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마지막 밤은 사랑 이야기로
오전 6시반 바티칸 근처에서 집합하기로 했다. 그래서 아침 5시로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도전에 눈이 먼저 떠졌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호스텔이기에 알람이 울린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예민하게도 눈이 먼저 떠진다. 모두가 잠에 들어있는 새벽시간 조심스럽게 나갈 준비를 했다. 새벽 6시 아직 서늘한 공기를 맞으며 숙소를 나왔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정도 거리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조용한 거리였지만 이른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구글 지도를 따라 지하철역으로 가고 있는중 난관에 봉착했다. 지도에 따르면 들어갈 수 있어야하는 지하철 통로가 막혀 있었다. 당황함에 어리둥절하며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던 차에 누군가 나를 불렀다.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던 이탈리아인이었다. 그에게 나의 당황함이 닿았는지 별말없이 자신을 따라 오라며 손짓했고 그녀를 따라 조금 걸은 길에는 지하철 입구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웃었고 나도 감사의 눈인사를 전했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몇정거장을 가 집합장소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를 이끌어주실 산드로(한국인) 가이드를 만나 도착을 알렸다. 6시반이 되니 칼 같이 우리 일행은 바티칸으로 향했다. 가이드 투어를 함께 할 사람들은 총 29명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29명의 사람중에서 혼자 여행온 사람이 나 하나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대부분이 신혼여행으로 온 부부들이었다. 챙겨줄 이 하나 없는 배낭 여행객인 나는 괜시리 옆구리가 시려왔다. 바티칸 입장은 9시부터지만 그전에 미리 줄을 서놓지 않으면 굉장히 늦은 시간에 입장을 해야해서 뒷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그래서 부지런한 한국인들은 이렇게 일찍 모이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고 9시까지의 시간을 헛되히 대기시간으로만 쓰도록 두시진 않는다. 가이드님은 9시까지 거의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예술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일것이다. 그렇게 밖에 앉아 가이드 님의 설명을 듣다보니 시간이 꽤나 빠르게 흘렀다. 중간 잠시 쉬는 시간을 주셨고 그때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 들러 초콜릿 크로아상을 하나 사먹고 왔다. 왜이렇게 힘이 없는지 생각해보니 어제 하루종일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않았다. 아침에 납작 복숭아 한개를 먹고 점심에 기차에서 받은 과자하나를 먹은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저녁에 맥주 두잔만 마셨으니 몸에 에너지가 있을리 만무하다. 다행히 휴식시간 빵이라도 하나 먹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9시가 되었고 앞팀부터 순차적으로 입장하여 9시반쯤 빠르게 바티칸에 입장 할 수 있었다.
바티칸 관광은 박물관에서부터 시작했다. 박물관에서의 내용은 건너 뛰도록 하겠다. 솔직히 순간순간은 감탄하면서 들었건만 박물관을 나서니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워낙 많은 인파속에서 끌려다니다보니 굉장히 빠른 시간안에 지치기 시작했다. 중간에는 나는 바티칸이랑은 잘 맞지 않는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마지막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성당을 방문하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살면서 꼭 한번 이 성당을 방문해보는 것을 단호히 추천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라는 천재 화가 한명이 그림으로 가득 채워 놓은 성당의 공간은 가히 이곳이 천국이라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공간은 아직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있다. 살면서 꼭 한번 제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경이로운 천지창조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바티칸 관광을 끝내고 나니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5시 기상과 먹은거라곤 초콜릿 크루아상 뿐인 나의 체력은 바닥이 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오후 4시에 시내 투어를 위해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룹과는 헤어졌다. 바티칸을 떠나기전 베드로 성당을 보는둥 마는둥 한번 둘러보고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당 보충이 시급하다.
