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지옥 남성 출연자들이 여성의 가방을 들어주는 모습이 한때 화제였다. 달려와 무거운 짐을 번쩍 들어주는 남자들의 행동에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멋지다, 고맙다, 훈훈하다는 반응이었다. 한때는 '여자의 가방을 들어주는 남자'를 두고 양극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꼴값이다. 자기 짐은 스스로 들어야 한다. 한 번쯤 들어줄 수도 있다 등등. 고지식한 관념에서 벗어나면 문제가 될 일이 아닌 것을.
성별 불문 무거운 짐을 잘 드는 사람이 있고 못 드는 사람이 있다. 필요에 따라 여자가 남자의 짐을 대신 들어줄 수도 있다. 물론 여력이 되는 남성이 여성의 짐을 들어주는 모습은 언제 봐도 듬직하고 멋지다. 간혹 여자의 가방을 들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솔로지옥 쇼트 영상에서 이런 인기 댓글을 발견했다.'별로 무겁지도 않은 짐을 들어주겠다고 물어보거나 손으로 쓱 채가던 남자친구의 모습에 반했고 사귀면서도 그 모습에 설렘을 느꼈다. 결혼 후 여행지에서 다툰 적이 있는데 그 상황에서도 무거운 짐만 본인이 골라서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화가 저절로 풀렸다. 이런 배려가 관심이고 사랑이다.' 1만 2천 개의 좋아요와 백 개의 긍정적 답글이 달린 이 사례에 정답이 있었다. 상대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하는 마음. 감정이 상한 상황에서도 아내의 짐을 기꺼이 지고 가는 남편이라니. 사랑스럽고 든든하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여자의 짐은 절대 못 들겠다는 남자는 아마도 인생의 갖가지 짐을 나눠지기를 꺼려할 것이다. '이런 일쯤은 네가 직접 해야지.' 사사건건 따지는 배우자와는 결코 평화로운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무거운 것은 남자가들어주는 게 당연하다고 우기는 여자 역시 멀리해도 좋다. 세상에 당연한 배려와 호의는 없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 몇 배의 가치를 발하는 것이 사랑이다.
Y와 나의 연애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수면부족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던 날이었다. 길을 걷다가 Y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미안한데 내 가방 좀 들어줄 수 있어?” “가방?” Y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와 가방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무서운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거워?” 민망한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얼른 카페라도 들어가자 청했다. “괜찮아. 들어주기 싫으면 안 들어줘도 돼.” 그러자 Y가 여자 가방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어색한 손길로 내 가방을 가져갔다. 그 후로 Y는 자연스레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내 가방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잃어버린 줄 알고 급하게 가방을 찾다가 그가 들고 있는 내 가방을 보고 감지덕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네 발로 기다가, 두 발로 걷다가, 마지막에 지팡이를 짚고 세 발로 걷는 것이 인간이라 했다. 긴 세월을 지내다 보면 함께 짐을 나눠지고, 대신 들어주고, 합력해 이고 지며 끌어야 하는 일이 숱하게 생긴다. 건강 상태에 따라 약자가 됐다가 강자가 되는 일도 거듭된다. 서로가 나눠지는 짐이 물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협력과 솔선수범이 선행되면 이 땅은 곧 천국이 된다. 그중 가방을 들어주냐 마느냐는 콩 한쪽 쪼개기와 같은 일에 불과하다. 그러니 작은 것을 가지고 줄다리기하느라 괜한 힘 쏟지 말자. 드라마 태양의 후예 유시진 대위의 말처럼 원래 연애라는 게 내가 해도 되는 걸 굳이 상대방이 해주는 것이다.내 짐이 곧 네 짐이고 네 짐이 내 짐이 되는 동행. 다만 사랑의 무게만큼은 덜어내지 말고 공평하게최대치로 짊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