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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Sep 13. 2024

세상이 변하니까 추모품도 변해

추모품의 기쁨과 슬픔

 부모님 댁에 방치돼 있 택배 상자 하나. 며칠이 지나도록 미개봉 상태인지라 의아했다. 남동생에게 무얼 샀느냐며 확인해 보란 말을 건넸다.

 여름 햇살이 비치는 거실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는데 뜬금없이 "자두다!" 하는 남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옆에 있던 남편도 덩달아 "그렇네. 자두가 왔네." 하며 이상한 말을 했다. 우리 자두가 왔다고? 하늘나라에 간 자두가 어떻게 여길 왔다는 거야? 놀란 나는 두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그들이 내게 건 건 직사각형 모양의  액자였다. 아... 정말 우리 자두네.


 우리 부부는 말없이 례식 장에서 보내 준 추모품을 응시했다. '우리 가족 자두 사랑해.'라는 낯익은 문장이 보였다. 자두가 사용했던 식탁에도 동일하게 새겨져 있던 구였다.


 추모품 제작을 위해 자두의 사진 열 장을 추려 작가님의 메일로 보냈다.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이 찍힌 다도의 사진을 전달했고 되도록이면 예쁜 자두의 얼굴이 드러난 작품이길 바랐다. 그런데 우리에게 도착한 추모품은 쓸쓸해 보이는 자두의 뒷모습이었다. 액자 속의 자두는 유일하게 좋아했던 밝은 색의 패딩 옷을 입고 있었다.

 작년 겨울 자두와 함께 남편을 마중 나갔 추억이 생각났다. 겨울비에 젖은 도로는 우중충했지만 그날의 우리는 밝고 즐거웠다. 같은 색깔의 옷을 입은 세 식구는 텔레파시가 통했다며 가로등 아래란히 기념사진을 찍었다.


 자두가 죽고 난 후 나와 남편은 작은 패딩을 품에 안고 대성통곡했다. 어떤 옷도 입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던 자두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옷인지라 의미가 깊었다. 한 여름날에 받아 본 추모품 속의 자두가 그 옷을 입고 있었다. 남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훔쳤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기에 나도 덩달아 눈물 터졌. 가족들 모두 자두의 뒷모습이 슬퍼 보인다며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내 생일. 자두가 다시 한번 나의 품으로 왔다. 오랜 지인이었던 J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머뭇머뭇 종이 상자 하나를 건넸다. 생일 선물 개봉한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동그랗고 큰 눈에 귀여운 갈색 코, 앙 다문 까만 입술. 이번엔 양모로 만든 자두의 앞모습을 본뜬 추모품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며 몇 번이고 고맙말을 전하자 J는 기뻐하며 안도했다. 괜히 아픈 마음을 건드릴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는 J의 말에 깊은 위로를 받았다. 게다가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뒤져 자두의 사진을 여러 장 캡처하여 작품을 의뢰했다니. 감동이었어! J의 정성 어린 배려 덕분인지 메모리얼 스톤보다도 더 큰 위로가 되었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자두의 뒷모습. 양모를 다듬어 만든 자두의 얼굴. 만드는 이의 시간과 공이 들어간 예술품은 적잖은 위로로 다가왔다. 나를 생각하여 귀한 작품을 의뢰해 준 친구의 마음은 말해 무엇하랴.

 자두는 바라는 바가 있을 때면 입을 동그랗게 모은 채 력적인 입술을 뽐내곤 했다. 침실 조명 옆에 자리한 자두의 표정이 딱 그러다. 매일 밤 언니의 꿀잠을 응원하며 '슬퍼하지 마. 언니. 나는 지내.'라고 인사하는 것 같다. 자두에게 재차 기도하듯 말을 건다. 너는 영원한 나의 기쁨, 슬픔, 그리움, 행복 그리고 훈장이라고.

 세상이 변하니까 추모품도 변한다. 내 상처도 슬슬 딱지가 앉고 새살이 차오르는 중이다. 변치 않는 건 자두를 향한 가족들의 사랑뿐이리라. 넘실넘실 그리움이 오늘도 나의 가슴속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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