일단 가이드님이 시내투어 집합지인 라보나 광장 근처의 식당 몇군데를 추천해주셨다. 마음 같아서는 한식을 먹고싶었지만 아직 이탈리아에 와서 정통 까르보나라를 먹어보지 않았기에 오늘 점심으로는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식당 한군데를 정하고 출발했다. 로마의 햇살은 뜨거웠고 시내는 관광객으로 붐볐다. 배는 고프고 다리의 근육은 지쳤지만 로마를 걷는 다는 생각을 하니 없던 힘도 내어 기분좋게 걸을 수 있었다.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그룹에서 본 다른 한국인들도 좀 도착해 앉아있는듯 했다. 종업원은 바티칸 투어로 지친 여행객을 맞이하는 것이 익숙한지 밝은 미소로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나는 까르보나라 파스타 하나와 맥주 한잔을 주문했다. 맥주가 먼저 나왔다. 이탈리아 peroni 맥주다. 잔에 따라 지체없이 입으로 가져가 큰 한모금을 마셨다. 강한 탄산감이 목으로 넘어왔다. 순간적으로 들어온 수분과 당분 그리고 탄산에 몸이 놀란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새하얘졌다. 정말 고생하긴 했나보다. 살짝 오른 취기에 몸을 맡긴채 이탈리아 햇살의 나풀거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내 파스타가 나왔다.
사람들 저마다 극한의 배고픔의 순간에 먹고싶은 음식이 있을것이다. 그게 누군가에겐 느끼한 까르보나라 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난 굉장히 자극적인 감자탕같은 한국음식이 먹고싶었다. 즉 지금 내가 원하는 음식이 이 까르보나라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랬기에 어느정도 의무감으로 시킨 까르보나라를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 한입에 나의 세계는 뒤집어졌다. 정말 먹어본적이 없는 감칠맛이었다. 계란과 치즈가 정말로 누구하나 더 나서지 않고 하나의 크림이 되어있었다. 적당히 알덴테로 익은 건면에 타고난 피부처럼 붙어 있는 소스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거기에 후추의 매운맛이 은은히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돼지 뽈살을 염지한 관찰레는 아주 바삭하게 익어 부족한 식감의 재미를 보충해주었다. 내가 상상만 했던 완벽한 까르보나라의 맛이다. 이걸 한입 먹고 나니 감자탕을 떠올리던 나의 생각은 온데간데 사라져버렸다. 지금이 이 지구상에는 나와 이 까르보나라 한접시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한입 한입 소중히 먹었다. 맛있는 까르보나라 한 접시와 맥주 한잔이 있으니 바티칸의 피로는 좋은 기억으로 미화되었다. 까르보나라를 먹고 티라미수까지 완벽하게 비우고 나니 얼굴에 피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밥심이다.
밥을 먹고 시내 투어 일정을 진행하기 위해 라보나 광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모이자 라보나 광장에서부터 시내투어는 시작되었다. 시내 투어는 라보나 광장에서 시작해서 판테온, 트레비 분수, 콜로세움으로 이어졌다. 솔직히 바티칸 투어보다 더 좋았던 것이 시내투어였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가이드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좀 더 입체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볼 수 있었고 유적지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맛집을 하나씩 알려주시는 정보도 있어서 좋았다. 혼자와서 뻘쭘할 수 있는 나를 배려해서 주요 스팟을 갈때마다. 설명이 끝나고 나를 위한 사진을 꼭 찍어주시기도 했다. 다음번에는 꼭 둘이 되어 함께오라는 덕담도 잊지 않으셨다. 제발 나도 그러고 싶다.
콜로세움을 마지막으로 투어도 끝이 났다. 시간은 거의 7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일몰시간이 다 되었다. 투어 그룹과 작별을 하고 잠시 콜로세움 옆에 혼자 앉았다. 콜로세움을 감싸고 있는 하늘이 노을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하얀색 커다란 달이 떠올랐다. 콜로세움과 달이라니 정말 아름다운 듀엣곡을 눈으로 듣는 기분이다. 콜로세움에 앉아 있다가 문득 연락이 왔다. 나보다 하루 일찍 로마로 떠난 지희다. 로마를 떠나기전에 꼭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식당에 같이 가줄 수 있는지 물었다. 달도 이렇게 이쁜데 안될 이유가 없다.
