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까지 10km가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강남 한복판에 있던 사무실로 출근하려면 넉넉히 잡아야 했다.
원래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지만 퇴근시간이 늦어지고 택시를 잡기 힘들어지며 차를 가지고 출퇴근했던 때, 잠시 왕복 두 시간이라는 출퇴근 시간을 경험했었다.
그 경험이 '차로 한 시간'이면 엄청난 경험을 할 수 있는 지금의 남프랑스 생활에 큰 비교대상이 되어주고 있다. 주말마다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남편에게 얘기한다.
"우리 집에서 강남까지 한 시간이었는데, 여기서 한 시간이면 이런 동네를 올 수 있다는 게 믿겨져?"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남프랑스에서는 나름 '교통의 중심지'이다. 많은 여행객들은 이 도시를 거점지로 두고 남프랑스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프랑스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메인 고속도로가 상하좌우로 바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고속철도 TGV역까지 있어서 파리까지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도 '교통의 중심' 대전이 본가였는데,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닐 운명인 건가 싶다.
남프랑스에 온 뒤, 우리 부부는 매주 주말을 '당일치기 여행'으로 꽉꽉 채우고 있다. 우리는 특별한 계획이 없는 주말이면 구글지도를 켜놓고 상하좌우로 둘러보며, 어디로 가볼까 얘기를 나누곤 한다. 지금까지 반복해서 두 번 이상 방문한 도시가 3개 정도밖에 없는 걸 보면, 당일치기 여행으로 가능한 가까운 도시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름 대도시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동남쪽으로 한 시간.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와 마르세유(Marseille)에 갈 수 있다. 고속도로 요금을 아껴보려 국도로만 다니기도 하는데, 그 길조차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눈이 황홀하다! 두 도시는 정말 '도시'라고 부를만하다. 백화점, 편집샵들이 즐비하고, 메인 도심도 꽤나 커서 도보로만 구경하기도 약간 벅차다.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3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그만큼 항구부터 관광지, 뮤지엄까지 볼거리가 풍부하지만 우리에겐 그저 '일'이 있을 때 가는 도시이다.
소도시의 아기자기함을 즐기고, 로컬시장을 구경하고 싶은 날이면 동쪽으로 한 시간.릴르 슈흐 라 소흐그(L'Isle-sur-la-Sorgue )라는 작고 시끌벅적한 마을과 전설이 가득한 '샘'을 볼 수 있는 퐁텐느 드 보클뤼즈(Fontaine de Vaucluse)에 다다른다. 일요일 오전마다 열리는 마을 로컬시장은 누구든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과일, 치즈, 고기, 옷, 특산품과 간단한 먹거리들까지. 시장을 둘러보고 있자면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가방과 옷들도 한가득이다. 가게에서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소스, 페스토들도 맛보면 꼭 한 병씩 데리고 오게 된다.
날씨가 좋으면 그냥 마을보다는 자연경관을 찾아 떠나고 싶다. 그런 날엔 북쪽으로 한 시간.한라산 높이(해발 1900m)에 달하는 벙투산(Mont-ventoux)으로 간다. 도로가 잘 되어 있어 차를 타고 꼭대기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올라가면 구름이 아래로 내려다 보이거나, 우리 몸이 구름에 파묻히기도 한다. 차를 타고 올라가는 길 곳곳에 피크닉을 위한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빈 공터가 있다. 우리는 적당한 곳을 골라 돗자리를 펴고 빵 한 조각으로 배를 채운 뒤 누워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산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원한 바람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한여름 계곡가를 떠오르게 하며 마음을 충만하게 만든다.
테마가 있는 관광스러운 일정을 소화하고 싶은 날이면 서남쪽으로 한 시간. 빈센트 반 고흐의 도시로 유명한 아를(Arles)과 고대 로마 1세기 수도였던 님(Nimes)에 도착한다. 두 도시 모두 원형 경기장을 가지고 있는 고대도시이기도 한데 분위기는 참 다르다. 작은 도심에 옹기종기 건물들과 유적지가 모여있는 아를에선 반고의 '밤의 카페'에 들러 문 닫은 카페를 배경으로 사진도 남긴다. 고흐가 오래 지냈다는 정신병원은 이게 병원인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정원을 만나볼 수도 있다. 나름 많은 인구를 가진 님을 돌아다니면, 소도시치고는 꽤나 넓은 도로와 신식 건물들에 놀랍다. 조용하고 깔끔한 도시를 거닐고 있자면, 로마 1세기에 만들어진 도시를 걷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이다.
한 시간, 드라마 한 편을 볼 수 있는 시간, 혹은 잠시 핸드폰을 슥슥 넘기며 콘텐츠를 소비하면 후딱 지나가는 시간이다. 남프랑스에서 한 시간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테마별 소도시 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아직은 누구나 아는 도시들만 다녀온 수준이지만, 현지인들이 가는 도시들까지 다니려면 아마 우리가 남프랑스에 거주하는 2년 동안 매주 주말을 꽉 채워 여행을 다녀야 할 것 같다. 지난 글에서 '꼭 마음먹고 떠나야 바캉스가 아니더라'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연장선에서 남프랑스 생활은 정말 매주 주말이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