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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Sep 19. 2022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냥저냥 웃고 넘어 갈랍니다

- 칼리 할머닌 호주 스타일 •5


2022. 9. 15. 목 오후 두 시



칼리 할머니는 시간 지킴이다. 두 시에 찰카닥, 하고 우리 집 철문의 걸쇠를 직접 따고 들어오거나 내가 먼저 그 문을 열어놓거나 한다.

할머닌 비니 모자의 맨 아래쪽 밴드 부분을 좀 삐뚤빼뚤하긴 했지만 완성해서 오셨다.

하지만 위쪽 머리 부분 무늬는 여전히 헤매신다.

팔순의 할매, 요 며칠 산이 올라와  몸이 편치 않으시다. 그래도 아 임 오케이, 돈 워리, 하시며 열심히 내 손동선 느라 갸우뚱하는 새마냥 할매의 목을  빼고 엉덩이를 조금 들어 올리면서까지 뜨개질의 모자 위쪽 패턴을 배우려 온갖 곡예를 다 하신다.

우리 칼리 할매 이러단 오늘 저녁 몸살 나실까 봐 살짝 걱정이 되었다. 주제를 다른 데로 돌려야 했다. 할매  안정 절실했다.




난 할머니의 뜨개질을 받아 뜨면서 어제  U3A 문화센터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하나, 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제 문화센터에서 벨누가 자기 집 베란다 탁자에 '레터스 리브즈'를 놓고 갔더래. 누군가 싶어서 옆집 가서 물어봤어. 혹시 너가 '레터스 리브즈' 갖다 놓았어? 아니. 벨은 친구한테 전화해서 혹시 '레터스 리브즈' 갔다 놓았어? 아니. 그러다 결국엔 자기 브라더가 '레터스 리브즈'를 놓고 갔더.



난 그때 '레터스 리브즈''편지 잎', 이라는 낭만적인 잎으이해.  평소에 무척 친절하고 나에게 뭔가 도움을 주려는 노력이 여실히 보이는  벨에게 물었. 그땐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옆에서 빅브라더 같 매들  수십 개가 움직이니까.

 '레터스 리브즈'가 무슨 색이야? 오렌지 색이야? 커?

사실 난 그때, 그녀가 말한 '레터스 리브스'라는 커다란 잎사귀 상상했다. 한국에서 아침 까치소리가 그러하듯,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거나 뭐 대한 행운을 주는 멋진 잎사귀로 만한 착각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 그 잎에 대하여 내 딴에는 좀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고 싶었다.

근데 벨이 말했다. 레터스, 내가 말했다. 응 Letters.

아니, Lettuce, 구글에 한 번 쳐 봐. 

그러고 보니 이 나라 상추는 온갖  다 달고 있었다. 셀렉트 상추,  코스 허트 상추, 아이스 버 상추라고! 보아하니 상추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을 붙여놓았다. 오 마이 갓! 이 부끄러움을 어쩔 거야. '상추 잎'을 '편지 잎'으로 오해했으니. 




 슈퍼에서 사 먹거나 우리 뜰에도 키우는 상추, Lettuce가 내 귀엔 Letters로 들어와 버렸으니! 나의 배은망덕 영어여, 내가 얼마나 너를 나의 달팽이 관에 꼭 붙잡아 넣으려고 온갖 노력 다 했는데!

하지만 나는 마지막 말은 발설치 않고 다른 데로 주제를 돌렸다.





우선 벨한테 폰에서 찾은
사진 몇 개를 보여줬다.
이번엔 옆집과 우리 집 사이에 세워진
펜스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틀 전 나의 옆집 치과의사, 그녀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자기 쪽의 펜스가 노후화된다며 저 우든 펜스를 컬러드 양철 펜스로 바꾸자고 하는데, 난 전혀 바꿀 생각이 없다. 우리 집이 11살이니까 지금 적당히 오래된 이 펜스가 난 좋다. 연 친화적인 느낌이 무 좋다. 쇳소리 나는 양철보다  우든 펜스 감촉과 시각적인 면에서 백번 선호한다.

그런데 옆집 치과의사가 자기가 경비를 다 될 거라며 다시 레터를 보낸 걸 보니 엄청 바꾸고 싶나 , 래서 어떻게 대답을 할지 고민 중이라고 벨한테 속을 털어놓다. 혹시 두 가지의 펜스를 나란히 세우면 어떨까, 하고 내가 한 마디 덧붙이자 그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하이스쿨 교사 출신  할매, 펜스 pence, 아니고 휀스 fence, 라며 발음 교정부터 먼저 들어가신다. 그래도 나의 입술과 혀와 턱뼈는 한빵에 고쳐지지 않는다. 강하다.

여하튼 친절하고 고마우신 벨 할머니, 나에게 NO, 하란다. 노, 하면 그쪽에서 페인트 칠을 하든지 곤충이나 꽃 같은 것을 설치할 수 있을 거라 한다.  난 할매의 한 마디에 용기를 얻었다. 그래도 하루 더 생각해보려고 아직 답장을 보내진 않고 있다.




내 이야기를 방금 들은 칼리 할머니 치과의사, 그녀의 레터를 보여줄 수 있냐물었다. 레터와 펜스를 직접 본 칼리도 "유 돈 해브 투 체인지 뎃", 이라 했다. 우든 펜스가 도 좋을뿐더러 문짝들 틈새로 통기도 시원하게 잘 된다 하셨다. 그리고 자기도 컬러드 양철 펜스는 답답하게 꼭 갇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하지 않는다 하셨다.





내가 읊은 두 주제의 토리 사이에서 우리의 비니 모자 뜨개도 그 사이 살이 붙어있었다. 나는 위쪽을 나중에 떠드린다 하고 옆으로 밀쳐놓았다. 대신 할매가 좋아하시는 꽃 패턴을 한 단 계, 두 단계, 세 단계까지 가르쳐 드렸다. 칼리 할매, 생각보다 엄청 빨리 습득하시니 너~무 기뻐하신다. 콧노래가 라라랄 하고 절로 나오셨다. 행이다. 내가 유 아 퍼펙트! 했더니 칼리 할매 우스워 죽겠다.



왜냐고요? 나의 퍼펙트 발음은 수십 번을 배워도 늘 제자리걸음이거든요. 콩글리쉬에 가까운 발음인가 봅니다. 아무리 배워도 원어민 발음 못 따라갑니다. 직히  지금 칼리 할머니  뜨개질 흉 볼 처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냥저냥  넘어 갈랍니다. 웃다 보면 언젠간  영어 늘겠지요. 칼리 할매 뜨개질 솜씨처럼요.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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