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Y_VENEZIA, 흔들흔들 밤의 베니스
“선착순 네 명, 동행 모집합니다.”
유럽여행 카페에 올라온 곤돌라 동행 모집 게시물을 확인한다. 긴 비행기 연착 후 겨우 도착한 베니스. 본섬이라 일컬어지는 이곳 베니스와 더불어 조금 떨어진 두 섬, 무라노와 부라노를 수상버스로 다녀오는 것이 기본적인 관광 루트이다. 그리고 곤돌라를 타고 베니스의 물길을 20분가량 돌아보는 것은 단연 가장 유명한 액티비티(?). 주로 연인이나 친구들과 함께 탄다고 하는데, 혼자 다니다 보니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이 부러운 순간이 생기곤 했다.
숙소에서 오전에 출발하여 점심시간에 맞춰 무라노에는 다녀왔으나, 그득 들어찬 사람과 배 시간 등의 문제로 부라노 섬에 가는 것은 포기한 상태. 대신 미로 같은 베니스 본섬에서 길을 잃은 채 홀로 한참을 걸었다. 40도에 육박하는 이상기온에 몸은 지칠 대로 지치긴 했지만 곤돌라까지 타지 못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을 듯했다.
곤돌라 비용은 당시 환율로 10-12만 원 사이. 1인이 아니라 곤돌라 1척의 대여 비용으로, 최대 탑승 인원은 다섯 명이다. 고로 혼자 타면 10만 원, 다섯이 모여 타면 각각 2만 원 내외의 가격을 지불한다. 그래서 유럽여행 카페엔 곤돌라 비용을 아끼기 위한 동행 모집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편. 타이밍 좋게 나도 동행에 참여할 수 있었다. 저녁시간이 다가올 즘 구글맵을 켜고 약속 장소로 향한다. 하나 둘 모여드는 오늘의 멤버들. 여행 내내 부족한 영어와 사전을 뒤적여 몇 마디의 이탈리아어를 겨우 더듬거리다 오랜만에 나누는 한국말이 반갑다.
어느덧 시계는 저녁 여덟 시. 마지막 운행을 준비하는 듯한 선착장의 곤돌리에와 의미 없는 흥정을 시도한다. 하지만 흥정의 결과와 상관없이 탑승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날씨를 보아하니 SNS에 올라온 멋진 노을까지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지금 출발하면 배 위에서 베니스의 낮과 밤을 모두 경험할 수 있을 터였다. 동행들의 들뜬 얼굴과 호탕한 곤돌리에의 인사로 배는 출발한다.
뒤뚱대는 배 위로 함께 탄 친구들의 웃음과 곤돌리에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배 아래엔 어느새 쪽빛이 된 물결이 출렁인다. 유럽의 여름답게 시간을 모르고 머리 위에서 빛나던 태양도 곤돌리에의 노래를 따라 물길 속으로 점점 몸을 숙인다. 일몰과 함께 시끌벅적하던 관광지의 소음이 흩어지고, 고요한 베니스 골목 사이사이 물길이 뱃머리에 부딪히며 낭창한 소리를 냈다. 동행들도 목소리를 줄여 물이 부딪히는 뱃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해가 지니 낮엔 도통 불지 않던 바람이 불었다. 가만히 배 위에 앉아 바람을 따라 고개를 든다. 낮엔 보이지 않던 베니스 사람들의 집과 일상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아늑한 밤을 맞이하는 사람들.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그들의 행복을 바라보다 빼곡하게 들어찬 좁은 배 위에서 마치 혼자 남은 듯 마음이 아득해진다. 아름답고 쓸쓸한, 낯선 물 위의 밤. 곤돌라는 약속된 시간의 끝자락을 향해간다. 배가 닿는 곳이 선착장 대신 마음을 달랠 어딘가면 좋을 텐데. 보고픈 얼굴과 목소리가 곤돌리에의 노질을 따라 노천의 조명과 함께 수면에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