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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May 08. 2023

그녀의 가든에서 솎아 온 귤이 달다


그녀가 사다리에 올라가 꼭대기에
달린 귤을 똑똑 땄다.



나는 오렌지 색 이쁜 귤들을 받아서 하얀 비닐봉지에 다담다담 담았다. 귤이 다 익어버린 귤나무 잎들은 아직 짙은 초록이었다. 짙은 귤색도 귤색이지만 내 손안에 들좋은 크기로  자라 있었다. 탱자보다 조금 더 굵은 작은 알도 있었, 동그지르 한 굴이었다. 정원에서 자란 귤 치고 맛도 달고 즙도 풍부했다. 신선삶은 계란껍데기가 그하듯, 나무에서 갓 딴 그녀의 귤도 맨손톱으로 껍질을 벗기기가 어려다. 칼집을 내어 귤껍질을 까먹는 일 신하고 거웠다. 귤향이 짙었다.



며칠 전 영어교실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나무 꼭대기 쪽에 달린 귤이 더 달고 즙도 많며, 같이 따서 가져가라 했다. 금방 두 봉지가 가득 채워졌다. 1년 전 영어반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다가, 내가 그만두면서 소식을 주고받지 못했었다. 서로 마음이 잘 통하던 사이라 가끔 생각이 나곤 했지만, 내가 너무 무심했다.  의 나다. 나 자신의 재를 헤집어서 누군가에게 톡이나 전화를 선뜻, 하지 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 들어 그런 일들이  감응 없다. 그런 내 자아가늠해 보고 존중하는 일 다. 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서 마음앓이와 몸앓이를 깊게 하고 러는 내 자아, 밉지만은 다. 


어쨌든 그녀도 그러다 다시 만났다. 1년 전보다 낯빛이 맑아진 그녀에게 난, 너 얼굴이 더 좋아졌네, 했더니 싱긋 웃었다. 나보다 대여섯 살이 어린 그녀 쉬는 시간에 내 자리로 슬며시 다. 작년 12월에 2년 정도 함께 살던 그녀 파트너, 남편이 사망했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작년 초에 누자와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점심을 먹을 때, 파트너가 아프다더니, 그가 속절없이 떠나갔다. 난 어리둥절했다. 자기 나라에서 만났다는 호주남자를 따라와 국적을 바꾸려던 찰나에, 그의 생 붙잡지 못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집도 컸고 정원도 넓어서 귤나무뿐 아니라 레몬, 아보카도, 망고, 복숭아나무가 집을 빙 둘러 푸르게 자라 있었다. 분홍색 복숭아꽃은 계절을 거슬러서 햇빛 아래서 환하게 피어있었다. 


마당의 복숭아꽃이 떠난 그가 남긴,
그녀를 위한 특별한 꽃다발 같았다.




커피를  내가 만들어간 콘프레이크 비스킷을 곁들여 왔다. 그리고 녀가 뜨개질한 것과 작업 중 편물내어와 보여주었다. 어릴 적에 자기 어머니가 뜨개질을 하셔서 그때 뜨개질을 배웠고, 외로 수출까지 했다는 그녀, M은 뜨개질박사감이었다. 내가 자랑스럽게 내놓던 이불뜨개질은 물론이요, 빨강 조끼, 자주색 티셔츠, 연두색 조끼... 의 편물들은 방직공장에서 갓 나온 제품 같았다. 드디어 나를 능가하는 뜨개질 박사가 나타났다. 나는 그런 그녀가 신기하고 대견하고 반가웠다. 내가 원하면 뜨개질하는 방법을 뭐든지 다 가르쳐줄 거라 했다.


 그뿐인가. 이역만리 피붙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자기 혼자 못 산다고 했다. 마음이 추슬러지고 주변 정리도 되면 다른 남자를 만날 거라고 담담히 말했다. 아프지 않고 마음씨 좋은 남자를 만날 거라는, 이 여인이 난 갑자기 든든해졌다. 지극히 현실적인 그녀 말이 꼭 맞는 어여쁜 새 옷 았기 때문이다. 난 정어미라도 된 듯, 불현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있었다. 단 한 번뿐인 그녀의 생인데, 쓰잘 때기 없이 무겁게 살면 뭐 하나 싶었다. 난 혹시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너무 급하게 만나지 말고 시간을  두고 만나보라고 해보았다. 그녀도 맞다며 그런다했다.


집에 돌아와서 귤 한 봉지와 레몬 두 개는 옆집 칼리할머니네로 나눠드리고, 그녀가 캐고 잘라준 라벤더, 토란, 부추, 허브를 나의 정원 여기저기에 심었다. 색이 고운 코스모스와 금잔화 씨앗도 공터와 화분에다 흩뿌려 두었다. 녀의 꽃씨가 땅을 뚫고 나와 환한 꽃을 피울 때, 그녀의 삶도 점차 환해지길 바랐다. 자기 나라에서 국제학교 선생을 하다 왔다는, 그녀가 준 귤에다 또, 칼집을 살짝 내어 싱긋 웃음을 머금고 귤 두 개를 까먹었다. 전히 귤향이 향긋했다. 노동 후 귤은 엄청 더 달고 시원했다. 기농인 이 껍질은 말려두었다가 차로 우려 마셔봐야겠다.


그 사이 그녀의 문자가 와있었다.
방문과 선물 고맙다고.


내가 만들어 간 콘프레이크 비스킷과 그녀가 따준 귤, 레몬, 그리고 각종 꽃씨들과 모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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