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여름의 모든 것을 사랑해
올여름, 아니 사실은 매 해 여름이 갈수록 더워지고 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정말 너무 덥고 습하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고, 작년 나만해도 동남아 스콜처럼 내리는 소나기에 고생한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몇 년 전부터 여름이 오는 게 참 좋았다. 온 세상 만물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물, 풀, 바람, 동물, 만물이 자기 소리를 내고 자기 색을 뽐내는 것이 좋다. 맴맴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면, 몇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땅에서 견뎌온 매미들이 대견하고, 짧은 생에 동안 온몸을 써서 번식에 성공하려는 소리를 응원하기도 한다.
여름을 좋아하게 된 후에 남프랑스에 오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다. 여름의 날씨를 이렇게나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여름을 보내기가 섭섭해진다. 하루하루 낮아지는 최고기온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제발 아직 안돼!
아직 여름을 다 즐기지 못했어!
프랑스에서 한여름 7-8월은 그야말로 바캉스의 계절이다. 2주에서 한 달 정도 자리를 비우는 사람들은 당연히 수두룩하다. 심지어는 여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여름 마인드'를 장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보다 약속도 많이 만들고, 짧은 주말에도 이곳저곳 여행을 다닌다. 남프랑스의 여름은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바캉스라고 해도 전혀 무방하다. 그만큼 다들 들떠있고 활기차다는 뜻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액티비티를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들이 여름의 자연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이 된다. 산악자전거, 트래킹, 암벽등반, 작살 낚시, 수영과 다이빙... 정말 어느 곳에서나 액티비티를 즐기고 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광활한 자연을 가진 이들의 축복인 건지, 다들 참 다양하고 개성 있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날씨가 서늘한 봄/가을에 더 활발할 것 같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더워도 여름'에 더 활발한 취미활동을 하는 듯하다. 아마 더운 날씨를 그대로 즐기는 것 자체도 이들에겐 하나의 중요한 취미활동일 것이다.
여름이 되고 한국에서라면 생각도 안 해봤을 '동네 야외수영장'을 가보곤 한다. 잔디밭에 엎드려 선탠 하며 책 보는 사람들, 비치체어에 누워 스도쿠 문제를 푸는 사람들, 더우면 물에 풍덩 뛰어들어 놀다가 다시 햇볕에 몸을 뉘이는 사람들. 니스 해변에서나 볼 수 있을듯한 모습이 그냥 동네 야외 수영장에 펼쳐진다.
일 년에 한 번 물에 들어갔을까 말까 했지만,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순간 '여름이 덥다는 사실'이 잊힌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달라졌다. 틈만 나면 물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온몸을 물에 적시고 나와 나무그늘에 누워있으면, 바람을 타고 꽃비가 내린다. 가만히 누워있는데 분홍색 꽃비라니. 천국이다.
밤 10시가 되어야 어두워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여름의 매력이다. 유럽의 밤이 아름다운 것은 알지만, 그래도 해가 좀 더 오래 남아있었으면 한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면, 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서서히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서야 서서히 지는 해를 보고 있자면, 또 한 번 여름이 감사하다.
하지만, 어두컴컴해진 여름밤은 또 다른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노오란 조명과 풍성한 나뭇잎이 하늘거리는 모습은 여름만의 소유물이다. 나뭇잎에 꼭 붙어서 센 바람이 불어와도 떨어지지 않는 큰 나뭇잎들이 찰랑거리면, '여름은 참 강하구나'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낮에는 햇볕을 피하는 피신처였고, 밤이 되면 바람을 막아주는 피신처가 된다. 오래오래 뿌리내린 아름드리나무가 가을에도 겨울에도 이렇게 푸르름을 유지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프랑스에서 여름을 지내보고 느낀 것이 있다. 대단히 마음먹고 2박 3일 바캉스를 떠나야만 여름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언제나 어디서든 이 온도와 햇빛을 즐기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매일 걷던 길에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도 좋고, 나무그늘 아래에 시원한 바람도 좋다. 더운 날씨에 땀이 삐질삐질 나지만 집에 돌아와 차가운 물을 끼얹어 순식간에 시원해지는 느낌도 좋다. 해가 진 밤에 온도가 서서히 낮아지는 게 느껴지면,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밤공기를 즐기고, 선풍기를 발 위치에 맞춰 틀어놓고 조금은 덥게 잠드는 밤도 좋다.
이 뜨거운 햇살에도 진한 색의 꽃을 피워내는 능소화를 만나면, 한참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속으로 얘기한다. 조금만 더 오래 피어있어 달라고. 난 아직 여름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아, 밤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없다는 것은 남프랑스 생활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찌르르르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여름밤은 어쩌면 한국여름의 전유물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