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mm 정도라는 벼룩 몸에는 탄성 좋은 특이 단백질, 레실린이 있어 점프력이 대단하다고 한다. 제 몸의 150배까지 뛰어오를 초능력이있다. 사람으로 치면 63 빌딩을 뛰어오름과 같다니, 내 몸에레실린을 지닌다면 스파이더맨이 안 부럽겠다. 그래서 벼룩벼룩하나. 벼룩도 얼굴이 있지, 차라리 벼룩 간을 내어 먹어라, 같은 속담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오늘 내게 쑥 들어온 말은, "뛰어봤자 벼룩"이다.
영어권에서도 우리 집에선 세종대왕께서 편찬하신 한글을 밥먹듯이 사용하듯, 우리 집 부엌용품도 한글적이란 사실을 며칠 전에 확인했다. 옆집할머니에게 받은 레시피를 보고 "콘프레이크 n 레이즌 비스킷 Corn Flak & Raisen Biscuits"을 만들려니, 마뜩한 호주식 부엌용품이 없었다.
우선 오븐용 쿠키판이 없었다.
10년을 살아도 시어머니 성씨를 모른다더니, 쿠키판은 아주 납작한 사각트레이를사용한다는 걸, 호주생활 16년 만에야 알게 되었다. 집안에서는 주야장천 한국말만 일삼았듯이, 내 부엌에서도 한결같이 코리언쿡만 해대었기 때문이다.언제나 쿠쿠밥솥이 터줏대감이 되어 우리 집 부엌을 든든히 지켜오고 있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호주식 퀴시만 해 먹었던 터라,머핀용 트레이 하나 달랑 있다. 요즘은 그것도 사용하지 않아서 세수한 듯 말끔하다. 이 나라 부엌시스템, 스토브 아래 세트로 붙어있는 오븐은 7년 전 이사 오고 한 번도 사용한 흔적이 없으니 닦은 적도 없어, 오븐기의 어설픈 몰골에서 쌩, 찬바람이 느껴진다. 오븐의여닫이문 유리벽엔 오랜 얼룩이 세수 안 한 촌할머니얼굴 같다.
한국에서 이역만리까지, 아이들 교육 때문에 왔다고는 하지만, 너무 오래 한국음식에만 코를 박고 살아온 것 같다. 슈퍼마켓이나 베이커리숍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빵과 파이를 사 먹기만 했다.
어느 생물학자가 벼룩을 높이 1m의 투명 병에 넣고 뚜껑을 덮어놓았단다. 그토록 잘 뛰어오르는 벼룩은 최대 1m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한참 후 뚜껑을 열어놓아도, 1m에 적응되어 버린 벼룩은, 더 이상 높이까지 뛰어오르지 못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한계치에 감금되어 있었다. "뛰어봤자 벼룩"이라는 속담이 그래서 생겨났다.
이 말이 나를 위해 나온 말 같았다.
조만간 오븐을 사용해 봐야겠다. 뒷전에 물러나있던 오븐을 청소하여 오븐과 친교를 도모해 봐야겠다. 따끈한 오븐에최적의 온도를 맞춰서 빵 굽는 냄새를 솔솔 풍겨봐야겠다. 고소한 쿠키도 구워봐야겠다. 밥과 국냄새 사이로 빵향이 풍기도록 빵을 쿡해봐야겠다. 1.1m, 1.2m... 그러다 2m를 훌쩍 뛰어넘는 벼룩이 되어봐야겠다. 꿈을 넘본다는 일은 뭔가를 창조하는 일이다. 그래, 오늘 밥순이가 내일 빵순이를 넘보니 하마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