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끝없는 매력둥이 조카들

by 미세스쏭작가

고작 몇 개월 단기 근무를 하게 됐건만 다섯 살 담이가 영상 통화를 걸어 “이모. 축하해요. 이제 백수 아니에요?” 하고 민망스러운 축하 인사를 건넸다. 코쓱 머쓱한 이모는 백수라는 말을 네 엄마가 가르쳤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나를 백수라고 부르던 조카가 백수가 뭐냐고 되물었다. 너랑 지금 영상통화 하는 사람이 백수 그 자체란다.

"이모는 백수가 아니라 천수야."라는 이상한 농담을 했더니 “이모. 그럼 전 박수예요.” 하고 답을 하는 조카의 라임 보소. 이번에도 이모의 완패.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에게 “우리 이모는 백수야!” 하고 자랑할 기세라 걱정이다.

이모가 말이지. 능력이 안 돼서 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요 몇 달 쉬고 있는 건데 식구들마다 백수, 백수 귀에 박히도록 노래를 부르니 듣는 백수의 마음이 참 평안하구나.


게다가 얼마 전에는 “이모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하고 물어서 듣던 백수 이모가 화들짝 놀라는 일도 있었다. 대체 어떤 것 때문에 목욕탕까지 함께 다녀온 이모에게 성별을 묻느냔 말이다!?

“이모는 당연히 여자잖아. 이모가 남자 같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따졌더니 조카 담이 왈, “그런데 이모는 왜 검은색 옷을 입어요?”

개구쟁이 두 녀석을 감당하려면 밝은 색깔 옷은 일회용으로 입고 버려야 하는 판국임을 조카들이 알 턱이 없었다. 매번 오염 부담이 없는 검은색 옷만 골라서 입었더니 남자냐 여자냐 물어 온 조카. 그 덕에 요즘에는 분홍, 파스텔, 알록달록 옷만 입는 이모가 되었다.


아이들의 눈과 입은 솔직하고 편견이 없어서 사랑스럽고 두렵기도 하다. 낡은 집에 가면 “왜 이렇게 헌 집인 거예요?” 하고 묻는다든지 “이모 오늘 화장하고 분홍색 립스틱 발랐어요?”, “이모부는 왜 오이를 안 먹어요?”, “이모는 밥을 많이 먹고 튼튼해지고 살이 쪄야 해요.”라는 등의 발언을 듣고 있노라면 뭐든지 눈에 담고 익히고 날것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신기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안 보는 듯하면서 예리하게 보고 있고, 본인이 본 것을 그대로 표현하고 따라 하는 아이들 덕에 면접을 보듯 긴장하게 될 때도 있다.


담이가 세 살이었을 때 ‘출발’이라는 단어를 잘 발음하지 못해서 ‘시발’이라고 발음했던 적이 있다. 흡사 심한 욕 같은 발음을 듣고 놀란 가족들이 “애가 욕을 배웠나?”, “욕을 어디서도 배울 데가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역학조사를 실시하는데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설마 내가 무의식 중에 욕을 뱉었던 적이 있었나 싶어서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눈썰매에 앉아 “시발”을 외치는 조카의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도대체 어떻게 출발이 시발이 될 수가 있는지, 발음의 문제인지 혹시라도 범인이 나인지 죄책감에 시달렸던 이모의 흑역사를 고백한다. 조카 앞에서는 넘어지고, 아까운 커피를 쏟고, 의자 다리에 발가락을 냅다 찧어도 정녕 나는 욕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다시 한번 주장하는 바다. -혼자 있을 때 저런 상황이면 출발(?)을 외치기도 함-


조카 바보가 된 이모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쁘다는 말을 두 조카를 통해서 체감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아이는 조카보다 몇 배로 예쁘고 말도 안 되게 더더욱 사랑스럽다는 말을 듣고 나는 설렘보다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보다 몇 배로 예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우면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참으로 궁금한 세계다.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는 날이 와줄지 모르겠다만 이모의 조카 사랑은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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