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이요!” 정기 소독을 알리는 아주머니의 또롱또롱한 목소리. “아 참!” 무방비 상태로 있던 나는 헐레벌떡 대문을 열고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잠시만요. 신발 좀 금방 치워 드릴게요.” 남편과 내가 마트에 갈 때 신는 크록스 두 켤레, 운동할 때 신는 러닝화, 외출용 신발 몇 켤레만으로도 비좁은 신발장 입구. 아주머니가 편히 들어오실 수 있도록 신발을 분주하게 치우고 있는데 내게 하시는 말씀이 “하하. 괜찮아요. 애들 키우는 집이 다 그렇죠 뭐.”
음? 뭐지? 애들 키우는 집? 순간 당황했지만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길을 내드렸다. 화장실, 베란다, 싱크대, 세탁실 소독이 차례로 완료되자 서명을 요청하시고 홀연히 사라지신 아주머니.
‘우리 집이 어째서 애들 키우는 집처럼 보이는 걸까?’ 왠지 모를 여운에 정갈하게 정돈된 집을 둘러보았다. 남편의 게임기와 조이 스틱들, 내가 사랑하는 유아스러운 캐릭터 인형들이 눈에 띄었다. 쇼파에 나란히 놓인 그 인형들은 누가 봐도 다 큰 삼십 대 중반의 소유로는 보이지 않았다. 꽃 방석과 귀여운 자두 인형 덕분에 딸을 키우는 집처럼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아이 엄마로 단정 지어진 적은 매우 드물다.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퇴근한 남편에게 해주었더니 “어이없네.”라며 나지막하게 받아쳤다. (내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나 모르겠다.) 그러고는 아직 다 격파하지 못한 플레이스테이션 ‘용과 같이 유신극’에 눈길을 보낸다. “얼른 게임해.” 눈치껏 반가운 권유를 하는 나에게 “이야기하고 놀자."라는 남편. 말만 그렇게 할 뿐 요즘 새로 산 게임이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다. “난 마저 책 읽고 블로그에 포스팅할 거야.” 말이 떨어지자마자 귀여운 남편은 기쁨에 어깨를 으쓱하며 한 손으로는 게임기를 만지고 입으로는 “역시. 독서 천재!”라는 명언 못지않은 칭찬을 건넸다. “푸하하.”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없는 집이기에 가능한 시간적인 여유가 넘치는 저녁 풍경이다.
거실은 신나게 조이스틱을 두들기는 동갑내기 남편이 차지했고 나는 키보드를 신나게 두들길 수 있는 컴퓨터 방 책상 하나를 차지했다. 컴퓨터 두 대, 모니터 세 개, 스피커, 노트북, 빼곡한 책장까지 즐비한 이 공간은 나의 서재이자 남편의 피시방이다.
남편의 유토피아였던 피시방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남동생이 투자해서 산 컴퓨터 한 대는 친정집으로 돌려보낼 계획이었다. 모유 수유의 필수품이라고 해서 샀던 거실의 리클라이너는 벌써 삐걱대며 석연치 않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기의 안전이 우려되어 처분을 생각했던 높은 수납형 침대는 여전히 잘 쓰이고 있는 반면, 여동생과 친한 지인이 준 아기 물품들은 안타까울 만큼 방치되고 있다. 우리 집에 아기가 와줄까? 언제쯤… …
태어나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어머님” 소리를 듣고 ‘어?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를 맛보았던 날. 나의 지갑은 단단히 봉인되었다.
아직 누구의 부모도 아닌 사람을 칭하려거든 어머님, 아버님보다는 사모님, 손님, 고객님, 아가씨(지갑 봉인 해제) 등의 호칭이 보다 적절하고 합당하다. 본의이든 아니든 2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고, 딩크족도 갈수록 많아지는 우리 사회에서 부디 호칭의 유연성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개선이 되길 바란다.
어머님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운 진짜 이유는 사실 나이, 외모, 차림새보다는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아야 정상이지!”라는 사회의 시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게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든지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좋겠다.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를 더욱 이해하게 되고 진실한 마음과 마주하게 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애써왔던 나는 생각보다 더 아기를 기다리고 원했음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우리 부부도 누구의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 되는 날을 맞게 될까. “아이 키우는 집이 다 그렇죠.”라는 말에 “그러게요!”라며 공감하는 때가 올까. 당장의 내일 일도 알 수 없고 궁금한 나날들의 연속이지만 어떤 길을 걷게 되든 감사하며 살자고 남편과 나는 굳게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