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인 나와 남편은 크리스천이고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평생을 약속한 순간부터 우리는 아기를 소망하며 긴긴 기도를 해왔다. “건강하고 예쁜 아기를 갖게 해 주세요. 아기와 함께 더욱 행복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해 주세요.” 오랜 기도를 드렸던 우리 부부에게 몇 해가 지나도록 아기가 찾아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렬의 과정을 거치고 다양한 감정들을 소화해 내며 성숙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는 난임 부부에 속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주 수월하게 임신에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결혼을 하자마자 임신, 둘째 소식, 쌍둥이 출산을 넘어 나름의 피임을 했는데도 임신이 됐다는 지인들까지 있었으니 ‘우리도 원하기만 하면 바로 임신이 되겠구나.’ 하고 예상했다.
임신 시도 초반에는 ‘이번엔 실패구나. 임신 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좀 더 즐기자.’라는 마음가짐을 유지했다.
반년, 일 년, 이 년이 지나면서 임신 문제를 두고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대체로 이렇게 시작이 됐다. “왜 우리는 아기가 안 생길까?”, “앞으로도 계속 아기가 안 생긴다면 어떻게 할까.” 그리고 대화는 항상 이렇게 마무리 됐다.
“나는 괜찮은데 너는 괜찮아?.”, “상심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잖아. 자두(반려견)가 있잖아.” 대화를 통해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상실감을 안정감으로 바꿔나갔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의 온기는 곧 안도와 위로로 와닿았다.
한땐 월경을 시작하면 불합격 통지를 받는 심정이었다. ‘또 실패야?’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거절의 쓴 맛을 매달 더 강도 높게 체험하고 있었다. 특히 2023년의 설 명절은 몸도 마음도 지독히 춥고 힘들었다. 나는 생리 주기가 딱딱 맞는 사람이건만 생리 예정일이었던 설을 기점으로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와 우려 속에서 분주히 몸을 쓰고 오랜 시간 설거지를 했다.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아픈 몸으로 일을 해대는데 매번 나를 힘들게 했던 이가 또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시부모님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명절을 잘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의 상처를 잘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한 사람 때문에 매번 겪는 분노,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 임신. 동일한 문제로 계속 괴로움을 겪는 내가 바보 같고 싫었다. 생리 시작과 함께 앓아누웠고 눈물 바람으로 몇 날 며칠을 보냈다. ‘준비가 안 된 사람들도, 심지어 악인들도 아이를 낳고 떵떵거리면서 즐겁게 사는데. 왜 우린 아기가 안 생길까.’ 억울함과 서러움과 상실의 감정만이 온통 나를 사로잡았다.
‘이러다가 점점 더 집착하고 마음이 힘들어질 수 있겠구나.’ 상상 임신, 임신 집착 등의 문제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빨리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러기 위해서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었다. 심리 상담을 받아보고 싶어서 여기저기 수소문도 했다. 책도 보고 강연도 봤다. 그리고 눈물로 기도했다.
‘하나님. 왜 제가 이렇게 아파야 돼요? 언제까지 같은 사람, 같은 문제로 이렇게 울어야 하나요? 그리고 제가 아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기도를 드렸나요? 우리 부부에게 아기를 허락해 주세요.’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따지듯 묻기도 하고 힘을 내게 해달라고 간청도 했다. 차즘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었다.
“하나님은 우리 부부를 사랑하신다. 내가 믿는 주님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신다. 우리 부부에게 아기가 생기면 좋고, 생기지 않아도 감사하다.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지라도 선하신 주님을 믿자. 평생 감사하면서 살자.” 사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짧고 굵게 아파하고 슬픔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자 우리 가정이 다시 보였다.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난임을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말함으로써 마음이 가벼워졌다. 태도 또한 변화되었다. 남편도 나도 우리가 가진 것들, 감사할 수 있는 조건들을 크게 느끼기 시작했다.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남편이 있어서 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임신테스트기의 한 줄, 두 줄에 연연하지 않으며 산다. 생리가 시작되면 ‘이번 달에도 정확하네. 내 몸이 건강해서 좋다.’라고 생각한다. 흔들리는 날도 있겠지만 길게 낙심하면 내 손해! 힘이 들 때면 힘을 빼자. 걱정은 내려놓고 오늘을 살자. 나 스스로 고통 곁으로 가까이 가지 말자.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주문을 외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무조건적인 행복이나 불행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 목표했던 삶과 조금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더라도 우리 모두가 이미 가진 것들을 바라보며 기운을 냈으면 한다. 이제는 난임조차도 유쾌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우리 부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