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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이 지옥이라면? 명상&심리학의 처방

불교 철학으로 스트레스 다스리기

by 락락여석 Feb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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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 - 귀가하는 노동자들(Workers on their Way Home,1913-14)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 - 귀가하는 노동자들(Workers on their Way Home,1913-14)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이런 맙소사 오늘도 출근이라니!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림 벨을 연신 꺼가면서 '10분만.....'이라며 되뇐다. 힘들게 회사까지 출근하면 산적한 업무와 상사의 압박, 촉박한 데드라인, 동료와의 갈등 등 나를 시험케 하는 시련의 장이 펼쳐진다. 이 생활을 얼마나 더해야 할지 진력이 난다.

 

회사든, 자영업이든, 알바든, 어떤 형태의 일터에서든 골치 아픈 사건들이 즐비하게 벌어지는데, 여기서 별다른 정신적 준비 없이 버티다간 금방 번아웃이 오기 마련이다. 우리에겐 전쟁터에 출정하는 병사처럼 갑옷과 무기를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정신이란 녀석은 맨몸으로 던져지면 금세 상처를 입기 마련이라 보호막을 여러 겹 둘러싸줘야 한다.


개인적으로 매일 짧게나마 불교 명상을 하는데, 이 명상에서 가르치는 통찰이 바로 그런 내면의 방패 역할을 해준다. 여기에 나는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를 결합해서 '왜곡된 생각'과 '부적응적인 믿음'을 최대한 자제해 보는 실용적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심리 전공자 수준은 아니지만, 경험상 효과를 봤던 방법이다.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 - 감은 눈(Closed Eyes, 1890)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 - 감은 눈(Closed Eyes, 1890)



나는 위빳사나(vipassana) 명상의 방법론을 따른다. 위빳사나 명상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관찰하는 명상'이다. 호흡, 신체 감각, 감정, 생각 등을 판단 없이 지켜보면서, 모든 것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과정임을 깨닫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감정과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더 깊은 평온과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초보라 아직 그런 경지에는 못 갔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각을 비우는 게 아니라,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이다.


"내가 불안하다"가 아니라, "불안이 지금 일어나고 있구나"라고 관(觀)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을 강조한다. 여실(如實): 있는 그대로, 지견(知見): 알고 본다 즉,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는 뜻이다. 불교는 인간이 사물과 세계의 실상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자신의 억견(臆見, 억측하여 헤아리는 소견)과 무지에 의거한 자의적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이야기한다.


실은 별 일이 아닌데도 펄쩍 뛰면서 마음이 갈팡질팡 흔들렸던 경험이 있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어느 정도 동의할 것이다. 불교 명상이 무찌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자의적 사고의 패턴, 선입견과 고정관념, 아상(我相, 실체적인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관념)의 조합이다. 있는 그대로 무엇이 일어나는지 고요하게 관찰함으로써 자신만의 왜곡된 관념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전술한 위빳사나 명상의 방법론을 머리에 유념하며 인지행동치료도 살펴보자. 인지행동치료란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인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감정을 조절하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치료법이다.  비합리적인 생각을 점검하고, 이를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바꾸는 과정을 중시한다. 우리가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이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므로, 왜곡된 사고를 교정하면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일 수 있다는 통찰에 기반한다.


쉽게 말하면,


"모든 걸 망쳤어!" → X
"한 번의 실수일 뿐이야.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어." → O


이런 식으로 생각의 패턴을 점검하고 바꾸는 연습을 하는 게 인지행동치료라고 이해하시면 되겠다.


불교의 명상 (왜곡된 이해와 무지에 근거한 자의적 판단의 배격)과 서구의 인지행동치료(왜곡된 사고 패턴을 인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긍정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변화)가 상당히 유사하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수천 년의 차이를 두고 탄생한 이 두 갈래의 사뭇 다른 강력한 방법론을 결합하면, 일상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심리적 장애물을 이겨낼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리라.





브런치 글 이미지 3



일단 나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회사 생활에 불교 인지행동치료 기법을 적용해 보았다. 일터에서 자주 겪게 되는 난감하고 회피하고 싶은 상황들이니 독자 분들도 한 번 본인 경험에 의거해서 상상하며 읽어주시면 더 감사하겠다.


(1) 실수해서 상사에게 깨질 때 → 관찰하기: "아 지금 자괴감이 올라오고 있구나" '실수 = 무능력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이라고 바라보기. 무상(無常, Anicca): 이 실수도 결국 영원하지 않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2) 업무량에 압도될 때 → '감당 못 하겠다’는 패닉을 멈추고, '지금 할 수 있는 하나'에 집중하기. 불교 명상의 핵심은 과거·미래 걱정 대신 현재에 몰입하는 것. 하나씩 하다 보면 끝이 보인다.


