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농작물은 저마다의 초록빛을 자랑하며 바삐 자라고 있었다. 하늘은 마치 좋게 푸르고 흰 구름은 몽실거렸다. 모든 풍경이 마지막으로 외할머니를 만났던 날과 비슷한 그림이었다. 드넓은 밭과 지저귀는 새소리와 따뜻한 시골 햇살과 할머니의 손때 묻은 집. 모든 것이 그 자리에 당연하게 있었는데 응당 계셔야 할 우리 외할머니만 뵈지 않았다. 평온하고 포근한 시골 풍경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가만히 할머니를 불러보았다.
할머니 어딨어?
-나 여기 있지.
어디?
-여깄잖여.
신기했다. 할머니의 밭에서도, 집으로 오르내리는 오솔길에서도 온통 그녀가 느껴져서 마음이 뜨거웠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미 천국으로 떠나버린 할머니를 뵈러 오시는 엄마의 마음을.
“엄마 외할머니 만나러 시골에 다녀올게.” 외할머니가 없는 먼 시골에 다녀오시겠다는 엄마를 볼 때면 걱정이 앞서고 답답한 마음도 들었는데 이렇게 외할머니댁에 와보니 나 역시 할머니를 부르며 온 마음으로 그녀를 느끼고 있었다.
오랜 시간 자가용을 타고 달리면서 ‘언제 또 오겠냐’ 싶었던 마음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벌써 다시 찾고 싶어지는 영광 법성포 외할머니의 댁. 그녀는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셨고 우린 먼발치에서 그녀의 온기를 그리워했다. 외할머니가 떠난 낡은 집과 고요한 밭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도대체 엄마라는 존재가 떠나버리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나는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외할머니의 유산인 이모와 엄마와 외삼촌은 “건강히 지내고 나중에 또 보자.” 인사하며 눈물을 훔치셨다. 도시로 돌아오는 고요한 차 안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부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를 그들에게 주시기를. 사랑하는 이들 마음에 평안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외할머니 댁에는 왜 또 가시려고?’ 무지한 자식에게 엄마는 ‘그냥 할머니 보고 싶어서’라고 답하셨다. 돌아오면서 혼자 눈물 흘리실 엄마가 걱정돼서 할머니 댁에 가지 말고 우리랑 놀자 했다. 멀리 이동해야 하는 것이 힘들게만 느껴졌는데 나 역시 다시 할머니를 만나러 오겠다 기약한다.
일본의 소설가 나시키 가호가 쓴 ‘서쪽 마녀가 죽었다’라는 책을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다. 서쪽 마녀였던 외할머니는 세상을 떠나며 손녀 마이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서쪽 마녀로부터 동쪽 마녀에게. 할머니의 영혼 탈출 대성공!" 손녀 마이가 서쪽 마녀를 그리워하며 “할머니가 정말 좋아” 하고 외치면 외할머니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 노우(I know)”
나의 외할머니는 세상을 아름답고 착하게 사시고 천국으로 탈출을 성공하셨다. 그런 그녀를 만나러 가끔 시골로 갈 것이다. 할머니가 예뻐했던 농작물이 자라는 밭에서 나도 마이처럼 할머니가 정말 좋다고 아직도 할머니가 느껴진다고 소리치면 할머니는 더 큰 울림으로 이렇게 답해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