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맛

말벌과 고양이와 개와 상처

by 미세스쏭작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한 것은 명절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동해 여행을 떠나기 위한 여정이 이른 시각부터 시작되었다. 일정이 맞는 네 식구가 설레는 맘으로 다시 만나고 싶었던 짙푸른 바다를 눈에 담고 속초 시장과 양양 펜션을 방문했다. 얼마 전에 아팠던 반려견 자두를 위한 여행이었기에 모든 일정과 거치는 장소들을 애견 동반이 가능한 곳으로만 정했다. 틈틈이 휴게소에 들러 군것질을 하며 들뜬 마음으로 당을 충전하고 유명한 식당에서 옹심이를 먹기로 했다. 통상 오랜 대기를 해야 입장할 수 있는 식당이었지만 운이 좋게 기다림 없이 착석했다. 오징어순대와 들깨 옹심이 등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드디어 자두가 좋아하는 양양 애견 펜션에 도착했다. 주인 어르신께 호실 사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을 때였다.

겁이 많은 자두는 목줄을 한 채로 내 곁에 꼭 붙어서 푸른 잔디밭을 거닐고 있었는데 웬 강아지 한 마리가 갑자기 튀어와서 짖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자두를 높이 안고 “안 돼. 저리 가.”를 외쳤다. 제법 덩치가 있는 녀석은 내 다리 여기저기를 할퀴며 자두를 내놓으라고 했다. 녀석은 놀자는 의미로 짖으며 달려들었을 수도 있지만 자두는 동족을 몹시 싫어하고 무서워하기에 무척 곤란한 상황이었다. 목줄을 하지 않고 있던 강아지는 나를 긁고 이리저리 밀치면서 높이 뛰기를 하고 연신 자두를 위협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서 아이코, 저런, 헉 소리를 내뱉었다. “강아지 주인분 빨리 와주세요!” 내가 절규하며 비명을 지르자 해당 견주와 나의 남편이 동시에 달려왔다. 남편이 자두를 받아서 다시 높이 번쩍 들어 올렸고 견주는 흥분한 개의 궁둥이를 때려보기도 하고 혼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잔디밭 위를 뱅글뱅글 돌면서 “안 돼. 그만. 저리 가.”를 반복했다. 우리조차 공포스러울 만큼 녀석은 너무나 흥분한 상태였다. 몇 분이 지나고 또 다른 주인 한 명이 강아지를 제압한 후에야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반바지를 입고 있던 내 다리는 여기저기 할퀴어서 발톱 자국이 남았고 상처의 쓰라림과 동시에 온몸에 힘이 풀려버렸다. 목줄 풀린 강아지에게 이렇게 당했던 것이 벌써 여러 번째였고 자두도 우리 부부도 이런 상황에 트라우마가 컸던 상황이었기에 극히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이만하길 다행이야. 안 물렸으니 천만다행이지.’ 생각해 봐도 내 몸은 바람에 나부끼는 행사장 풍선처럼 덜덜 떨렸다. 그 강아지의 견주는 잠깐 개똥을 치우던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면서 진심으로 미안해하셨다. 일단 앉아서 안정을 취하고 싶은 마음에 괜찮다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경계심 많은 자두가 또 이런 상황을 겪게 된 것이 안쓰럽고 속상했다. 그냥 뒀으면 분명 큰일 났을 상황이라는 걸 직감했기에 고작 몇 분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무서웠다.

펜션 주인분이 소독약과 연고를 들고 와서 괜찮냐며 걱정해 주셨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준비해 온 고기를 먹기 위해 바비큐 장소로 이동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고기를 몇 점 굽고 있는데 계속 “웅웅. 붕붕.”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 이번엔 말벌 떼였다. 그중 한 마리가 내 팔뚝에 앉았다가 머리 위로 세차게 날아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대각선 위쪽에 시커먼 말벌집이 CCTV 마냥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길 고양이 세 마리가 줄지어 달려오더니 고기를 좀 내놓으라며 야외 식탁 주변을 맴돌았다. 자두는 ‘고양이 놈들아. 꺼져라. 여긴 내 구역이다.’라는 말을 “멍” 한 글자로 줄여서 무한 반복했다.


멍. 멍멍. 멍멍멍. 멍멍멍. 나는 개.

냐옹. 냐아옹. 나는 길 고양이.

윙. 위잉. 붕붕. 나는 말벌.


어째 여기까지 오는 내내 모든 것이 순탄하고 즐겁더라니. 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바비큐 포기 선언을 해버렸다. 그러자 귀신 잡는 해병대를 나온 남동생도 고기를 먹다 죽을 순 없다며 뒷걸음질을 쳤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땅에도 하늘에도 가득하니 고기고 뭐고 그저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잠자코 계시던 엄마도 배가 불러서 그만 먹어야겠다는 거짓말을 하셨다. 그러자 언제나 대장님 역할을 해내는 남편이 고기를 구워서 방 안으로 넘겨줄 테니 들어가 있으라며 우리를 달래 주었다.

마침 지나가시던 사장님께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고 결국 도구와 에프킬라를 통해 말벌집이 제거된 후에야 까맣게 탄 불판에서 다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바비큐 파티를 끝내고 방으로 와서 탄산음료를 들이켜고 오늘 별일이 다 있었다며 가족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제 좀 씻어 볼까 하던 찰나에 똑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우리를 찾을 만한 이가 아무도 없는데? 말벌인가. 고양인가. 대체 뉘신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문 쪽으로 가보니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아무런 응답도 없는데 엄마가 벌컥 문을 여셨다.

“어? 안녕하세요.” 우리를 찾아온 사람은 오후에 자두에게 달려들었던 강아지의 주인이었다. 너무나 미안하고 걱정이 돼서 약국에 다녀왔다고 하시며 연고와 밴드와 따끈따끈한 시장통 먹거리를 건네는 그녀. 뜻밖의 따스한 음식을 전해 받자 허벅지의 후끈거림이 모두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리는 좀 어떠세요?” 걱정스러운 목소리와 눈빛에는 미안한 마음이 잔뜩 묻어 나왔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소독하고 연고를 바른 다리를 보여드렸다. “정말 괜찮아요. 뭐 하러 또 밖에까지 다녀오셨어요. 더는 마음 쓰지 마세요.” 서로 미안하다 고맙다 인사를 나누고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격려하며 헤어졌다.


식탁에 둘러앉아 고양이에게 할퀸 남동생과 강아지에게 할퀸 누이는 나란히 연고를 발랐다. 그리고 따뜻한 만두와 부들부들한 옹심이를 먹으면서 ‘이게 여행의 맛이지’ 하고 미소 지었다. 마음도 미각도 색다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여행의 참 묘미. 포슬포슬하면서도 보드라운 식감이 살아 있는 옹심이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그때 화내지 않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사다 준 사람의 걱정과 위로가 담겼기 때문이었을까. 하루에 두 번이나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었지만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같은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나에게 한걸음에 달려와 주고 말벌의 위협 속에서 묵묵히 고기를 굽던 남편의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여보는 안 무서웠어?”라는 질문에 “나도 무서웠지.” 하고 역시나 시크하고 담백하게 답했던 남편이었기에 더 큰 사랑과 고마움을 느꼈다. 다양한 추억과 감사한 마음을 듬뿍 얻은 여행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여행 중에 졸린 눈을 비비며 글을 썼다. 새벽 한 시. 가족들의 코 고는 소리마저 즐거운 여행 첫날이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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