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이리엔 Jun 19. 2024

아직 회사와 헤어지는 중입니다

에필로그  : 남들은 안 하는 중소기업의 이야기


 나에게 회사를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한 단어로 대답하겠다.


 애증 (憎, love and hate)

 사랑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의미







대표님, 저 일 정리할게요

만 6년을 몸 담았고, 그중 5년을 팀장으로 일한 나의 회사. 나는 갑작스럽게 아니 남편의 몹시도 고단한 노력 끝에 결정된 2년의 프랑스 생활로 드디어 퇴사를 얘기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퇴사'라는 매몰찬 단어 대신 '일을 정리하겠다'라는 말로 돌려 말했다.


맞벌이 부부로 부족하지만 나쁘지 않은 소득을 즐기며 살아가던 우리, 갑자기 다시 해외생활이라니 남편은 내가 응원할지 몰랐다고 한다. 스타트업의 과정을 조금 넘어 소기업에서 중기업의 범위로 들어가고 있던 회사는 중추역할을 하고 있던 팀장들의 퇴사와 휴직으로 꽤나 숨을 헐떡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나도 어쩌면 그 무거움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 수도.


나름 양심적으로 남편의 발령이 결정 나기 조금 전부터 대표님과 회사 동료들에게 조금씩 언질을 했다. 그리고 발령이 결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대표님은 면담일정을 잡는 대신 생각보다 담담하게 한마디 물음으로 답하셨다. 남편이 세 번째 면접을 통과했을 시점에 프랑스행 가능성을 꺼내며 건넨 예방주사 때문일까. 일상이 <짱구는 못 말려>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대표님의 반전 반응이었다. 담담해도 너무 담담했다.


"아, 남편 최종합격했어?"

"하하, 네, 그렇게 되었어요"

"남편은 언제 가고, 마무리 정리는 언제 하고 따라가려고?"

"남편은 비자 나오면 바로 출국하고, 저는 아마도 그 후로 3개월 정도요. 남편 가고 바로 일 정리하고, 좀 쉬고 짐 정리도 하고 출국하려고요!"

"그럼 시간 많네~ 천천히 얘기해 그럼~"

"네? 네~"


그렇게 처음으로 남겨진 이들에 대한 미안함에 번복할 수도 눈이 번쩍이는 금전적 오퍼에 설득당할 수도 없는 이유로 당당하게 퇴사하겠다는 얘기를 꺼냈건만, 지금 나는 남프랑스 어느 중세도시에 '무기한 휴직' 상태로 앉아있다.





아직 회사와 헤어지는 중입니다

나는 아직도 회사와 헤어지는 중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외국계 기업, 대기업, 공기업이 아니다. 촉망받는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도 아니다. 그냥 여느 중소기업이 그렇듯이 한때는 촉망받았지만 그저 잘 살아남고 있는 기업이다. 코로나19 이후 살아남고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불리는 업계에서 말이다.


퇴직을 처음 언급하고서부터 장장 4개월의 업무정리기간을 가졌다. 그중, 퇴직에서 휴직으로 결정을 번복하고 또 번복한 기간은 3.5개월 정도 되려나. 나름 진심을 나눈 관계라고 생각하는 착하디 착한 인사팀 동료는 결국 나에게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참고로 그는 대표님과도 절친한 관계로 퇴사를 휴직으로 만들기 위해 같이 노력하지만, 나의 결정은 뭐든 존중한다고 백번은 말해준 사람이다)

 

"밀당하는 거야 뭐야, 서로 왜 이렇게 질척거려! 에라이, 이제 나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동료가 알리가 있나. 진짜다. 나도 내가 왜 그렇게 지긋지긋하다고 때려치우고 싶다고 백날 떠들던 회사를 떠나기 싫어 휴직 혹은 리모트 근무라는 옵션을 잡고 질척거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질척거린다는 단어는 연인사이에나 쓰이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 회사와 동료들에게 이렇게나 질척거리고 있다니. 프랑스에 온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나 아직 질척거리고 있다.





나 지금 연애하니? 왜 질척거려!

이 지긋지긋하고 답답한 마음을 정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 나는 분명히 회사에서의 역할에 부담을 느꼈고, 과중한 업무로 일상이란 없이 일로만 가득한 생활을 했다. 휴직하기 전 거의 3주를 밤샘근무와 주말근무로 보냈다. 일에 치여 정식 인수인계는 2주 정도로 짬뽕국물 마시듯이 후루룩 끝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2.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내가 다닌 회사는 더 이상 대단히 촉망받고 성장 가능성이 반짝거리는 곳이 아니다. 살아남고 있는 것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그저 회사의 성장세에 같이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나 그 반짝임이 아쉬워서 질척거리는 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3. 남편은 지금 당장 나에게 소득을 원하거나 일을 하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돈을 쓸 곳조차 없는 상황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소득이 부족하지도 않다. (물론, 정기적 수입이 더 있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질척거릴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회사에 큰 '애증'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 증오는 알겠는데, 사랑은 왜 생긴 건데?





중소기업을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사랑한다는 단어는 조금 과하다. 사랑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애증'이라는 단어 때문에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뿐이다.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봐야겠다. 사실 증오가 훨씬 비대하니까.


 'X소기업', '헬'이라고 불리며 중소기업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와 상처받은 마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세상이다. 그 이야기들을 접하면 공감과 비공감 반반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우리 회사가 생각보다 좋은 곳인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혹은 일하는 중소기업은 체계, 복지, 안정성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들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높은 비율로 저런 항목에 만족한다는 이유로 다니지는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그곳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나도 야근으로 약속시간에 늦거나, 그냥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주변사람들에게 많이 들어본 말이 있다. 동시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이기도 하다.


"너네 사장도 주말에 연락하고 그래?"

"너 나가면 회사 망하는 거 아니야? 이래서 대기업 가야지"


당연히 별로일 것이라는 시선과 판단. '좋아도 좋은 걸 말하지 못한 이 답답함'도 있었다.






잘 헤어지기 위해 꺼내는 이야기

이 회사에서만 6년의 업무시간을 남들의 1.5배로 살아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고, 많이 었고, 많이도 었다. 시원하게 헤어지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속에 숨겨놓은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놔야겠다고 결심했다.


때로는 '욕'이 많을 것이다. 때로는 '정'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웃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혹시나 가끔은 본인이 왜 회사에 '애증'을 가지는지 답답하고, '애증'을 가진다고 말을 꺼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너는 지금 회사에 가스라이팅 당한 거라며 회사욕을 퍼붓는 주변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어느새 같이 회사욕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창구가 되길 바란다.


이 이야기가 끝나면 나도 질척거리지 않고, 훌훌 떠날 수 있길 바라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