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결혼식 날이었다. 오랜만에 재회하는 지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 언제나 그렇듯 잘 지냈냐는 말만큼이나 화두가 되는 그놈의 살 이야기.
“너는 살이 더 빠진 것 같은데?”, “살이 왜 그렇게 안 쪄?”라는 말과 더불어 “몸이 어디가 안 좋은 거 아니야?”, “너희 부부는 아기 안 가져? 피임해?”라는 말까지 들었다. 만일 내가 살이 많이 찐 상태로 등장했더라면 너도 나도 “혹시 임신했어?”라는 질문을 던졌을 테지.
결혼 오 년 차에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너희는 아기를 언제 가질 생각이야?”이다. 유일하게 거짓으로 답을 하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도 슬슬 아기 가져야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대답하지만 아기를 가지려고 시도한 지 어언 삼 년 차.
"임신 준비 중이야, 우리도 이제 시도해 보려고." 이렇게 답하면서 나와 남편은 서로의 얼굴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그리고 ‘나는 괜찮아.’라는 의미로 살짝 웃으며 사인을 보낸다. 이런 비밀스러운 마음을 잘 아는 우리이기에 타인의 자녀 계획에 대해 섣불리 묻지 않는다.
결혼한 지 꽤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아이가 없이 사는 친구들은 아기를 낳을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자연스럽게 아기가 생기면. 그렇면 낳고.” 더 이상 준비 중이라고 답할 수 없는 나 역시 같은 멘트를 날리는 요즘이다. 복잡한 마음을 구태여 파고드는 상대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화두를 돌리거나 말을 아낀다.
2023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여섯 명 중 한 명이 난임(불임)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부부를 비롯해 그 여섯 명 중 한 명에 속하는 지인들도 주변에 많이 있다. 요란한 말보다는 소리 없는 기도와 응원으로 서로의 가정을 중보하고 싶다.
가족 행사가 있어 시댁 식구들이 북적북적하게 모이는 날이면 우리 부부의 2세 소식에 관심이 주목되곤 한다.결혼 삼 년 차, “너희는 아기 계획 없니?”라는 단골 질문에 남편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저희도 이제 가져야죠. 준비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던 적이 있다. 그러자 식당 룸 전체가 고요해졌다.
헉! 순간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 고개를 떨군 채 밥그릇만 바라보았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기를 낳아야 덜 힘들 텐데.’, ‘얼른 낳아야지!’라는 우려 섞인 침묵임을 알고 있었다. 하시고픈 말씀들이 많으셨을 텐데 고요한 침묵을 지켜주셔서 긴장과 함께 감사한 마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조카, 손주가 주로 여아라는 이유로 "너희는 아들 낳아라." 우리 능력 밖의 권유를 건네시는 분을 만날 때면 섭섭한 마음과 반감이 들기도 한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또 어떠한가.
훅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몇 년째 아기가 안 생겨요.”라고 솔직하게 답을 하면 그들은 어떤 표정과 반응을 보일까. 어색한 침묵과 섣부른 조언이 싫어서 우리 부부는 하얀 거짓말의 처세술을 취하고 있다.
얼마 전에 계획과 달리 빠른 임신을 했다는 신혼부부에게 “우와. 축하해요!”라며 나도 남편도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거실 미니 테이블에 앉아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자기야. 정말 희한하지. 누구는 원치 않아도 아기가 생기고 우리는 오랫동안 노력해도 임신이 안 되고.” “그러게.”하고 공감하는 남편이었지만 이내 화제를 바꿔 재잘재잘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주말 계획에 대해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가 이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아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불완전성이다. 인생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착착 시행되지 않는다. 누구는 원치 않아도 임신을 하고 누구는 원해도 아기를 갖지 못한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생명의 이치를 두고 원망하며 불행을 자초하고 싶지 않다.
내 나이 삼십 대 중반. ‘아직 임신 준비 중’이라는 대답이 먹히지 않는 시점에 다다랐다. 부부가 함께 섭취한 엽산과 비타민D만 몇 병째.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지만 우리 부부의 사랑 역시 무르익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많이 감사하다.
글을 쓰는 도중에 ‘월경 예정일 2일 전입니다.’라는 캘린더 알람이 왔다. 나는 생리 주기가 정확한 여성이기에 이틀 후면 하얀 거짓말을 지속해야 할지 이만 작별해도 될지 판가름이 난다.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