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네 Feb 08. 2023

어쩔까나 내 명품가방


2020. 6월에 영국에서 소포가 왔다.




마침 딸이 집에 있었다. 다행이다. 나 혼자 있었으면 놀라서 혼절했을 텐데. 두 딸들이 지에미 몰래 명품백을 환갑선물로 신청해서 배달된 거였. 코로나로 인해 호주까지 오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난 그리도 비싼 걸 왜 인터넷으로 사냐고 역정 내는 척, 하면서도 속으론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사실, 명품이란 단어는 내 사전에 없는 품목이었다. 그렇다고 저렴한 것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저 수수한 걸 먹고 입고 들고 다니는 게 세상 편하다. 대신 교육비는 쓸 땐 썼다. 아이들 책과 학원비와 나의 책을 많이 샀다. 필요하면 아낌없이 들였다. 분당에서 아파트에 살 때 거실 한쪽 벽이 문학서였다.


해외로 이사할 때 산더미 같은 그 책을 처분하느라, 오른쪽 팔 인대가 나가서 아직까지 말썽이다. 그래도 다른 것도 아니고 책 치우느라 아파서 다행이다. 왜냐하면 난 책을 몹시도 자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이 밉지도 질리지도 않았다. 히려 로 인해 인대가 늘어진 팔이 명품이 된 듯했다.


누군가 명품을 입고 다니는 건 부럽지 않았다. 책이 많은 집에 가서 우리 집에 없는 서적을 보면 그게 부러웠다. 그땐 책 많은 집주인이 명품으로 보였다. 또 하나 다행이었던 건, 우리 집에 책이 많았으니까 난 책을 읽고, 책으로 공부하고, 책을 가르치고, 내 쓰느라 바빴다. 그래서일까. 우리 아이들한테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거의 안 하고 키웠다. 가 그냥 공부를 했다. 왜 그랬는지 소상히 모르지만,  우리 집 명품은 아이들이라고도 칭 빠와 일찍 사별한 아이들 기를 살려주기도 했었다.




어쨌든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살아가는 의 방향을 많이 바꿔놓았다. 환갑여행을 못 가서 명품백을 받은 까닭도 코로나 때문이었다.

딸들한테 영국발 명품백을 받은 지 어언 3 다 되어간다. 작년에 홍콩 갈 때도, 시드니 갈 때도 난 명품백을 안 고 갔다. 3년 동안 내 옷장의 깊숙한 곳에 신줏단지처럼 모셔놓고만 있었다. 어느 날 자다가 생각하니 명품백을 선물해 준 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번 브리즈번 여행에 명품백을 들고, 아니 모시고 갔다. 강보에 고이 싸서 자동차의 고귀한 뒷좌석에 사장님처럼 앉혀서 여행을 다녔다. 여름이라 차 안이 더워질 것을 감안하여 숙소에 들어갈 때는 명품백부터 가장 시원한 자리를 찾아서 애지중지 앉혀드렸다. 4박 5일 동안 강보도 못 풀고 애면글면 모시고만 다니다가, 그대로 귀가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깊숙한 명당다 다시  모.


어쩔까나, 나의 명품백.




이전 19화 나이테가 없는 호주 나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