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강제 미니멀라이프지만 만족합니다
신혼집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매일 한 시간씩 정리정돈에 투자하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내 물건, 남편의 물건, 함께 쓰는 물건이 합쳐지자 점차 살림 전쟁이 시작됐다. 깨끗한 집을 유지하는 데에는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여가 시간의 대부분이 청소에 사용되자 내가 정리 정돈을 잘 못하는 탓이라 여겼다. 그런데 정리정돈의 습관이 몸에 완전히 뱄음에도 고투는 계속됐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록 상황이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많은 시간과 손길을 요구하는 나의 집 때문에 몹시 지쳤다. 아무리 열심히 집을 가꿔도 해야 할 일은 늘 산더미였다. 수납함 속에는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물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를 난감한 용품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내게도 정리의 노하우가 생길까? 상황은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였고 이대론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읽고 싶은 책도 너무나 많고, 쓰고 싶은 글도 많은데 집에서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여가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효율성 높은 정리정돈을 위해 여러 정보를 뒤졌지만 집은 항상 공간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나의 신혼집은 구식 아파트로 실평수가 18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물건을 들일 때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무려 7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정리정돈을 공부하고 이에 많은 공을 들였으나 공간 대비 물건이 많은 현실은 단순 노동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돈된 집에서 정갈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었기에 반강제 미니멀라이프에 순응하기로 했다.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18평 아파트에서 계속 맥시멀리스트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쳇바퀴 돌듯 물건을 정리하느라 소중한 시간과 힘을 고갈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재기 습관과 물욕을 뿌리 뽑기 위해 거듭 고군분투하며 나 자신과 싸웠다.
커다란 종량제 봉투에 욕심과 보여주기식 허울을 쓸어 담아 비우기를 반복했다. 필요하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꼬리를 흔들며 베란다를 휘젓고 다니는 반려견을 보니 뿌듯했다.
수납공간이 없는 공동주택 살이는 여전히 난도가 높다. 비좁은 베란다 이불장에서 베개와 이불을 꺼낼 때면 아크로바틱 댄스를 춰야 하고, 침대 옆에 반려견의 계단을 쫘악 두면 다리 찢어야만 화장실에 갈 수 있다. 그래도 조금씩 비워내는 묘미를 느끼면서 미니멀라이프를 이어가고 있다.
초짜 미니멀리스트이지만 예전에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나 필요했고 부족했는지 얼른 기억나지 않는다. 넓은 집으로 이사만 가면 강제 미니멀라이프 따윈 당장에 벗어나겠다고 콧바람을 씩씩 냈던 내 꼴이 우습기까지 하다. 행여 넓은 집이 생기더라도 나의 공간을 쉽사리 물건에 양보할 생각은 없다.
좁은 집 덕분에 마음의 공간을 넓히며 사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현실은 전쟁이다. 넓은 공간 확보를 위해 잔머리를 굴리고 오늘도 수차례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반복한다. 방과 거실은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금세 어수선해진다. 18평 구옥 아파트에 사는 초짜 주부에게 미니멀라이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정적인 자원을 갖기 위해 끝없이 몸부림치던 작태를 멈출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