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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고 Sep 14. 2022

커필로그3

ITALY_VENEZIA, FIRENZE, ROMA

“피렌체 공영 주차장 옆에서 파는 1유로짜리 에스프레소 진짜 끝내줬어.”

“그래요? 피렌체 주차장 옆 일단 저장.”


차를 렌트할 계획은 아니니 굳이 주차장을 찾진 않겠지만, 피렌체 중심부는 그리 크지 않으니까 걷다가 우연히 주차장을 발견하게 된다면 좋을 텐데, 얼마나 맛있길래 그렇게 칭찬을 하신 걸까?


영국을 떠나는 마지막 날. 에든버러 공항의 Pret a manger에서 마지막 커피를 마시며, 여행 전 한국에서 들었던 이탈리아 커피 이야기에 기대를 한껏 부풀린다. 긴 연착만큼이나 커진 기대를 안고 가까스로 도착한 이탈리아. 영국에서 놓친 커피에 대한 아쉬움을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를 마음껏 마시며 달래자 마음먹었지만, 한 가지 예상 못 한 난관이 나타났는데 바로 아침부터 40도에 육박하는 이탈리아의 날씨. 더위를 이기려 종일 들이키는 맛없는 아이스커피의 카페인 양도 만만치 않다 보니, 아무리 카페인 중독일지라도 기대만큼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를 마시기엔 쉽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아이스 메뉴는 정말 맛이 없다. 그저 관광객에게 옜다 던지기 위해 만든 메뉴임이 맛으로 느껴진다.)


거기에 젤라또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한참을 걷다 에너지가 바닥날 때쯤, 에스프레소와 젤라또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많은 순간 젤라또를 선택했다.(기로까지 나올 것인가 싶지만 비장할 수밖에 없는 날씨와 맛이다.) 고건물과 유적지로 인해 어디를 보든 온통 세피아 톤인 이탈리아의 전경이, 신선한 젤라또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과일의 총천연색으로 물드는 기분이었으니까.


각설하고 커피 이야기로 돌아오면, 떠나기 전 가졌던 이탈리아 커피에 대한 기대와 그 후의 감상은 조금 달라졌다.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로마 3대 커피보다는, 피렌체 골목의 작은 카페가 그리고 허름했던 호텔 조식의 에스프레소가 더욱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울컥할 정도로 다른 조식 메뉴는 정말 맛이 없었다). 다만 피렌체 공영 주차장 옆의 커피는 끝내 마셔보지 못했다. 대체 주차장이 어디야?





베네치아 근처 메스트레의 MIDA COFFEE. 아침으로 먹은 카푸치노와 크로와상.
아침은 잔해를 남기고. 역시 크로와상은 플레인으로.


베네치아 메스트레의 관광객을 위한 Cafe MIDA.

베네치아 본섬의 숙박은 매우 비싼 편. 반면 시설의 경우 역사적 가치에 보전에 신경을 쓰다 보니 가격 대비 낙후된 곳이 많다. 덕분에 많은 관광객들이 베네치아가 아닌 근방 지역 '메스트레'에 숙소를 잡곤 하는데, 오히려 가격도 저렴하고 시설도 매우 쾌적한 편. 이른 새벽부터 다음 날 늦은 새벽까지 베네치아를 곧장 오가는 버스와 기차가 운행되기에 교통적 불편함도 적다. 나 또한 이틀간 메스트레의 숙소에 묵었는데, 조식을 신청하지 않은 관계로 호텔 근처에 있는 Cafe MIDA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이탈리아 답지 않은 최신 설비와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이곳은, 섹션만 나누어 젤라또와 피자 가게를 동시에 운영하는 본격 관광객 타깃의 기업형(?) 매장이다. 다행히 이곳과 관련이 없는 이탈리아 사람도 괜찮은 곳이라고 추천할 만큼 맛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엉망으로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게가 많은 지역에서 맛, 가격, 편안함, 친절함까지 얻을 수 있는 곳. 다양한 크로와상을 판매하는데, 에너지를 내고자 초코 크림이 들어간 것을 선택했다가 혈당이 오존층까지 치솟는 기분이라 급하게 에스프레소 한 잔을 더 마셨다. 다음날의 선택은 당연히 플레인 크로와상.




