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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림 Jan 02. 2022

바람이 겨울나무에게

자작시


바람이 겨울나무에게


                              한상림



덕유산 향적봉

이파리 하나 매달지 않은 주목 가지에

바람이 내려놓은 눈꽃이 활짝 피어있다

눈꽃은 바람의 껍질인가,

세기를 넘어온 바람은 마른 가지를 흔들며

생명을 불어넣으려 한다

껍질을 벗기 위해서는

자신의 속부터 우선 비워야 했다는 내력을

바람은 나뭇가지에 촘촘히 새기고 있다

이제부터 바람의 껍질을 매단 가지들은

늦봄까지 바람의 내력을 읽어갈 것이다

한 때 산 정상 가장 높은 곳에서 앉아

비바람에 맞서 잔가지로 허공길 찾으며

구름의 무게를 재고 푸른 햇살을 마셨을 시간들,

억겁을 지나온 바람에 과시했을 푸르름 어디 가고

허물을 걸친 고사목은 지금, 살랑살랑

찬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가




2010년 12월,

매해 열리는 초등학교 동문회를 우리 기수에서 주관하여 마친 후

기념 여행으로 동기생 13명이 1박 2일로 무주 리조트에 모였다.

마침 우리가 가던 날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아주 환상적인 밤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이국적인 풍경의 밤과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숙소에서 저녁밥을 해 먹고, 2차 노래방에 가서 게임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나왔을 때

온통 하얀 눈 세상의 야경에 취한 우리들은 오십 초반의 나이도 잊었다.

최고조 된 마음으로 눈 위에 누워도 보고 눈싸움도 하고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가서 분위기 up!!


행사 준비를 거의 내가 맡아서 하였고, 게임 내용까지 만들어서 운동회를 연상하듯

어릴 때 고향에서 놀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다시 또 기막힌 추억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향적봉에 올랐을 때는 얼마나 춥던지 발은 눈에 푹푹 빠지고 별천지 세상처럼 아름다웠다.

향적봉에 처음 올라서인지, 그날따라 나뭇가지에 눈꽃이 환상적이었다.

그 후로 한번 더 가봤지만, 그때 분위기가 아닌 썰렁한 느낌이었다.


죽은 고사목까지 눈꽃이 활짝 핀 그날의 추억을 담아서 11년 전에 썼던 詩이다.



*표지사진- 지금은 고인이 된 동창생 고산성 친구가 찍었던 당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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