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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Aug 05. 2023

호주에서 마실 간 날

2023. 8. 3. 목.



말을 잘 못 알아들어.


내가 이렇게 답을 하니,  옆에 앉으라는 칼리할머니는, 그녀의 딸과 사위도 온다며 이번 금요 이웃모임에 꼭 오라고 당부하셨다. 나를 포함하여 친한 가정의 이웃이 칼리와 릭할아버지네 뒤뜰에 모였다. 그린 핑거를 지닌 칼리가 식물을 얼마나 잘 키워놓고, 미다스의 손을 가진 릭이 뒤뜰의 데레이션을 정말로 잘해놓은, 보타닉 가든 같은 푸른 장소다. 웃음기가 꽃잎처럼 피어나는 겨울 저녁은,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 우리 모두를 감싸는 듯했다. 내가 가자 칼리 고명딸 킴이 반갑게 나와 따끈한 포옹으로 맞아주었다. 밝으나 수줍은 듯 나직한 그녀가 난 좋다. 자기 맘과 대디네 집에 오면 잊지 않고 꼭 나를 보고, 그리고 네 시간 걸리는 자기 동네로 떠난다. 물질이 든 선물 같은 건 일절 없다. 난 그런 그녀의 마음에 순수한 진심의 중량이 한껏 들어있음을 감지한다. 렇게 2년 정도 된, 킴과 나, 우리 두 사람의 우정이 시나브로 여무는 중이다.




진저비어를 들고 갔다.


으로 꼬깔콘도 봉지째 하나 챙겨갔다. 이처럼 이 동네는 자기가 마실 음료를 스스로 들고 온다. 집주인은 자기들 마실 음료만 테이블에 얹어두 손님을 기다린다. 초대가 서로 하다. 각자 들고  음료수는 물론, 컵의 모양도 각양각색으로 자유하다. 컵과 음료가, 잘 매치된 옷의 색상처럼 세련되고 일사불란해야 옳다고 생각했던, 내 지난날 한국식으로 손님을 치르던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그 와중에 릭과 믹은 엑스 비어를 네 캔씩 비웠다. 킴과 칼리와 토니는 레드와인이었다. 린 할머니는 하이네켄을 홀짝홀짝 마시면서 소녀처럼 웃다. 말재주꾼으로 개구쟁이인 , 그의 아내 트레이시는 커다란 라스틱 병에 든 레몬주스를 스스로 잔을 채워마셨다. 난 무알콜 진저비어를 한 캔 마셨는데, 주변의 알코올이 내 콧구멍 속으로 스며들는지, 기분이 고 있었다.


영어가 안될 때,
이로운 점도 꽤 있다.

모임에서 반드시 말 많은 사람만이 좌중을 사로잡지는 않는다. 난 지난번처럼, 웃기는 딸꾹질 소리 같은 개그적인 말을 쿨럭쿨럭 해댔다. 내 속에 개그끼가 전혀 없더라도, 언어의 억양이 다르고, 태평양을 건너온 문화가 생판 다른 자체만으로도, 난 이미 웃기는 가락국수이다. 6년을 이웃으로 지내온 시간은, 우리를 서로 투명하고 친밀한 관계로 묶어 놓았다. 그들은 나의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고, 미운오리새끼인 양 외롭게 두지 않는다. 이 좌중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은 쟁이라도 하듯이 나에게 말을 걸어준다. 칼리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윙크를 보냈고, 옆에 앉은 릭은 홍, 알아들었어? 하며 부연 설명을 해주신다. 그런다고 기죽을 나의 타이밍은 오래전에 지났다. 어눌한 영어발음과 다른 문화적 배경은 그들에게 신선하고 이색적인 소스가 된다. 나의 개그로 우리들의 웃음보따리가 몇 번씩 팡팡 터졌다. 다음 주 금요일에도 빠지지 말고 꼭 오라며 입을 모은다. 난 영어권 체질인가.


그래도 나,
시간 안되는데.
어쩌나.


*마실 가다 ; 이웃 사람을 만나기 위해 놀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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