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현지인들이 이상기온이라고 할 정도로 덥지 않은 여름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아직까지 너무 더워 죽겠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심지어 집의 에어컨을 잘 틀지도 않고, 밤에는 선풍기만 약하게 틀어놓고 잘 정도이니, 올해 여름은 확실히 엄청난 더위가 찾아온 여름은 아닌 듯 하다.
이상기온에도 불구하고 남프랑스의 여름을 알려주는 이들이 있다. 그건 바로 '여름 먹거리'이다.
유럽의 여름하면 떠오르는 납작 복숭아부터 가지, 토마토 같은 여름 채소, 남프랑스하면 빠질 수 없는 로제와인과 화이트와인까지. 겨울과는 확연히 달라진 시장과 채소가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각자 온전히 제 색과 향을 뽐내는 과일들을 보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시원하게 한입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복숭아 옆을 지나가면 복숭아향이 풍겨오고, 무화과 옆을 지나면 무화과 향이, 멜론 옆을 지나면 진한 멜론향이 풍겨온다. 한국처럼 한바구니씩 정량으로 파는게 아니기 때문에, 그날그날 먹을 만큼의 과일을 살 수 있다는 점은 행운이다. 하루에 먹을 수 있는 과일의 양은 정해져있기에, 고심하고 또 고심한다. 내일 또 시장에 들러서 그날 먹고 싶은 과일을 사면 된다. 그게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하고싶은 일이다.
복숭아는 깨끗하게 씻어서 오후 간식으로, 남편의 도시락 간식으로, 맥주안주로 베어문다. 한입 콱 베어물면 과즙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많으면서, 식감은 또 아삭아삭하다. 황도 통조림처럼 달달한 복숭아를 먹고 있으니, 일년 내내 황도와 백도 캔을 사다놓고 드시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한입크기로 잘라서 오물오물 드시도록 한국으로 보내드리고 싶을 정도이다.
삐죽빼죽 울퉁불퉁한 토마토도 일품이다. 식감이 단단해서 올리브유와 소금을 슥 둘러서 잠시 볶으면, 토마토의 식감은 살아있고, 풍미는 두배로 풍성해진다. 짭짤한데 토마토 향이 강하게 풍겨오니, 별다른 소스가 필요없이 샐러드와 빵에 곁들인다. 빠알간 색감은 또 얼마나 예쁜지, 여름의 맛을 눈으로도 즐길 수 있다.
자, 더운 여름엔 시원한 맥주가 최고이지만, 남프랑스에선 '로제와인'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달달한 맛 보다는 과실의 상큼함을 즐기고 싶다면 '화이트와인'을 꺼내오면 된다. 차갑게 칠링된 방투산(mont ventoux) 지역의 화이트와인을 한잔 들이켜면 상큼하게 더위가 가신다. 4유로도 안되는 가격으로 더위를 물리칠 수 있는 소중한 여름의 맛이다.
칠링백이 없어 약식으로 얼음물을 만들어 담가놓고 마시지만, 시원함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나 이것저것 챙기기엔 몸이 둔해지는 여름엔 격식보단 실질적인 행복이 더 중요하다.
건강하게 여름의 맛을 즐겼다면, 끝판왕은 결국 '디저트'이다. 남프랑스산 라벤더, 꿀, 피스타치오로 만든 아이스크림. 아마도 열심히 라벤더 꿀을 따고 있던 벌들이 모아놓은 꿀이 들어있겠지 생각하면, 괜히 아이스크림의 단맛도 건강한 단맛으로 느껴진다. 남프랑스의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자란 라벤더와 피스타치오는 더운 와중에도 정말 열심히 그들만의 향을 몸에 품었나보다. 그 어느곳에서 먹어본 라벤더, 피스타치오보다 자기주장이 강한 맛이다.
향과 맛이 모두 강하니 너무나 소중하게 떠올린 작은 한입을 입에 담고 천천히 녹여먹게 된다. 크게 한숟가락 푹~떠서 여러가지 맛을 돌려가며 먹던 베스킨라빈스31 아이스크림과 비교하면, 참으로 귀한 맛이다.
남프랑스의 여름은 한껏 과즙을 팡팡 채워넣은 과일들과 연해질대로 연해진 겉껍질에 싱싱함만 가득한 채소들이 빠질 수 없다. 시원한 와인과 아이스크림은 몸에는 나쁜 맛이지만, 그래도 과일채소보다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느낄 수 있는 여름맛이다.
여름에 남프랑스에 와야하는 중요한 이유 중, 언제든지 뛰어들 수 있는 푸른바다와 맑은호수가 큰 한자리를 차지한다면, 나머지 한자리는 색감과 향으로 아우라를 뽐내는 남프랑스 먹거리에게 양보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