우리는 포로 로마노에서 만나기로 했다.
포로 로마노가 있는 큰길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지희가 이상한 곳을 구글 지도로 찍고 가는 바람에 엇갈렸다. 길을 좀 헤메는 듯하여 내가 그쪽으로 가겠다고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나 우연한 발견이 더 큰 행복을 주는 법이다. 지희를 만난 곳은 생각 외의 야경 스팟이었다. 은은한 불빛이 포로 로마노를 비추고 있는 어느 골목길에서 지희를 만났다. 저녁 날씨가 참좋았다. 우리는 잠시 그 골목 난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가 겪은 로마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잠시 로마의 야경과 날씨를 즐겼다. 지희가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는 음식은 카치오 에 페페 였다. 치즈와 후추만으로 맛을 낸 이탈리아 전통 파스타다. 그 음식을 먹기 위해 우리는 서둘러 출발했다.
포로 로마노에서 30분정도를 걸었다. 도착해서 우리가 원래 가려던 식당을 보니 식당 밖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왠지 웨이팅도 어려울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웨이팅까지 마감을 했다고한다.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다행인건 카치오 에 페페가 이곳에만 파는 음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는 길에 봐두었던 사람들이 꽤 가득 차있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곳은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바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카치오 에 페페 하나와 로마식 닭고기 요리를 하나 주문했다. 그리고 화아트 와인 한병도 함께 주문했다.
둘 다 로마에서의 마지막날 밤이다. 예쁜 달이 뜬 로마의 마지막 밤에 어울리는 주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사랑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이것은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비로소 만나 연애를 하게 되어도 이 난제는 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엇을까, 난 정말 행운아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만난 이후에도 그 이유를 알지못한다. 그렇기에 단지 행운으로 치부해버리곤한다. 그래서 나는 지희에게 물었다. 지금 그렇게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말이다. 지희는 소개팅으로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남자친구를 처음 만났을 땐 그렇게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나쁘지 않은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강한 끌림은 없지만 함께하면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시간이 2년정도 쌓이면서 지금은 꼭 이 사람이어야만 하는 사랑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냉정과 열정사이’의 명대사가 생각이 났다.
“너무 강하게 이끌리면, 부딪히기 쉽다.”
서로가 애초에 너무 강하게 이끌리고 너무 큰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면 부딪히고 상처가 난다는 것이다.나도 그런 연애를 해봤기에 많이 부딪혀보고 상처도 나봤다. 강하게 이끌릴 수록 있는 그대로의 관계가 되지 못했다. 항상 더 집착하게 되고 저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연애는 알게 모르게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었고 결국 너무 좋아 했던 것이 탈이나 헤어지게 된 적이 있다. 지희는 되려 그러지 않았기에 이끌리고 불타는 감정보다 관계에 더 집중했기에 지금 두터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난 이제껏 첫만남에 느낌이 오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오만한 생각을 갖고 살았다. 돌이켜보면 내 일차원적인 감각과 좁은 식견만을 믿고 첫만남에 모든 것을 판단하려 했던 지난 날들이 생각났다. 첫눈에 불타지 않을지라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은은하게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음식을 먹고 와인은 반쯤 비웠다. 와인을 다 마셨다간 사랑을 찾지 못한 설움에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산을 하고 나왔다. 지희는 나름 이탈리아에서 만난 좋은 인연이다. 지희는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단다. 작별의 아쉬움을 한번의 짧은 하이파이브로 대신했다. 나는 지희의 안전한 귀국을 지희는 나의 안전한 남은 여행을 기원해주었다. 아직 밝은 달이 떠있다. 로마의 마지막 밤이 은은하고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