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겨야 사는 가족

웃는 패밀리가 승자

by 미세스쏭작가

"행복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거야." 박경리 선생님의 이 말을 좋아한다. 나 또한 사는 게 평탄했더라면 쓰고자 하는 열망을 글로 옮겨내지 않았을 것이다. 더 채워주지 못해 미안해하시는 부모님의 눈동자를 보며 자랐다. 애틋한 눈동자를 보면 글이란 걸 쓰고 싶단 생각이 순수히 일었다. 맛난 간식이 생기면 꽁꽁 싸매 집으로 가져왔던 동생들의 사랑 어린 고사리손, 가진 게 없어 서로를 살뜰히 챙겼던 삼 남매의 의리는 글과 마음을 비추는 윤슬이었다.

대화가 끊이지 않았던 다섯 식구들은 곤경에 처했을 때에도 어떻게든 서로를 웃게 만들었다. 가족들 누구 하나 빠지지 않을 만큼 재미있고 해학에 능통했다. 삶의 곡선이 울퉁불퉁 춤을 출 때에도 웃음이 많은 다섯 식구들 덕분에 마음만은 풍족했다.


열 살 즘이었나. 모나미 볼펜 하나가 끼워져 있는 검정 가죽 표지의 노트를 보았다. 열어 보니 엄마의 일기장이었다. 호기심으로 펼친 엄마의 일상은 가난이라는 괴로움에 물들어 있었다.

-도대체 가난이 뭘까. 가난? 가난! 힘들다.- 짧은 글귀마다 엄마의 수심과 고민이 볼펜똥처럼 굵직하게 묻어 나왔다.

'어딘가에 숨겨진 돈이 있을 거야.' 궁핍이 천진한 나를 덮칠 때면 꼭 그런 상상을 했다. 현실은 추우면서도 따뜻했고 가난하면서도 풍족했다. 전자는 물리적, 후자는 정서적 요소였다.


형제간의 우애를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기셨던 부모님 밑에서 줄기차게 싸웠던 나와 두 동생들.

"너희 한 번만 더 엄마 앞에서 싸우면 그땐 너희가 엄마를 벌해야 할 거야." 엄마의 경고가 무슨 뜻인 줄 잘 알면서도 우린 결국 또 대낮부터 싸움질을 벌였다.

"내가 너희를 잘못 가르쳤다. 나가서 회초리를 구해 와. 제대로 된 매를 구해 오지 않으면 너희가 맞는 거야." 일단 매 맞기 싫은 삼 남매는 밖에 나가 열심히 회초리를 골랐다. 주웠다가 버리고를 반복하다가 적당히 구색을 갖춘 만만한 회초리 구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당신의 종아리를 때리라며 바지를 걷으셨다.

"엉엉. 잘못했어요. 다신 안 싸울게요."

"너희도 엄마를 벌하면서 내가 무슨 마음으로 너희를 훈육했을지 느껴 봐." 펑펑 울면서 첫째, 둘째, 셋째가 엄마의 종아리를 때렸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사이좋게 엉엉. 찰싹.

그런데 아무리 봐도 순진무구한 막둥이 놈이 매를 잘못 골라온 것 같았다. 막냇동생이 골라온 건 밀도 높은 새까만 고무파이프였다. 딱 봐도 타격감이 셌다. 막내의 회초리가 엄마의 종아리에 닿을 때마다 엄마가 움찔하셨고 청개구리들은 더 크게 목놓아 울었다. 그 후로 엄마는 다시는 회초리 훈육을 하지 않으셨다. 막둥이 놈의 고무파이프 덕분이라고 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는 아빠와 자식 셋을 챙기시느라 늘 여유가 없으셨다. 어쩌다 한 번 멀리 계시는 외할머니를 뵙고 돌아오던 날이면 우리 모두가 슬픔을 공유했다. 노모와 헤어지시며 논둑 택시에서 터미널 버스로 환승을 하시기까지 내내 참았던 눈물을 보이셨던 엄마. 차창 밖으로 멀어지고 작아지는 외할머니의 모습에 "불쌍한 우리 엄마"를 부르시던 애틋한 목소리. 그럴 때면 가만히 엄마의 두 손을 잡았다. 나 역시 돌아서면 그리운 엄마의 존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엄마를 빼앗아서 달아나는 기분이 들어 외할머니께도 죄송했다. 엄마의 눈물을 보며 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난 절대로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살지 않아. 엄마를 외롭게 하지 않을 거야.'


아프지 않겠다 약속하셨던 월순 씨가 2022년 10월 천국으로 떠나셨다. 이른 새벽에 부고 소식을 들으신 부모님은 아무도 모르게 먼저 외할머니 댁으로 내려가셨다. 부모님보다 다섯 시간이나 뒤늦게 외할머니의 소식을 들은 나는 펑펑 울면서 왜 이제야 알려 주셨느냐 물었다.

"너희가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울 수가 없었어. 마음 잘 추스르고 뒤따라서 내려와." 울며 소리도 없이 짐을 싸서 집을 나서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찌나 죄송하고 속상한지. 부모님의 크신 사랑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살면서 가장 위로받고 싶은 날에도 당신들께는 우리가 먼저였단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이제는 가장 친하고 우애 깊은 친구가 된 삼 남매와 존경하는 오랜 친구인 우리 부모님. 기억하는 것 이상으로 춥고 주렸을 다섯 식구의 흑백 과거를 찬란한 빛으로 만들어 준 건 분명 사랑과 웃음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웃음 코드가 잘 맞는다. 웃다 보면 어느새 슬프고 힘든 삶의 터널을 통과해 있었다. 여전히 서로가 가장 웃기고 재미있는 가족들은 나의 기쁨이자 마음의 안식처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우리 식구의 가훈을 "웃겨야 사는 가족"으로 정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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