 그땐 내가 뜰안의 꽃들보다 먼저 가뭄을 탄다. 갈증을 느낀다.
비가 와야 할 텐데, 왜 비가 안 오지, 하며 만만한 구글이만 부른다. 헤이, 구글, 오늘 날씨 알려줘. 하면 구글이는 눈치코치 없이 오늘 칼키의 날씨는 화창하겠습니다,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오늘 칼키의 날씨는 비가 내리겠습니다, 하는 날엔 비가 오기 전에 내 몸안이 먼저 촉촉해진다. 하늘을 하루 열두 번씩 쳐다보며 아직 오지 않은 비를 기다린다. 그때마다 비 소식을 전해준 동그란 구글이 얼굴이 몹시 기특하게 여겨진다. 몇 시쯤 비가 오느냐고 물으면 오후 7시쯤 비가 올 거라는 나의 구글이는 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영특하다.
정신을 차리고
아날로그로 돌아오자.
파란 열매가 빨갛게 익을 만큼, 나무의 생명을 온전히 보전하려면 비가 흠뻑 내려줘야 한다.
매일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호스를 옮기며 아무리 알뜰히, 내가 먹여주는 인공수로는 뭔가 10프로 부족하다. 비와 나무가 조우하여 나무의 몸속에서 함께 물관을 회전하면서 에너지를 장착하여야 열매는 빨갛게 여물고 땅 밑에서 새싹은 비로소 움을 튼다. 파르라니 한 고개를 내밀어 새 생명을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땐 땅속 씨앗들이 흙의 표면적을 뚫지 못한다. 하나의 생명체로 기어이 땅 밖으로 나오기엔 영양결핍이다. 기꺼이 비가 내려 비를 흥건히 맞은 씨앗이어야 제 껍질을 깨뜨릴 수 있다. 비가 강림할 때 들려주는 빗방울의 비트를 듣고 싹들은 일제히 땅으로 터져 나와 우리에게 파릇한 예쁨을 선사한다. 내 뜰의 식물을 돌보면서 난 수십 번 그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아무리 물을 퍼붓고 퍼부어도 자연과 자연끼리의 긴밀한 담합을 이기지는 못했다.
비는 식물들에게 생명수다.
비로 인해 열매가 푸지게 잘 익는다.
뜰안으로 반가운 손님처럼 오는 낮은 빗소리는 그냥, 정겹다
칼리 할매네 고추나무 한 그루의 붉은 자손은 청명 하늘 별마을만큼이나 총총총.. 못 셀 정도로 하고많다. 할매랑, 그 댁 딸네랑, 그 댁 이웃인 내가 돌아가며 추수했다. 캬, 대박 났다.
지붕 위를 두드리는 빗방울의
비트로 고추는 잘 자라고 발갛게
익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