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만리 뚝 떨어져 살면서 내 나라 사람들을 안 만난다니까, 의아하게 바라다보았다. 그녀는 며칠 전다른 영어교실에서 알게 되었다는, 내 고국의 사람 이야기를 자신의 내면 가득 쟁이고 온 것 같았다.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와나눠보고싶어 했으나,나로부터 잔잔한 거부반응을 인지한 그녀, 물끄러미 한 눈망울 속에 실망한 표정이 여실했다.
나 그 사람 몰라, 난 여기서 한국 사람 잘 안 만나, 하는 내게, 그녀의 어눌한 영어가 더 더듬거려지면서, 왜? 너네 나라 사람을 안 만나니? 하고 물었다.이럴 때는 그저, 그녀의 말을 조신하게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끄덕했으면, 이 난망한 상황을 모면했을 텐데,구렁이 담 넘어가듯 일이 스므스하게 지나갔을 텐데.그런데이때껏 살아온내력으로는 그게 잘 안 되는 게 또 나다.사람맘이 변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핑계를 업고 난, 오늘도 이런 일에서 경계를 분명히 짓는 나를 고수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 속에 있는 진실을 그대로 내보이지 않으면, 그 후에 후회하고 만다. 정직해서라기보다는, 지금현재, 사실을 있는 그대로의 나를발설하지 않으면, 내머릿속이 복잡 미묘찜찜해진다. 점차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두통이 올 확률도 있으니, 나 스스로 조바심을 잠재우며 진실을 말한다. 이후부터, 사실 아닌 것들을 몇 겹 씩더께 입힐 자질이 내겐 없어서 그런 이유도 있다. 그래서 이때는 대범하게 지르는 게 가볍다. 응, 난 여기 와서 이 나라영어와 여기 문화를 좀 더 깊숙이 배우기 위해서 우리나라 사람들 잘 안 만난다며, 가차 없이 확실한대답을했다.
그런데, 어쩌나.
며칠 전 알게 된한국인 그가 가르쳐주었다는, 터키녀 그녀가 한국말이라며 내앞에 내보인이 단어, [dangin, 당인?]을 가리키며 이 말 아냐고, 다시훅 들어온다. 난 아무리 골똘히 머리를 굴려도 이 말을 모르고 만다. 돌이 된 내 머리가혼미해진다. 한국인이 한국말을 모르다니. 이처럼 가끔은, 설상가상으로 예상치 못할 나쁜 일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 일을 어쩔까.스위티라며, 나보다 스무 살은 영한 그녀낯빛이 조금씩 꾸깃해진다.한국말 '당인'이 영어로 '스위티'라니, 갈수록 난감하다.당, 설탕만 자꾸 떠올랐다. 한국인인 내가아무리 골똘히,보고 또 보아도, 말이 안 되는 한국 말을 지금, 터키녀 그녀가 말하고 있다.내가 지속적으로 모르기만 하니 그녀는 스위티, 스위티, 하며 거듭 주지 시킨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토록 실망할 줄은 난, 꿈에도 몰랐는데. 그녀 몰래 내 가슴이 좀 쿵덕대고 내 안의 내가 내게 구시렁거린다. 한국사람을 이야기하려고 나한테 반색을 하며 다가온 그녀였는데, 내가 첨부터 맞장구만 잘 쳐주었어도, 그녀 속내와 내 속이 이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진 않았을 텐데,라고. 그러나 이미 쏟아진 물. 이건 순전히 내 지혜와 지식의 부족이 초래한,우리 관계의 우발적사고다.
다행일까.
내 마음이 홀로 아리랑처럼 혼자 울렁출렁하는 사이, 어느덧 오후 두 시 반이 되어, 오늘 영어수업이 다 끝났다. 난 얼른 교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집에 와서 뜨개질 거리를 챙겼다. 그녀가 오늘 비니모자 뜨는 법을 내게 배우고 싶어 해서다. 내일 수요일에 분홍색 실과 코바늘을 가져가서 가르쳐주기 위해 가방에 잘 넣어두었다. 내일 그녀에게 살갑게 다가가 친절하게 잘 가르쳐줘야지, 하며 챙겨 넣었다.그러나 출석률 백퍼이던 그녀가 웬일일까. 그다음 날 수요일수업에 출석하지 않았다. 연락처도 없고 해서, 다음 주 화요일까지 그녀를 마냥 기다려야 한다.
별일 없겠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녀의 그 '스위티'라던, '당인', 그건 분명 [당신 Dangsin]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실수로 S를 빼먹은 것 같다. 한국말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당인과 당신 사이가 그리도 먼 것을 그제야 알겠더라.왜, 하필 그 한국사람은 그녀에게 "당신"을 가르쳐줘 가지고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을까, 하며 나 혼자 픽 웃는다.아마도 배우자를 호칭하는 말을 배우면서, 당신이 당인으로, 그녀에게 잘못 가 닿았을 거라 짐작된다.
오, 귀여운 내 짝꿍.
하나의 주제로 생각의 흐름을 따라 실시간으로 적어봅니다. 다음 주에 그녀와 나 사이의 생각을 (하) 편에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