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네로와 수레

플란다스의 개 다시 보는 남자 #1

by 김현호

네로는 벨기에 플란다스 지방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근근이 산다. 네로와 할아버지는 낡은 집에서 기운 옷을 입고 생활한다. 할아버지의 우유 배달은 유일한 생계 수단이고, 네로는 천진난만하고 활기차지만 세상을 떠난 엄마를 떠올리면 눈빛이 깊어진다. 네로 옆집(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에는 애교 넘치고 간드러진 목소리를 지닌, ‘가난’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만 보았을, 부잣집 딸 아로아가 살고 있다.


‘플란다스의 개’ 첫 회는 만화영화답게 밝고 명랑하다. 밝은 채도의 푸른 배경, 역동감 넘치는 주인공의 움직임과 전형적 인물 설정은 그 시절 케이블 TV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국민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



그렇다.

난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둘 다 걸친 세대다. 다니던 국민학교가 간판을 바꿔 달았고, 국민학생이던 나는 초등학생으로 변신했었다. 94년 대전 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가 꿈꿨을 21세기에 살고 있는 나는 이제 보고 싶은 만화영화를 녹화하기 위해 공 비디오테이프를 사지 않아도 되었다. 놀라운 기술의 발전에 감사해하며 사과가 보름달처럼 떠있는 맥북을 열어 트랙패드에 손가락을 문질렀다. 다시 보기. 만화영화가 플레이된다. 와 e 멋진 세상이다. (MBC에서 2000년대 초반 나왔던 프로그램이다.) 아침 신문을 펼쳐 그날 무슨 프로그램이 몇 시에 할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찾았는데, 이젠 손가락으로 그저 ‘결제하기’만 누르면 된다.



플레이,

4개에 만원 짜리 편의점 수입 맥주 한 캔을 다 비웠다. 치킨도 좀 뜯었다. 생각보다 빠른 전개에 놀라며 30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첫 회를 삼켰다. 치킨은 남겼다.

첫 회부터 내용이 짠 하다. 결말을 알고 봐서 일까. 비단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헤어짐을 예상해도 떨리는 마음으로 연애는 꼬박꼬박 하듯, 설렘 없이 만화영화 정주행을 시작한 것은 아니니까.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첫 회를 보니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19세기 벨기에 플란다스 산産 유기농 흙으로 만든 스푼을 통해 떠먹는 이야기는 쌉싸름했다. 혀가 아리다. 배달을 업으로 하는 직업군은 어떤 품목을 배달해도 고만고만 하구나, 라는 노동 계급에 대한 물음을 던져 보기도 했다.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파란 시내버스 뒷자리, 뒤에서 두 번째,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출근하며 어젯밤에 본 ‘플란다스의 개’를 떠올렸다. 우유통을 수레에 싣고 길을 나서지 않았지만 우유통 서너 개를 어깨에 얹고 있는 기분이다. 아, 이건 어젯밤 먹은 치맥의 영향도 있다. 하룻밤 사이에 늘어난 중력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고개를 떨구고 졸다 보니 회사 앞 버스 정류장이다. 뒷문으로 일꾼들을 토해내는 파란 시내버스에서 내려 파란 로고가 창창하게 박힌 회사 정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늘도 영화 ‘매트릭스’ 에나 오는 빨간약과 파란약 중 파란약을 먹었다. 빨간약은 가상의 매트릭스 공간에서 깨어나는 약이고 파란약은 매트릭스 내의 생활을 영위하는 약이다. 월급은 유용한 파란약이다. 카드값과 대출금 위에 파란약을 덧발랐다.



아직,

수레는 할아버지 몫이다. 네로가 우유통이 든 수레를 끌어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파트라슈는 못된 주인과 함께다. 다음 회엔 파트라슈와 네로는 함께겠지?


대학생이 되면서 등록금과 생활비라는 우유통을 수레에 담아 끌기 시작했다. 대학 생활 첫 회는 ‘플란다스의 개’의 시작처럼 신입생 패기로 밝고 명랑했다. 새로운 관계는 하릴없이 반짝거렸고, 어깨너머 어른 흉내도 제법 빨리 익혔다. 아로아같이 애교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또래 이성을 만나 연애도 했다. 파트라슈는 옆에 없었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막노동도 끄덕 없었다. 역시 젊음이 좋았구나. 산은 안 보이지만 먼 산을 찾아본다. 흠.


누구나 어른의 수레를 넘겨받는 시간이 온다. 혹자는 수레가 하나만이 아닐 수도 있겠다. 어른의 시간을 보내며 십이간지 동물들을 하나씩 다 세어봤지만 수레는 가벼워질 날이 없었다. 오히려 불안해서 수레에 이것저것 다 담았더니 무겁다. 수레 빈자리가 모자라 어깨에도 얹혀 있었다. 뻐근하다. 사무실 모니터를 바라보며 내적 댄스가 아닌 내적 소리지르기를 시도해본다. 파트라슈가 수레를 끌어주었으면… 하면서.

파트라슈~


파트라슈는 주정뱅이 주인과 함께다. 아로아의 부탁으로 앤트워프에서 딸기맛 사탕을 사서 할아버지한테 돌아오는 길에 네로는 우연히 파트라슈를 보게 된다. 목이 말라 힘겨워하는 파트라슈에게 네로는 자신의 신발을 벗어 우물을 길러준다. 주정뱅이는 그런 네로를 밀쳐낸다. 파트라슈는 주인의 타박을 받으며 다시 길을 떠난다.


생각해보니 파트라슈는 아무한테 나오는 친구가 아니었다. 파트라슈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네로는 손을 뻗었고, 그 도움은 무력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나에 네로와 파트라슈는 감정을 교류한다. 감응의 순간이다.



우린 파트라슈가 네로와 함께할 것을 알고 있다. 너무 뻔한가? 뻔해도 당연한 과정에서 당연한 결과가 나온다. 마음 착한 네로가 파트라슈를 거둘 것이다. 늘 그렇듯이.

내 수레의 무게 때문에 주위에 물 한잔 건넬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변에 물론 파트라슈도 없다. 네로도 대단한 행동을 하진 않았다. 힘겨워하는 파트라슈를 바라봤고 물을 건넸을 뿐이다.


그저 물 한 모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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