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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Jun 26. 2024

뜻밖의 위로와 선물

자두 없는 둘째 날

 자두가 떠난 이튿날. 거울을 보니 웬 할머니가......?

 '마음고생이라는 게 이런 거군.' 하루가 십 년처럼 흐르는 느낌이었는데 그걸 내 얼굴이 굳이 증명하고 있었다. 세상에. 자두야. 언니 이러다 큰일 나겠다. 애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체력임을 깨달았다. 식욕이 없더라도 먹고 마셔야만 했다. 그리고 슬픔의 정도를 걷기 위해 굳게 다짐한 바가 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통과할 것.

 지독한 상실감 또한 사랑의 대가이므로 스스로 책임질 것.

 성급한 회복을 바라지 말 것.


 가로등 불빛이 유독 환하게 느껴지는 저녁. 자두와 함께 건너던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여보. 나는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나만 계속 이런 상태일까 봐 무섭고 걱정 돼. 내가 오래 슬퍼하더라도 이해해 줘."

 "나도 마찬가지야."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슬픈 기운이 느껴졌다.

 

 애도의 눈물은 그야말로 인체의 신비를 경험케 했다. 눈은 두 개인데 무려 여섯 갈래의 눈물 줄기가 주룩주룩 뿜어져 나왔다. 팻로스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눈물의 노다지라 답하겠다. 새벽에 깬 남편은 화장실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펑펑 울었다고 했다. 나는 다행히 잘 자더란다. 흠. 전혀 아닌데? 겨우 잠든 남편이 깰까 옷방으로 건너가서 숨죽여 울었건만. 내 눈엔 남편 역시 곤히 자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퉁퉁 부은 눈으로 하루를 시작한 우리 부부는 딱 한 시간만이라도 울지 않고 견디기 캠페인을 벌였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무작정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창 밖 풍경에는 자두가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 도도하게 걷던 모습, 내 품에 안겨 신호를 기다리던 애틋한 그림이 가득했다. 손수건에 두 눈을 박고 어깨를 들썩이며 그렇게 동네를 빠져나왔다.


 자두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쇼핑몰에 주차를 하고 분주한 사람들 틈에 섞였다. 퓨전식 크림 수제비를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음료를 마시며 독서를 하고 때론 멍하니 있다가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서로를 토닥토닥.  아프지만 나름 따스한 오후를 보냈다. 남편은 내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했다. 과장을 좀 보태 우리 둘 다 '네가 아니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깊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누구보다 자두를 사랑했던 우리 두 사람이었기에 그 공통분모만으로도 적잖은 위안이 되었다.


 자두를 충만히 그리워하는 사람들답게 우린 사사건건 자두 이야기를 했다. 후회되는 것들, 좋았던 것들, 행복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 나누며 슬픔을 달랬다. 자두에 관한 이야기를 반복하며 마트에 가서 장도 봤다. 냉장식품 코너의 아주머니께서 밝은 미소로 우리 부부에게 말을 거셨다. 열심히 만두를 팔고 계셨는데 어찌나 친절하신지 나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만두를 담았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리고 마트를 또 한 바퀴 돌았다. 울어서 피곤한 나머지 어서 잘 시간이 되면 좋겠싶었다.


 그때 만두를 판매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불러 세우셨다.

 "두 사람이 어찌나 예쁜지. 참 보기 좋네요. 내가 라면이라도 더 주고 싶은데 잠깐만 기다려 줄래요?" 감사하지만 라면은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아주머니께서는 라면 두 개를 우리 손에 쥐어 주시며 서비스이니 계산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쁜 부부 또 봐요."라는 인사에 괜히 또 울컥.

 "나 금방 위로받았어."

 "나도. 나도."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는데 하나의 깜짝 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자두의 흔적을 발견한 나는 그만 목놓아 울고야 말았다. 남편에게 이것 좀 보라고 손짓했다. 그는 탄식하며 충혈된 눈으로 한 곳을 응시했다.

 자두가 살아 있을 때 찍어놓은 발자국이었다. 이 작은 발로 가족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하겠다고 앞장을 섰었지. 두가  안에서 우릴 기다리며 찍어놓은 발자국 두 개 평생 내 가슴속에 새겨져 있으리라. 편안한 의자를 등지고 두 발로 서서 작은 발소리에도 귀 기울였을 자두를 떠올리니 그저 안쓰럽고 그립다.


 저녁 식사를 위해 아주머니께서 주신 라면을 끓였다. 입맛이 없어 딱 한 봉지로 남편과 나눠 먹다. 평소라면 세 배는 먹어줘야 성이 차는 먹보 부부인데 식욕이 줄었다. 자두 덕분에 계획에도 없던 다이어트를 다 한다.

 자두가 떠나고 나서 우리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예나 지금이나 막강한 귀염둥이영향으로 인해 두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기 시작했다. 놀라운 비밀들 차차 누설하도록 하겠다.

그리운 흔적들 평생 간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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