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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 없이 지낸 몇 달

나는 어떻게 다시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by 락락여석 Jan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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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시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다녔다. 대중교통을 타거나 혹은 잠깐이라도 걸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강박적으로 이어폰을 착용했다. 어떤 장르의 음악이건 상관은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심심함을 덜어줄 수 있다면야! 어이쿠, 근데 이어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음주 가무를 즐기다 노래방에 방정맞게 흘리고 만 것이다. 노래방을 다시 찾아가 분실물이 없느냐고 물어보기도 귀찮고, 이어폰을 사려고 쇼핑몰을 뒤적이는 것도 번거로워 그냥 이어폰 없이 살기로 다짐했다.     


이 정도는 아니었다.....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언젠가는 다시 구매하겠지 되뇌면서 이어폰 없이 몇 달을 보냈다. 항상 단짝처럼 나와 함께 하던 이어폰의 부재는 참으로 묘한 경험을 제공했다. 산책과 통근 시간을 지배하던 음악에게서 벗어나게끔 해줬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음악은 늘 나의 곁에 있었다. 아침에 브람스의 곡을 편곡한 알람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고, 통근 시간에는 이어폰으로 내 취향의 노래를 듣는다. 잠시 카페라도 들르거나 식당에 끼니를 때우러 가도 스피커에서는 계속 음악이 흘러나온다. 유행하는 k-pop이건 애절한 발라드건 말이다. 나에겐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 없었다. 

    

이어폰을 잃어버린 일이 나에게는 자유를 회복하는 경험을 선사했다. 긴 시간 동안 나에게 군림하던 음악의 지배에서 놓여날 기회였다. 음악을 듣지 않으며 산책할 때, 내 발에 밟히는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귓전에 울리는 바람 소리 등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버스에서 수다를 떠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대화가 유쾌하게 들렸다. 그들의 에피소드를 엿들으며 남들의 일상사를 재구성하는 일도 나름의 유희로 적합했다. 음악을 덜 듣게 되자, 오히려 세상의 소리에 더욱 민감해졌다. 아무 의미 없이 스쳐 가던 세계의 숨겨진 면모, 진동하는 주름을 발견하게 된 느낌이랄까. 여기서 밀란 쿤데라의 소설 속 한 대목이 떠올랐다.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1879~1953) - 열대(Torrid Zone, 1924)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1879~1953) - 열대(Torrid Zone, 1924)


그들은 함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율동적이고 소란스러운 음악이 그들의 식사에 곁들었다. 사비나가 말했다.

“이건 악순환이야. 음악을 점점 크게 트니까 사람들은 귀머거리가 돼. 그런데 귀머거리가 되니까 볼륨을 높일 수밖에 없지.”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 하고 프란츠가 물었다.
 
“응” 하고 사비나가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혹시 다른 시대에 산다면 몰라도......” 그리고 그녀는 음악이 눈 덮인 웅장한 침묵의 들판에 활짝 핀 한 송이 장미와 흡사했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시대를 생각했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p.158     


밀란 쿤데라는 작중 인물을 빌려 음악이 과잉으로 제공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한다. 이젠 어디서도 고요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과잉된 음악이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고, 음악이 단순한 소음으로 전락했다. 음악이 어쩌다 가끔 찾아오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으로 다가오던 오랜 옛날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런 의미에서, 쿤데라가 바흐를 언급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쿤데라가 말한 음악의 귀중함은 바흐의 삶에서 가장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 겨울 풍경(Winter Landscape, 1811)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 겨울 풍경(Winter Landscape, 1811)


바흐는 20세 무렵, 아른슈타트(Arnstadt)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북독일의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인 북스테후데(1637~1707)를 존경했고 그의 연주를 배우고자 했다. 1705년 겨울, 바흐는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듣기 위해 뤼베크로 여행을 떠났다. 뤼베크는 바흐가 살던 아른슈타트에서 약 40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바흐는 한겨울의 삭풍을 뚫고 수백 km가 넘는 길을 걸어서 이동했다. 바흐는 서양 음악의 체계를 확립한 인물로, 후대 작곡가들이 모두 숭앙했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자신이 동경하는 음악가의 오르간 연주를 듣고자 수백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이동했다는 일화는 여러모로 깨우쳐 주는 바가 많다. 이어폰과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이 몹시 쉽게 소비되는 현대세계와 비교해 보면 더욱 현격한 차이가 돋보인다. 우리는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그 가치는 바흐의 시대보다 훨씬 덜 하게 느껴진다.     


몇 달이 지나, 이어폰을 다시 구매하고 오래간만에 주변 소음을 모두 차단한 채 음악을 들어 보았다. 놀랍게도 이전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세밀한 디테일이 고막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닌가? 통속적 올드팝송이었지만 마치 위대한 고전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렬한 체험이었다. 화음이 쌓이고, 악기들이 제각기 연주되는 미묘한 국면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첫 소절에 훅 들어오는 베이스의 저음과 리드 기타의 연주에 더해진 코러스의 합창까지..... 머릿속에 은은한 황금빛 물결이 번져 나갔다. 불현듯 예전 기억이 살아났다. 처음 군대 훈련소에 입소하고 근 한 달간 군가(軍歌) 외에는 아무 음악도 듣지 못했다. 수료식을 마치고 이어폰을 잠깐 빌려서 좋아하는 음악을 감상했을 때의 그 쾌감. 그 감각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음악이 귀중했던 시절의 감각을 되찾는 일이 아닐까.     



표토르 차이콥스키((Peter Ilich Tchaikovsky) - 현악사중주 제1번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Andante Cantabile)


음악의 귀중함에 대한 극적 예로 표트르 차이콥스키와 레프 톨스토이의 일화를 들려주고 싶다. 차이콥스키는 일생 중 현악사중주 3곡을 작곡했다. 그중 현악사중주 1번은 서정적이고 처연한 선율로 여전히 많은 리스너를 감동케 한다. 1876년 12월 차이콥스키 음악회가 개최되었을 때 톨스토이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톨스토이는 현악사중주 1번 2악장을 들을 때 살포시 눈을 감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차이콥스키는 이 일화를 다음과 같이 일기장에 적었다. “레프 톨스토이가 나와 나란히 앉아서 나의 첫 사중주곡의 안단테 칸타빌레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만큼 기쁘고 작곡가로서 자랑스러웠던 일은 아마 내 생애에 다시는 없을 것이다.” 유려한 안단테 선율은 톨스토이의 마음 깊은 곳에 공명했다. 그의 눈물은 음악이 단순한 소리의 집합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관통할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음악에 진정으로 전율하고 감동할 줄 알았다.     


우리가 위의 일화처럼 음악이 영혼에 직결되고 존재 전체를 관통하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음악이 소음으로 변질되어 버린 세상에 질려 있을 때, 이어폰을 잃어버린 일은 권태에 빠졌던 나에게 음악에 대한 사랑을 다시 키우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에겐 잠시 음악에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음악이 우중충한 겨울에 검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처럼 화사하게 다가오는 환희의 경험이 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잠시 음악과 이별한 후 다시 듣게 될 음악은 단순한 배경 소리가 아닌 삶을 비추는 광명으로 다가오리라. 물론 나의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건 아닐 테다. 음악이 단순한 배경음으로 남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으리라. 그럼에도 시도해 보면 색다른 감정과 감각을 향해 스스로를 열어젖힐 수 있지 않을까? 이어폰과 이별했던 몇 달간 들었던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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