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차 안에서 펑펑 울면서 여동생과 통화를 했다. "언니. 우리 자두가 죽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여동생은 아이들을 데리고 곧 장례식장으로 오겠다고 했다. 마음이 여린 조카 담이를 생각하니걱정이 앞섰다. '가족들이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거나 겁을 먹으면 어떡하지?'
정오쯤 조카 둘과 여동생 부부가 장례식장에 당도했다. 난 그때 꼬박 여덟 시간을 울고 있던 상태였다. 그럼에도 가족들이 한 명씩 모습을 나타낼 때마다 더 격정적으로눈물이 터졌다. 나와 함께 자두를 아끼며 사랑했던 사람들. 참담한 내 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자두가 살아생전에 너무나사랑했던 가족들이기에 마음이 동했다.
조카 둘과 자두는 잘 어울려 놀지 못했다. 어린 조카들의 서툰 손길을 자두가 몹시 두려워했다. 그러면서도 유모차를 끄는 사람, 어린아이들만 보면 반가운 기색을 표출하며 목줄을 당겼다. 첫 조카 담이는 클수록 조심성 있게 자두에게 다가갔고 자두도 점차 담이를 신뢰했다. 시간이라는 해결책이 있었으나 우리에게 주어진 기한이 한계절처럼 짧았다. 자두에게 외사랑을 쏟아부었던 담이였기에 너무나 마음이 쓰였다. 혹여 죽음에 관한 트라우마가 생기거나 장례 절차 가운데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대반전.
어디선가 자꾸만 "데헷"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담이가 멀찍이 서서 우는 게 아니라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이는 재차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왜 어른들이 아기처럼 소리를 내서 엉엉 울어요?" 담이는 처음 보는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고 웃기다고 했다. 허허. 이모가 괜한 걱정을 했네 그려.
장례식장에서 보냈던 모든 시간은 힘들었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자두의 마지막 가는 길을 간직하고 싶어서 짧게녹화를 해 둔 영상이 있다.담이는 그 영상을 볼 때에도 까르르 웃었다. 사 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담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대체 무슨 포인트에서 웃는 거야?"
"데헷. 사람이 가끔 웃음을 못 참을 때도 있는 거잖아요. 어른들이 어린아이처럼 우는 게 저는 웃겨요." 이것이 정작 여섯 살 아이의 발언이란 말인가. 지금도 장례 기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냐고 물었다. "네. 저는 가족들이 소리 내서 우는 게 웃겨요."더니 담이는 천진하게 대답했다.어이가 없던 나는 그만 육성으로 웃고야 말았다.
세상에.자두의 장례식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웃기를 다 하고.담이는 내 남동생에게 추가로 이런 비밀까지 누설했단다. "삼촌. 저는 사실 이모부도 좀 웃겼어요."
장례식장에서 까르르 웃던 담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자두 이야기를 한다. "자두 언니는 하늘나라에 있지요?", "이거 유치원에서 자두 언니 주려고 만들었어요.", "자두 언니는 이제 안 아파요?" 겉이 다를 뿐이지 모두 한마음으로 자두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의 애도는 평생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겠다.모든 만남에는 끝이 있다는 말이 이토록 아픈 과정일 줄이야. 각자의 애도 방식을 존중하며 완만한 슬픔을 향해 나아간다. 이제 더는 자두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하지 않는다.세상에서 가장따뜻하고 아름답고 소중했던 나의 자두를 마음의 눈으로 본다. 자두를 만나 감사했고 원 없이사랑하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