피렌체 골목 속 벤 카페. 벤 할아버지가 커피를 내려준다.
늦은 점심 아이스 라테와 크로와상.
에스프레소 한 잔 더.


피렌체의 골목 속 숨겨진 Ben Caffe.

피렌체에 지내는 사흘간 세 번 방문한 벤 카페. 갑자기 내리는 비와 습기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곳이었지만, 로마의 3대 커피보다 더 만족스러운 커피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스커피 구경이 힘든 이탈리아에서 아이스는 물론, 말차 라테와 같은 사파邪派(?)적 메뉴의 존재로 처음엔 맛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주인이자 바리스타 벤 할아버지는 이미 정파의 도를 모두 섭렵하고 자유의 길을 찾아 나선 사람이란 것을.


카페에 앉아 쉬며 근방에 살고 일하는 듯한 이웃들의 방문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과 벤 할아버지는 호탕한 웃음으로 안부를 나눴다.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믿음직하고 편안한 카페라니, 커피를 주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의 표정 모두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플레이되는 순간이다.


이곳의 원두는 다른 이탈리아 카페에 비해 비교적 가볍게 로스팅되어있었지만, 풍부한 향과 맛이 여느 커피보다 묵직하게 입 안에 내려앉았다. 친절한 벤 할아버지의 맛있는 커피 덕분에, 소진되었던 에너지는 물론 마음도 함께 충전된 시간. 흩뿌리던 비가 그친 뒤, 카페에서 다시 습도만은 여전한 피렌체 거리로 나서며, 이곳이 로마도 베네치아도 아닌 피렌체의 골목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쉬운 한 가지는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이미 영업이 종료된 후였다는 것. 다시 피렌체를 찾는다면, 그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벤의 커피겠지.




유명한 카페 질리 바로 옆. 파쇼프스키의 티라미수와 사케라또.


피렌체의 그 유명한 gilli 바로 옆집, paszkowski.

피렌체 하면 꼭 들러야 하는 곳 중 하나는 바로 3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질리 커피이다. 회전목마가 아이콘이 된 레푸블리카 광장에 위치한 질리 커피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디저트로도 아주 유명한데, 그 유명세에 바쁜 시간에는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는 비슷한 분위기의 파쇼프스키로 향한다. 하지만 파쇼프스키를 아류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여기도 이미 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기 때문. 그리고 오히려 파쇼프스키의 맛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우도 많다.


나 또한 호텔 프론트 직원에게 디저트와 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을 부탁했고, 질리 대신 파쇼프스키를 추천받아 방문하게 되었다. 빠르게 에스프레소만 들이키고 떠나는 것이 익숙한 나라에서, 여유롭게 디저트까지 즐길 수 있는 만큼 분위기는 클래식하고 서버들도 정중한 느낌이 가득한 편. 물론 가격은 다른 카페에 비해 비싸지만, 여유를 즐기며 몸을 쉬기엔 나쁘지 않다. 내가 주문한 것은 아마도 사케라또와 티라미수. 카페를 떠나기 전 에스프레소도 한 잔 마셨지만 사진은 찍지 않았다. 에스프레소가 오히려 더 예쁘게 나왔는데 이제야 후회가 된다. 커피의 맛보단 디저트와 분위기 그리고 명소를 들렀다는 만족감으로 머물기 좋은 장소.




타짜도르에 모여든 사람들.
 한 번에 두 잔을 주문했다. 설탕 넣어 하나, 그냥 하나.


[로마엔 3대 젤라또와 3대 커피가 있습니다]의 그 3대 커피 중 하나 타짜도르.

