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아프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우리 집 환경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선출직 동네구장아버지가 있어 시골에서 그래도, 사람들이 모이고 물질이 풍요하던 집에 점점, 사람과 물질이 말라갔다. 내가 공무원이 되었을 때도물컵이 따로 없었다. 밥풀이 묻은 밥그릇을 숭늉으로 휑궈가며 물을 마셨었다. 그게 난 물 마시는 정석인 줄 알고 살았었다. 가만히 돌아보니 그나마 철이 없어 다행이었다. 살림살이가 궁한 줄도 모르고 마냥 웃고 살았더랬다. 더 다행인 건, 아궁이에 밥을 하고 아직 남은 잔여불에데워진 숭늉은, 늘 구수하고 따스했다. 집안 살림을 잡고 있는 안주인이 없으니 살림살이가 그만큼 궁해있었으나, 난 그것도 모른 채 명랑하게 자라났다. 80년대 초였나. 아버지와 둘이 살던 어느 날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사과주스를 따러 줄 컵이 없었다. 옆집 전이네 가서 파랑 빨강 플라스틱 컵, 두 개를 빌려왔다.귀한 손님한테,시오리 길을 걸어가서 사 온,소중한 음료를 대접하였었다.
요즘 우리 집에 컵이 넘쳐난다.
내가 매일 마시는 커피잔만 해도 세 개다. 네 개는 방문할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 우리 집 손님을 위하여 따로 갈무리해 두었다. 그뿐인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산타가 그려진 컵은 딸을 위한 컵이다.호호 hoho가 그려진게 내컵이다. 우린 서로의 잔을 뭔가 색다른 액체로 바꿔가면서 가득가득 채운다. 쨍그렁, 하며 서로의 컵을 맞닿게 하고 서로의 잔을 비우기도 한다. 그 외에 수많은 종류의 물컵은 물론이요, 심지어 아이스크림 컵까지 있으니 우리 집은 컵 부자가 되어있다. 요즘은 팬트리가 복잡하여 컵구입을 망설인다. 컵이 빈한하여 플라스틱 컵을 빌려와서 손님맞이를 했던, 그때도 웃음을 달고 살았었다. 지금은 컵의 수량이 그때의 50배는 더 늘어났으니, 오늘부터 50배는 아니더라도 5분의 1로 퉁쳐서, 10배는 더, 기쁨과 행복과 평화를 오래 누리며 살 일만 남았다. 얼마나 다행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