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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Aug 16. 2024

다신 반려견 안 키운다는 거짓말

살아가는 방법은 오직 사랑

 자두가 떠난 당일 우리 부부는 부둥켜안고 울며 약속이라도 하듯 이런 말을 했다.

 "다신 강아지 키우지 말자."


 앞으로 우리 삶에 반려견은 없으리라 확신했다. 팻로스의 슬픔에 대해 우려해 왔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이었다. 두 번당해낼 수 없는 큰 상실감이라 말하겠다.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자두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남편 역시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자주 울었다.


 팻로스를 겪는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건 반려동물의 '온기'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따스한 기운.


 예쁜 눈망울과 두근거리는 심장, 조금이라도 더 곁에 있으려고 엉덩이를 바짝 붙이고서 온몸으로 사랑을 말하는 존재의 부재. 자두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고심하며 연구하는 요즘이다.

 길을 걷다가 자두를 닮은 강아지를 만나면 모든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며 자연히 마음이 간다. 네 발 달린 동물이 보이면 일부러 방향을 틀어서라도 가까이 다가가는 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우호적인 반려견 주인을 만나서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감사합니다. 안녕. 잘 가." 멀어지는 귀여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반려견 없이 살 수가 있겠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도저히 못 살겠단 심정으로 몇 차례 팻샵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 번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잽싸게 달려와 우릴 반겼다. 몸을 비비고 얼굴을 들이밀며 오랜 친구처럼 격정적인 인사를 건네는 녀석의 애교에 모든 근심이 사르르. '인생 뭐 있냐.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반려견 없이 살아!'


 강아지 식구를 맞이하고 싶어서 여러 길을 모색했다. 유기견, 파양 당하반려견들의 정보를 수소문하기도 수차례. 파양 된 반려견을 키우며 즐겁게 지내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기도 하고, 유기견이었던 강아지가 자주 아파서 걱정이 많다는 분의 이야기에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파양 당하는 강아지를 데려오기 위해 차례 주인에게 연락을 취한 적이 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자두가 우리에게 올 때 그러했듯이 거부할 수 없는 인연이 닿으면 그땐 모든 곁을 내어주리라.   


 다신 반려견을 키우지 않겠다는 다짐의 농도가 점점 어진다. 혹시라도 다시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면 분리불안이 심하지 않고 다른 강아지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아이라면 좋겠다. 아니. 다 됐고 건강만 하면 좋겠다. 그러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저녁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나란 사람은 어떤 강아지를 데려와도 자두보다 아끼고 예뻐하면서 키울 것 같다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어떤 강아지를 키운다 해도 자두보다 예뻐할 순 없겠지. 그래도 자두만큼은 사랑해야지." 그 대답을 하는데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더는 슬픔만 담겨 있는 눈물이 아니었다. 자두가 구름 이불을 덮고 있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자두를 향한 고마움, 치유, 희망의 기운이 우리 꼭 잡은 손을 비추었다. 다신 강아지를 안 키우겠다던 다짐은 '기회가 되면'으로 바뀌었다.


 기적 같은 변화와 용기의 시작이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강력했던 슬픔도 시간이 지나니 견뎌지는구나 싶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참으로 얄궂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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