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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Apr 22. 2019

마을은 없다

마을과 공동체, 그리고 커뮤니티

한국 사람들은 마을을 참 좋아한다. 마을 속에서 살았든, 마을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살았든, 실제 마을에서 살지 않았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 속에서 살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정겨운 이웃들과 음식도 나누고 마음도 나누며 행복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머릿속에 가상의 마을 공간을 상정하고 마을을 '만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관심이 커지니까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도 하나둘씩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각종 정책을 만들기 시작한다. 지자체마다 차별을 두어야 하니 내용은 비슷하지만 무늬만 다른 정치적 언어들이 등장한다. 지향과 방식이 조금 다른 뿐 우리는 이런 형태의 마을 만들기 사업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바로 '새마을운동'이다.


대안학교 교사가 된 이후 십 년 동안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메리카 인디언 속담이다. 과거 인디언 부족의 삶에 실제로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이 속담이 메트로시티를 넘어 메가 시티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대형 도심지에서도 가능한 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십 년 사이에 이 말은 대안학교를 넘어 시민사회 속에서 마을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치 정언 명령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왜곡되고 과열된 교육열의 고장인 대한민국의 사회 안에서 본래 속담의 취지와는 다른 맥락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 같다. "내 아이를 위해서는 마을이 필요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보이는 요 근래의 마을 만들기 운동을 어떻게 국가주의적 정책 사업인 '새마을운동'과 비교할 수 있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분 없이 마을 안에서 함께 잘 키우자는 마을 만들기 운동을 너무 왜곡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마을 활동 십 년이라는 짧은 경험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이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 둘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마을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지나치게 계몽주의적 접근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 동안 대안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마을'과 '공동체'라는 주제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안학교의 성장은 곧 마을 만들기와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었기에 운영의 중심에서 마을 만들기 운동의 여러 가지 일들을 담당하기도 했다. 잘된 일도 있었고 잘 되지 않은 일도 있지만 십 년의 공동체 활동의 경험을 통해 내린 나의 결론은 이렇다. 마을은 없다.

마을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고 가치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철학에 동조해 마을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을은 필요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것이지 누군가 돈과 노력을 들여서 인위적으로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대기업이 신기술을 가진 작은 기업들을 수십, 수백억에 쉽게 사들이듯 마을도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마을 만들기에 대한 많은 시민들의 염원과 다르게 그 방향이 부조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도시 속에서 마을을 만드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을과 도시는 다르다. 도시 속 삶에서 마을의 필수 조건인 이웃은 필요가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까이 사는 이웃이 절실하게 필요 없다. 옆집 개똥이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앞집 철이네가 무엇을 먹는지 그것이 내 삶에 영향을 주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각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매일 만나고 매일 음식을 같이 먹고 매일 일을 같이 하는 직장 사람들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십 년이 넘게 공동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나에게 마을은 직장이고 마을 이웃은 직장을 통해 만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다. 블로그와 브런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통해 글을 쓰고 남의 글을 읽으며 삶의 균형을 유지한다. 가끔은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먹으며 오래된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일을 통해 새로 사귄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새로운 미래에 대해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나는 내 옆집, 앞집, 뒷집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그들과 5분 이상의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내 삶의 방식의 옳고 그름의 떠나서 난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이 사십이 넘은 이후의 언젠가는 나도 마을에 가서 살고 싶다. 도시에서 만들어진 무수히 많은 연결고리들을 끊어내고 조금은 단출한 인간관계 속에서 단순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마을 운동을 하든, 공동체 운동을 하든 내 삶을 단순하게 유지할 수 없다. 도시에서 마을을 만들 수 없는 이유다.


현재 마을 운동을 열심히 하는 분들의 노력과 정성을 폄하할 의도는 없다. 그런 노력들 덕분에 '초연결'만 강조하면서 정작 '연결'을 놓치고 있는 삭막하고 팍팍한 도시 속 삶이 조금은 더 풍족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왜 마을 운동을 하고 있는지 또는 해야 하는지 본질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숭고한 가치를 위해 마을 만들기를 하는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명분뿐인 구호만 남기 때문이다.


마을을 만드려고 하는 순간 마을은 사라진다. 그래도 마을이 너무 만들고 싶으면 '마을'이라는 단어나 가치에 집착하지 말고 앞집 옆집 사람들, 동네 슈퍼 사장님, PC방 청년들, 길거리에서 놀고 있는 꼬마 친구들에게 밝게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마을을 만들기 위해 고된 노동을 이어가는 마을활동가가 되지 말고 그냥 평범한 동네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 마을 속에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단순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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