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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나팔관조영술

고통의 끝을 보았다

by 미세스쏭작가

남편의 손을 잡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난임병원을 첫 방문한 날. 병원 규모에 놀라고 대기 중인 인파에 한 번 더 놀랐다. ‘요즘에는 아기를 가지려는 부부들이 드물다’는 통설과 기사가 모두 허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난임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정말 많구나.’ 놀라운 마음과 함께 동지 의식이 들었다.


총 세 번 정도 난임병원을 방문했었는데 글쎄. 나팔관 조영술을 받은 후로는 모든 기억이 흐릿해져 버렸다.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나팔관조영술 한 방으로 난임 병원에 관한 추억은 전부 바스러졌다. 의사 선생님이 내게 피검사와 동시에 나팔관조영술을 권하시길래 뭣도 모르고 시술대에 올랐다.


남편은 시술실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홀로 침대 위에 누웠다. 춥고 긴장한 나머지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는데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 커다란 쇠집개와 주사기 같은 것들을 들고 등장하셨다. 여태 남자 선생님께 진료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불편해서 분명히 여자 선생님으로 예약 요청을 했다.

‘뭐야. 이 병원 왜 이래? 여자 선생님으로 예약했는데 엉망이아!’ 삼 초 정도 분노한 뒤로는 무기처럼 보이는 도구들에 온통 마음과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잠자코 있어야 덜 아프게 해주시지 않을까.’ 묵직한 크기의 시술 도구들 때문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픈가요?” 나는 담대한 목소리로 짧게 물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속사포 랩을 하고 있었다. ‘아파요? 많이 아파요? 그 쇠집개는 왜 들고 오셨어요? 주사기랑 호스!? 그건 또 뭐예요!? 흑흑.’

내 속을 전혀 모르는 여성 조무사 선생님께서는 별 것 아니라며 나를 가볍게 다독여 주셨다. “참을만했다는 분들도 있고, 많이 아파하는 분들도 있어요.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의 생리통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의 생리통!?’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도 알 것 같은 설명. 너무 겁이 나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던 찰나에 “절대 움직이시면 안 돼요. 가만히 계세요.”라는 행동 지침이 내려왔다.

조금씩 조영제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데 차갑고 역겹고 아팠다. 비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악!! 아악!!!” 겁이 많은 나지만 병원에서 그렇게 소리를 지른 건 처음이었다.

“어! 어?? 움직이시면 안 돼요.” 의사 선생님과 조무사 선생님께서 경고를 하시는데 반대로 나는 이렇게 외쳤다.

“선생님. 그만하세요. 멈춰주세요. 저 그만할게요.” 그렇게 수차례 의사를 표현했으면 멈춰주실 줄 알았는데 그들은 베테랑 의료진이셨다.

“가만히. 움직이지 마세요. 다했어요. 가만히!”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침착하게 끝까지 나팔관 조영술을 진행하는 두 분.


조영제를 모두 투입하고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그대로 누워 있어야 했던 순간에는 큰 벌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하체가 뒤로 180도 돌아간 듯한 느낌, 내 몸속에서 날카롭고 굵직한 것들이 요동을 치는데 위아래로 이물질이 쏟아질 것 같은 증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이 상황에 움직이지 않는 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나는 그걸 또 어떻게 버텨냈는지 지금도 신기하다.


시술이 다 끝났지만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누워있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조무사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더 괜찮아질 때까지 여기서 쉬세요. 애는 어찌 낳을꼬. 이것보다 애 낳는 게 훨씬 더 아픈데.”

‘그러게요. 이것보다 훨씬 아프면 애는 어떻게 낳을까요. 이것보다 더 아프면 안 낳아야죠. 포기하겠습니다.’ 넋이 나간 채로 생각했다.


겨우 일어날 수 있게 되자마자 화장실로 향했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다가오는 남편에게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결벽증이 있는 나란 여자가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벽에 기대서 구역질을 했다. 통증은 세 시간 정도 후에 잠잠해졌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팔관이 양쪽 다 뚫려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선생님. 나팔관이 이미 뚫려 있었는데도 꼭 조영제를 투입해야만 했나요?” 너무 궁금해서 여쭤보았다. “많이 아프셨구나. 조영제가 지나가는 것을 봐야 나팔관이 뚫려 있는지 엑스레이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의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난임 검사와 시술의 과정은 힘들구나 싶었다.

나의 난자 나이와 신체 상태는 다행히도 이십 대 초중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큰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팔관조영술을 받고서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애가 안 생기면 시험관 아기, 그런 거라도 해 봐.”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불꽃 싸다구를 맞아도 싸다. 시술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을 아끼는 편이 최선이다.

출산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나팔관조영술을 경험했을 뿐인데 태어난 사람, 낳는 사람, 키우는 사람 모두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그만큼 아팠고 돈 주고도 못(안...) 살 경험이었다.

-계획했던 맛집에 못 가고 겨우 죽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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