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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Jul 19. 2024

의사 선생님이 건넨 뜻밖의 질문

멈출 줄 모르던 기침과의 이별

 동네에서 인기 많고 친절하기로 유명한 이비인후과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내 목 상태를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리셨다. "아이고. 목이 이지경이 됐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모니터 하얗게 헐어 있는 목구멍 사진이 보였다.


 "주로 어떤 상황에서 기침이 많이 나오요?" 선생님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아침에 일어날 때, 버스를 탈 때, 장소가 바뀔 때, 목이 마를 때, 잘 때,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이 나온다는 개연성 없는 답변을 했다. 선생님은 천식 환자가 쓰는 흡입제를 처방하시며 증상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하셨다. 간신히 기침을 참으며 일어나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그리고 뜻밖의 질문을 건네셨다.


 "혹시 최근에 무슨 슬픈 일 겪었어요?"


 이비인후과에서 이런 질문을 받다니 이것이 바로 선생님의 인기 비결?

 "얼마 전에 반려견이 죽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선생님은 너무나 속상하다며 그래도 반드시 힘을 내야 한다고 응원까지 보태주셨다. 그땐 까맣게 몰랐지만 선생님의 질문에 모든 답이 있었다.


 대학병원에 갈 일이 없길 바라며 약을 잘 챙겨 먹고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호흡기 흡입제를 들이켰다. 그러나 전혀 차도가 없었다. 미친 듯이 기침이 나왔고 급기야 필라테스를 가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불가능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끼고 팔로 입을 막아도 기침을 할 때마다 남들 눈치가 보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연신 기침을 해대는 나는 기피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콜록콜록. 콜록콜록. 마른기침과 뱃속부터 나오는 우렁찬 기침이 대환장의 콜라보를 이루며  흔들었다. '내 몸이 이상해. 진짜 이상해.' 이대로는 정상 생활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천식, 기침, 목 통증, 가래 등에 대한 정보를 뒤지다가 놀라운 힌트를 하나 얻었다.


 한의학에 기수(氣嗽)라는 증상이 있는데 이는 신경을 많이 쓰거나 큰 슬픔을 겪을 때 발생하는 기침이란다. '주로 어떨 때 기침이 많이 나오느냐', '최근에 슬픈 일을 겪었'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을 곱씹어 보았다.

  슬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 특히 눈물을 쏟고 나 가래, 기침, 갈비뼈 통증이 심했었다. 스트레스성 기침 증상은 내 상황과 딱 맞아떨어졌다. 운동, 앞가슴뼈 지압, 귤껍질 차를 마시면 도움이 된다기에 일단 운동부 하자 자가진단을 내렸다.


 슬픈데 슬퍼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건 인간의 능력 밖의 영역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는데 우울해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가족 하나밖에 모르던 자두의 빈자리는 매우 크.

 래도 다시 필라테스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운동장과 공원을 뛰기 시작했다. 달리기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남편의 손을 잡고 노을이 타는 육상 트랙으로 나갔다. "기침하는데 괜찮겠어?"라는 남편의 걱정에 "괜찮아. 안 죽어." 하고 답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남편과 함께 달리며 구슬땀을 흘렸다. 한 달 이상 달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기침이 잦아들었다. 행 중 다행인 일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어떻게든 몸을 움직인다. 지독한 그리움과 슬픔을 안고 운동장을 달린다. 낯선 사람들 틈에 섞이고 자주 하늘을 본다. 슬픔이 목구멍을 하얗게 태우고 갈비뼈를 들쑤셔도 제법 씩씩하게 산다. 때때로 행복 느끼기도 한다. 예수님 품에 안긴 자두가 예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믿으면서 일과 십의 슬픔을 오가며 다. 그때 내게 뜻밖의 질문을 해 주신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 "선생님. 믿기 힘드시겠지만 제 기침은 달리기로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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