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미가 외사랑만 하던 외손주 재영이가, 며칠 전에는외할미한테 전화를 해야 한다고 하더란다. 그런데 유치원에서,스쿨레디니스 SchoolReadiness라고, 학교 가기 전에 익혀야 하는 글씨를 배우느라, 소위 공부하느라 낮잠을 못 잔단다.그러니 초저녁부터 잠나라에 들어 통화를 못한다니, 외할미로서는 매우 아까웠다. 굳 찬스를 놓쳐버린 것 같았다.
2018년도 1월에 태어난, 외손주가 5개월 차부터 2020.3월까지 입주 베이비시터를 하다가( 이 기간 중 1년 6개월만) 외할미집으로 돌아왔으니, 외손주와 멀리 떨어져 산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2년 만에야 외손주를 보러 갔었는데 훌쩍 커버린 우리 아가, 그래도 외할미를 알아보고 꼬옥 안겼다. 그날 밤은 외할미랑 꼭 껴안고 자고, 이튿날부터는 지부모랑 자게 했다. 행여 할미가 떠나고 나서 지난번처럼, 할미가 그립다고 문 앞에서 울고불고할까 봐, 어른들은 지레 겁을 먹어서였다.
올부활절엔 외손주가 외할미네로 왔다.
다섯 살 3개월 차, 내 생애 첫 외손주가 공항 맞이방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얼른 재영아, 하자 훌쩍 자란 우리 강아지, 외할미를 향해 껑충껑충 달려오더니 와락 안겨 올라온다. 외할미는 다 큰외손주를 얼싸안고 얼굴에다 뽀뽀를하고 얼굴을 부비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재영아, 외할미는 우리 재영이 엄청 보고 싶었어, 하자 생글거리는 울외손주, 나도 엄청 보고 싶었어, 하면서 고 보들보들 떡국같이 하얗고 작던 손으로, 외할미 목을 꼬옥 껴안았다. 그렇게 와서 사흘을 외할미집에서 놀다 간 재영이가, 어쩐 일로 외할미한테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하더라니, 외할미는 가슴이 뛰었다.
토요일 아침에 페이스톡이 걸려왔다.
아우, 반가운 나의 외손주들, 재영아, 재윤아, 잘 있었어? 재영이가 대답했다. 응 잘 있었어. (......) 우린 얼굴을 마주 보며 그래도, 몇 마디 인사를 서로 주고받았다.그러더니 울외손주, 이런다. 근데 너(영어를 더 많이 하는 외손주에게 타인은 다 너로 통한다.) 거실에 장난감 다 치웠어? 응, 이모가 다 정리했지. 나중에 재영이 재윤이 오면 주려고 잘 보관해 놓았지, 하고, 난생처음 꼬맹이 외손주의 전화를 받은, 신이 난 외할미 말이 좀 많았다.재영이 이번엔 또 이런다.
근데, 너 자동차는 어디 있어?
난 바빴다.집안에 장난감 자동차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먼저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갖고 놀던 이모가 조립해 놓은 자동차를 비춰주었다. 아니, 그건 그린이잖아, 그거 말고 블루말이야. 꽤 어려운 질문을 받게 된 외할미는 진땀을 조금 흘리며 시렁에 얹어둔 자동차 박스를 겨우 내려서 블루카를 꺼내어서 보여주었다. 재영아, 이거? 하자, 응, 맞아, 그거야. 블루카.
아, 그렇구나. 외할미가 잘 보관해 둘게. 외손주의 블루카.
그러고 보니 우리 외손주, 블루카 안부가 궁금해져서 외할미한테 전화를 했었구나. 외손주의 외할미, 좀 섭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똥강아지들이 언제나 그립고 귀하고 구엽고 이쁘기만 한 외손주의 외할미니. 내리사랑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