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불편해 이 상황?
저기압은 대기의 압력이 주변보다 낮은 지역이다.
공기는 그쪽을 향해 몰려들고, 위로 천천히 상승한다.
상승한 공기는 수증기를 품고 구름을 만든다.
습한 공기, 흐린 하늘, 무거운 공기, 비.
저기압은 하늘보다 마음에서 먼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안에서는 이미 구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날 아침, 출근길의 하늘은 짙은 회색이었다.
빛은 있었지만, 선명함은 없었다.
회사 건물로 향하는 발걸음도 유난히 무거웠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그 몇 초 사이에도,
마음 어딘가에선 이미 ‘불쾌’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상사는 말했다.
“표정 왜 그래? 그날이야?”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애써 웃어넘겼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다.
회의 도중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의 외모를 이야기했다.
그의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서 “살 좀 찐 거 아냐?”라는 말을 가볍게 던졌고,
‘ㅇㅇ kg’이라는 숫자를 화이트보드에 장난처럼 쓰는 사람이었다.
사무실 안은 즐거워 보였지만,
내 안에서는 언젠가부터 그 숫자가 무게처럼 내려앉았다.
감정은 단숨에 폭발하지 않는다.
먼지처럼 내려앉고, 습기처럼 스며들고, 구름처럼 머문다.
그날 내 감정도 무겁고 조용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말은 하지 못했지만, 감정은 계속해서 올라왔다.
마치 저기압이 공기를 위로 끌어올리는 것처럼.
말하지 못한 말들이 마음 안에서 구름을 만들고,
그 구름은 어느새 하루 전체를 눅눅하게 덮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뒤통수에 욕이 날아왔다.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욕을 하던 그였다.
일적으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회식자리에서 개인적인 일로 웃으면서 욕을 던졌다.
술이 확 깼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가는 게 아니었는데
모두 참석하라는 말에 갔던 내가 실수였다.
이런 사람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건데 말이다.
그가 나에 대해 했던 말은 위에까지 전달됐다.
내용은 그의 입맛대로 편집되었고,
나는 언짢다는 표현조차 조심스러웠다.
항의하면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냐?”
“그냥 장난이었잖아.”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입을 열수록 내 입장은 사라졌고
나는 어느새 ‘예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그의 행동이 이상하고 불합리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커피 타임에 눈을 마주치며,
"요즘 힘들지?"라며 위로를 건네는 동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서 말해주진 않았다.
그의 말이 선을 넘었다고,
그건 부적절했다고,
정확하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위로는 있었지만, 연대는 없었다.
내가 직접 나서야만
이 상황이 끝날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정작 그 자리에선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웃으며 넘겼던 말이
나중엔 혼잣말로 되돌아왔다.
‘왜 아무 말도 못 했지.’
겉은 웃고 있었지만, 속은 끓고 있었다.
되받아치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퇴근길 창밖으로 스쳐가는 창문 틈에
‘그때 왜 말 안 했지?’라는 생각이 끊임없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괜히 나만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또 침묵했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로 하루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말을 참을수록 더 많은 말이 안에서 부풀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눈물에 젖어 있었다.
저기압은 결국 흐름이다.
구름이 만들어지고, 바람이 멈추고,
비가 내리기 전 묘하게 다른 공기의 움직임.
사람들은 모른다.
그 작은 장난이 폭풍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감정이 가라앉았는지를.
이런 날은
말하지 못한 마음을 껴안고 버티는 방법뿐이다.
그 공간에서 나만 여자였다는 사실이
그 침묵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은
내 안에서만 쏟아지고 있었다.
누구도 대신 화내주지 않았고,
나는 그 무게를 혼자 견뎠다.
나보다 늦게 입사한 다른 여자분들은
3달도 채 버티지 못하고
나에게 씁쓸한 인사를 남기고 다 그만두셨다.
그날 이후, 마음의 구름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장마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