한국에도 지점을 오픈한 것으로 알려진 타짜도르, 시간을 불문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이미 너무 많은 정보와 이야기가 넘치는 바로 그 카페. 유명한 로마 관광지 판테온이 근처에 있어 찾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아, 이탈리아 커피의 진수를 맛보고 싶은 여행객이 다 모여든다. 다만 손님이 너무 많아 내가 지금 에스프레소를 마시는지, 에스프레소 도장깨기 미션을 수행 중인지 혼돈이 오는 것이 단점.


이탈리아 카페 스타일대로 스탠딩으로 마시고 떠나야 하기에,  번에  잔을 시켰다. 다시 주문하기엔 너무 바빠보였거든. 하나는 설탕과 함께 하나는 에스프레소 그대로. 샷을 털어 넣음과 동시에 폭죽처럼 터지는 진득한 풍미와 고소함에 나는 설탕이 없는 쪽이  마음에 들었다. '훌륭한 커피' 뭔지는  모르지만, 이런 맛을 매일   있다면  순간은  행복하겠지? 물론  할아버지의 에스프레소가  맛있었지만. 보통의 이탈리안들은 어떤 방식을  선호하는지 바리스타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조용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시간도 없어 보였기에. 약간의 불친절도 이해가 되는 순간.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종종 팡하고 입안에서 터지는 이탈리아 에스프레소의 맛이 떠오른다.




다양한 상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더위만 아니라면 이탈리아에서 아이스를 마시지 않기를.


[로마엔 3대 젤라또와 3대 커피가 있습니다]의 그 3대 커피 중 또 다른 하나 Sant' Eustachio.

로마 3대 커피 중 내가 간 곳은 앞서 말한 타짜도르와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나온 산 에우스타키오. 두 곳 모두 방문객들로 활기차고 시끌벅적하지만, 타짜도르가 보다 묵직한 분위기라면 산 에우스타키오는 캐주얼하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커피와 굿즈의 진열이나 직원들의 태도까지도 조금 더 프렌들리한 느낌.


(억양과 생김새에서 눈치를 챘겠지만)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탈리아어와 영어로만 주문했음에도, 한국어로 건네 준 '감사합니다.'한마디에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좋은 기분이 마음에 커피향처럼 퍼진다. 커피를 주문하며 조금 더 돈을 내고 좌석에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까 했지만, 사진처럼 테이블은 이미 만석. 게다가 날씨는 40도에 육박하기에 자리가 있다 해도 앉아있을 자신이 없다. 먼저 나온 에스프레소 한 잔을 빠르게 마신 후, 함께 주문한 아이스 사케라또를 가지고 매장을 빠져나왔다.


에스프레소의 경우, 타짜도르가 비교적 뭉툭하고 진하게 머무는 기분이라면, 이곳은 조금 더 화려하고 달달한 풍미가 느껴지는 편. 커피의 맛조차 그 카페의 분위기를 닮았네, 신기해하며 이미 얼음이 녹기 시작한 샤케라또를 마신다. 맛은 음.... 에스프레소로 만족하기로 하자. 이곳은 샤케라또를 비롯한 다양한 아이스커피를 판매 중인데, 역시나 불타오르는 돌바닥 위에서 관광객의 생명유지를 위한 메뉴일 뿐, 이탈리아 어디서나 차가운 커피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는 3 리스트지만,   정도를 빼먹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 . 하지만 전편에도 말했듯, 그렇기에 언젠간 다시 찾아갈 이유들이 생기는 거겠지. 너무 좋아서 다시, 약간의 아쉬움을 채우러 다시, 혹은 너무 나빴기에 좋은 기억을 만들러 다시. 좋은 감정을 쌓아갈 이유는 이렇게나 다양하다. 부족한 영어로 주문을 하고, 가득 쌓인 여행 피로를 커피  모금에 녹이고,  순간을 떠올리며  커피를 내리는 지금. 선선한 바람이 부는 어느 , 그때보다는 조금  여유 있는 모습으로 다시, 그때는 느끼지 못한 향과 맛을 마주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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