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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병원과 작별하고 다시 시작된 고민

부모가 된다 VS 딩크족으로 산다

by 미세스쏭작가

의사 선생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말씀하셨다. “나팔관 조영술 후에 임신이 잘 되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다른 때보다 가능성이 클 수 있으니 배란일 날짜를 받으러 오세요.” 우리는 어렵게 시간을 조율해서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배란일 날짜를 받고 잠깐의 상담도 했다. 병원에 한 번씩 갈 때마다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게 들었다.


결론적으로 임신은 되지 않았다. ‘아. 우리가 진짜 난임 부부구나.’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든 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그나마 임신에 매우 적합한 건강 상태라는 검진 결과가 힘이 되었다. 하지만 단호하게 한 줄인 임신 테스트기를 보면 화가 치밀었다.


병원에 다니며 쓴 돈, 징글징글하게 아팠던 나팔관 조영술, 견딘 만큼 컸던 기대, 혹시 모를 마음에 아파도 먹지 않았던 약, 멀리했던 격한 운동과 커피. 모든 것이 허무하고 지쳤다.

“여보. 이번에도 실패야. 우리 다른 난임 시술을 받아야 할까?” 남편은 더 이상의 병원 시술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지금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이 백이라면 여보는 어느 정도의 마음이야?” 난 남편이 당연히 ‘백’이라고 답할 줄 알았다. 남편은 따뜻한 눈빛과 확고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오십!”


잠깐만. 내가 지금 뭘 들은 거냐. “오십!? 오십!!!?? 반반이라고? 그런데 병원은 왜 갔어?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이야 뭐야.” 남편은 놀라서 펄쩍 뛰는 나를 잉? 하며 바라보았다. 매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속을 이렇게 몰랐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알고 보니 남편은 내가 원하는 것 같아서, 나는 남편을 위해서 난임 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한 달 정도 여유를 갖고 치열하게 고민해 보자.” 이세 문제를 두고 서로의 마음과 결정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다시 대화하기로 약속했다. 둘이서 이미 행복한 삶을 살며 최상의 만족도를 누리고 있던 우리였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사회는 우리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부부가 결혼을 했으면 당연히 애를 낳아야지. 애는 꼭 낳아서 길러봐야지. 남들 다 하는 거 너희도 해봐야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아라.'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흐름에 떠밀려 움직이고 있었다. 당위성이 우선시 되어 아이를 낳게 된다면 또 한 번 상상치 못한 고통에 봉착할 것 같았다.


'아기를 낳는 것이 좋을까. 낳지 않는 편이 좋을까.' 이 질문에 확고한 답을 내리는 것은 난임 부부인 우리에게도 필요한 과정이었다. 우리의 결정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번복 됐다. 결혼에는 때가 없다. 그러나 임신에는 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어려운 결정이었고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했다.


한 달이 지나고 남편은 마음을 정했고 충분히 고민했다고 했다.

“우리 둘이서 살자. 난 지금이 좋아.”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나는 재차 되물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몇 번이고 다시 질문했다. 다음 날도, 한 주가 지났을 때도, 몇 주가 지났을 때도 남편은 동일하게 대답했다. “말했잖아. 난 지금이 좋아.” 한번 마음을 정하면 쉽게 결정을 바꾸지 않는 남편이었다.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이게 맞는 결정일까.' 두렵고 고민이 됐다.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만일 아기를 낳지 않게 된다면 양가 부모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아기가 생긴다면 어떤 변화가 시작될까. 혹시 건강하지 않은 아기가 태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 문제에 지쳐 남편과 사이가 멀어지게 되면 얼마나 슬플까. 내가 진짜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처럼 희생하면서도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나는 아이를 낳을 만큼 성숙한 사람인가. 이런 저질 체력으로도 잘 양육할 수 있을까. 육아로 인해 내 삶이 초라해진다면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고민한다는 건 네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뜻이야.”, “언니. 그렇게 계속 고민하는 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요. 언닌 분명 잘할 거예요.” 아이가 없는 삶을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좋은 엄마가 될 것이라고 응원을 해주니 고마우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아마도 남편은 모를 테지만 논문 한 편을 써도 될 만큼 많은 책과 영상과 글을 찾아보았다. 난임 부부, 딩크족, 아이를 원치 않는 사람, 아기를 원했지만 갖지 못한 사람,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 등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전자책, 도서관 책, 영상, 브런치스토리에 올라온 수필들. 잡히는 대로 읽고 기록하고 참고하고 상고했다. 그중에서도 당당하게 딩크족을 주장하다가 생각이 바뀌어 간절히 아기를 원하게 된 사람들, 뒤늦게 아이가 없는 삶을 후회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때면 또다시 내 마음이 "오십 대 오십"을 외쳤다.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고 마침내 나의 마음은 남편의 결단과 동일한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가 없는 삶을 사는 쪽이 좋을 것 같았다. 내 결정은 거의 팔십 대 이십이었다. 마음을 잠식하고 있던 혼돈의 안개가 조금씩 걷혔다. 나의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남편과 여유를 즐기며 아이가 없는 삶을 살아보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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