(3) 기한이 촉박해 조급함이 턱 밑에 차오를 때 → "이 조급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라고 반문. 조급함이라는 감정을 관찰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됨. 호흡을 가다듬는 잠깐의 시간을 통해 현재 순간으로 되돌아오기.


(4) 동료들이 나를 무능하게 볼까 불안할 때 → "내 이미지가 그렇게 중요할까?" 타인의 평가에 대한 집착은 불교에서 말하는 자아의 환상(我相)에 기인. 타인의 시선은 내 통제 밖의 영역임. 고로 신경 쓰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데만 집중할 것!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통제 가능 영역과 통제 불가 영역의 구분)도 유념하면 시너지 2배!


(5) 업무 피드백이 뼈아플 때 → 피드백이 '나'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닌 단순한 업무 개선을 위한 조언임을 기억할 것. 무아(無我, Anatta): 피드백은 나의 존재 전체를 향한 것이 아닌 특정한 행동에 대한 의견 제시일 뿐. '나'라는 허상 이미지를 방어하려기보다 피드백을 받아들여 행동을 개선하는 연습을 한다.


(6) 내 노력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 인정욕구가 올라오고 있음을 관찰. 불교와 힌두교 전통의 행위 그 자체를 보상으로 여기는 태도를 체화할 것을 요구. (바가바드기타 - 행위에 대한 결과에는 개의치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로서 모든 일에 임하라)


(7) 직원 간 인간관계의 갈등이 생길 때 → 우리는 갈등이 생길 때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고 단정 짓는 경향이 있음. 그러나 불교에서는 ‘고정된 자아(나, 너)’라는 개념을 부정함! 상대방도 변화하는 존재임을 인정하기. 동료가 무례했다면, 그 사람도 기분이 나빴거나 힘든 상황이었을 수 있음. 상사가 부당한 지적을 했어도, 본인은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큼. 인간관계는 변하기 때문에, 지금의 갈등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지 말 것.


(8) 회사에 있는 자체가 괴로울 때 → 이 회사가 내 삶의 전부가 아닌 잠시동안 스쳐 지나가는 국면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불교적 관점을 적용하자면 회사는 하나의 '수행처'일 수 있음. 한층 단단해지고 성장하기 위한 단련의 장소로 여기기. 물론 너무 힘들다면 여타 방법을 통해 한 템포 쉬어 가는 것도 현명함.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 - 망원경(Telescope, 1963)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 - 망원경(Telescope, 1963)



요체는 감정을 '문제'로 보지 말고,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는 데 있다. 


고단한 밥벌이의 과정에는 화가 나거나, 좌절하거나, 불안한 순간이 시시때때로 닥쳐오게 마련이다.

그 시점에 우리는 잠시 자동적인 의식의 반응을 멈추고 '바라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이라는 철학자가 이야기한 에포케(epoche) 개념을 적용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정지, 중지, 보류를 일컫는 에포케는 '판단 중지'를 의미한다. 주위의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판단을 보류하거나 중지한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가졌던 선입견과 판단, 관념을 배제하고 일시적인 멈춤을 향유하는 것이다.


위빳사나 명상의 핵심은 에포케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이 감정을 없애야 돼!' → 오답이다.


'아, 감정이 올라오고 있구나' → 100점


지금 불안이라는 감정이 있구나. 지금 조급함이 있구나. 지금 짜증이 올라오고 있구나. 감정이라는 녀석을 생전 처음 보는 물리 현상을 바라보는 과학자처럼 뚫어지게 응시하며 지켜보고 요모조모 뜯어보면 된다.


페르시아의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 몸은 여인숙이라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온다네. 매숨결마다 기쁨, 절망, 슬픔이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여라.....' 루미의 시처럼, 감정은 그저 여인숙을 지나가는 손님이다. 억지로 쫓아내려 하지 말고, '지금 불안이 있구나' 하고 바라보자. 감정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으면, 감정은 힘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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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이 신랄하게 표현했듯 '밥벌이의 지겨움'에 오늘도 시름시름 앓고 있는 사람들이여. 모든 것은 지나가고, 부서지기 마련이라는 붓다의 말을 되새김질하며 하루를 견뎌내어 보자. 삶이라는 것도 결국은 거대한 견뎌냄의 과정일지니. 불교인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부른다. 사바는 참고 견뎌낸다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사하(saha)의 음역이다. 단어 그대로 이 세계와 인생은 인내를 강요한다. 뭐, 어쩌겠는가 버텨야지! 내일도 출근을 하는 모두 파이팅. 열심히 살아보자.




p.s


이 글에서는 주로 회사 생활을 다뤘지만, 사실 모든 노동이 마찬가지이다. 장사하는 분들은 매일 변덕스러운 손님과 싸우고, 프리랜서는 불안정한 수입과 씨름하며, 알바생은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어느 자리에서든, 모두 밥벌이에 꿰어 있다.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평안하길.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숫타니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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