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쾌하게 사는 난임부부입니다

We only live once!

by 미세스쏭작가

어쩌다 한 번씩 생리가 미뤄지면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하게 된다. 이 요물을 내가 이렇게 오래도록 사용하게 될 줄은 까맣게 몰랐다. 인터넷으로 한꺼번에 여러 개를 구매했는데 그때만 해도 이렇게 생각했다. ‘임신은 금방 될 텐데 남으면 누굴 줘야 하나?’ 난임 기간은 자꾸만 길어졌고 김칫국을 들이켠 나는 결국 재구매까지 해야 했다. 임신테스트기의 상자 앞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99% 이상의 정확도’ 오늘도 이 친구는 칼같이 정확하게 나를 평가해 줄 참이라고 한다.

두 줄이면 합격, 한 줄이면 불합격. 테스트기의 결과 표시부는 감독관이 들고 있는 시험지나 마찬가지다. 결과 표시부의 결과선(T)과 대조선(C)의 구역을 핑크빛 기운이 한 번 쓰윽 스치며 채점을 시작한다. 묘연한 기분과 긴장감이 나의 마음을 훑는다. 바로 그때 나 자신에게 혼잣말을 건넨다. “절대 실망하지 말자. 괜찮아.” 속상해하지 않기로 미리 주문을 걸어두면 우울한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다.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셀프 멘털 관리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결과는 이번에도 대조선 ‘C’가 나왔다. “씨… …” 한 글자의 감상평이 육성으로 터졌다. ‘매번 평가가 똑같네. 확실해? 믿어도 되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로 인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 이젠 임테기랑 대화도 하는 거야?’ 잠시 동안 나를 비참하게 만든 그 녀석을 욕실 쓰레기통에 내리꽂고 거실로 나와서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말았다.

귀가한 남편이 반려견을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테스트기 해 봤어?”, “응. 해 봤는데 결과는 아니야.” 나의 칼대답을 듣고 웅얼 웅얼 혼잣말을 하는 남편. 내가 못 들었다고 하자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한다. “분명히 무슨 말했는데? 궁금해. 말해 줘.” 아무 말도 안 했다고 잡아떼더니 멋쩍게 한다는 말이 “아. 기대했네라고 말했어.” 어이쿠. 잠시 마음이 시큰. “여보. 우리 강아지 데리고 산책 다녀 올래?” 가까운 동네를 산책하면서 늘 하던 말을 새삼 또 주고받는다. ‘우리 힘내자, 난 너만 있으면 된다, 지금도 행복하다.’ 진심 어린 위로가 부디 서로에게 닿기를 바라며.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손에는 포켓몬 빵 한 봉지가 들려 있었다.

우리 부부보다 늦게 결혼했지만 먼저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계획했던 것들이 현실이 되지 못해 일렬의 문제들도 발생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유쾌한 난임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면 나와 남편은 감사할 만한 조건들을 곧잘 찾아낸다. 우린 이래서 감사해야 돼. 우린 저래서 감사해야 돼. 수시로 열리는 감사 배틀 덕분에 마음이 부르다. 가정을 이뤄 함께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얼마 전에 집안의 어르신께서 “너희가 결혼한 지가 얼마나 됐더라. 아직 신혼이니?”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남편이 별 망설임 없이 “네. 신혼이죠.” 하고 답을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인터넷에 ‘신혼’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통상 결혼 후 이 년 이내를 신혼기라고 칭한단다. 우리가 만난 기간이 어느덧 구 년, 결혼한 지는 오 년 차가 되었다. 하지만 남편 말대로 우린 신혼이 맞는 것 같다. 크크. 여전히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주말이 기대되고 같이 있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다.

우리가 유쾌한 난임 부부로 살아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사랑과 결단력 덕분이다.

사랑.

빤한 이야기지만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 못 이길 것이 없다. 우리는 문제를 보기 전에 서로를 본다. 내가 평생 함께하기로 선택한 사람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여러 모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결단력.

반려자를 괴롭히는 것이 나타나면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든 사람이든 칼 차탄을 시킨다. 짧은 인생인데 구태여 힘들게 하는 것들에 얽매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작정하고 서로의 보디가드가 되어 주고 있다.


동전 던지기로 우열을 정할 때 어떤 이에게는 동전의 앞면이 행운이고 어떤 이에게는 동전의 뒷면이 행운이다. 하지만 변장한 행복을 알아차릴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이에게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모두 행운이 될 수 있다. 우린 동전의 앞면과 뒷면 모두를 행운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2023년 4월 한국일보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다. "신생아 10%가 난임 시술로 태어나고, 난임 부부가 매년 10% 증가하고 있다. 시험관 시술의 경우 첫 회 성공률은 15~30%이고, 3~4회 누적 성공률은 25~60% 정도다.(권대익 의학 전문 기자)" 고통스러운 시험관 시술 후 모두가 100%로 원하는 결실을 맺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술 실패로 인해 고통 끝에 또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건 너무나 가슴이 미어진다.


어떤 결과를 맞든 우리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당연한 사실을 놓치지 말자. 비록 난임을 겪고 있더라도 자신의 삶에 관대하길. 언제라도 그대 자신으로서 행복할 수 있기를. 당신의 건강과 마음을 잘 챙기기를. 그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 즐겁게 기를.

난임부부, 예임부부(임신 예정), 딩크족. 셋 다 우리를 설명하는 지칭어가 될 수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린 유쾌하게 사는 그냥 부부다. Becase We only live once.

"우리 여기로 가볼까?" 남편과 처음 걸어 보았던 호이안의 골목길. 낯선 길도 함께 걸으니 아름답고 좋았다.
keyword
이전 10화둘이라서 좋은 것들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