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과 산딸기 바구니

플란다스의 개 다시 보는 남자 #2

by 김현호

네로는 아로아와 숲으로 산딸기를 따러 간다. 아로아에게 숲은 처음 접하는 장소다. 네로의 듬직함을 믿는 아로아 엄마는 숲으로 가는 이들에게 도시락까지 챙겨준다. 숲에서 신나게 산딸기를 따던 중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고, 네로와 아로아는 숲 속 산장에서 비를 피한다. 저녁이 되어 비가 그치는데,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로아를 기다리며 부모님은 걱정하기 시작한다.



썸some,

이다. 네로와 아로아의 관계는 연인도 아닌 오빠 동생 관계도 아닌 호감 범벅이다. 다양한 군상 속에서 가벼운 관계를 맺는 지금의 썸 개념은 아니다만, 극도의 호감을 가진 둘의 만남은 썸이라 하자. 만화영화 어린 주인공의 순수한 관계를 두고 별의별 생각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암튼, 단순 오빠 동생 사이는 아닌 것은 분명하다. 서로 걱정하고 챙기고 심지어 손도 잡는다. 손을 잡는다는 건 남녀 사이에 큰 의미를 지닌다. (이건 나만 그럴 수도 있다.)



산딸기를 따러 갔다가 주인공이 비를 피하는 장면에서 황순원의 ‘소나기’가 떠올랐다. 긴장감 있는 장소에서 비의 등장은 연애사에 있어 늘 감사할 뿐이다. 예기치 않은 낯선 상황은 서로를 의지하고 기대게 만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아로아를 업고 개울물을 건너진 않았지만, 아로아가 개울에 떨군 산딸기 바구니를 네로는 비에 흠뻑 젖어가며 구해온다. 물에 떠내려간 아로아의 산딸기를 대신에 자신의 것으로 채워주겠다고 한다. 서로 손을 맞잡는 에로스와 떠내려간 산딸기를 챙기는 플라토닉의 관계를 넘나드는 ‘산딸기 바구니 구출 작전’은 삼국유사에 나온 ‘헌화가’ 마저 떠오르게 한다.


자줏빛 바위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자태와 용모가 뛰어난 수로부인을 위해 벼랑 위에 핀 철쭉꽃을 꺾어 온 노인의 마음처럼 네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저녁 느지막이 비가 그치고 붉게 노을이 질 시간에 네로는 아로아를 집으로 데려다준다. 여심 공략으로는 최고의 하루였지만, 아로아의 아버지 코제트는 기분이 좋지 않다. 속으론 ‘이놈의 계집애…’로 시작하는 대사를 뱉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네 막장 드라마였다면 ‘김치 싸대기’류의 ‘산딸기 펀치’ 도추가 해도 될 것 같다.) 혹여 아로아가 비를 맞아 감기라도 걸리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모습 또한 전형적이다.


“처음부터 네로 같은 녀석과 어울리지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말을 타고 이동하는 아로아 아버지 코제트와 우유통 수레를 끄는 네로 할아버지는 우연히 마주친다. 날 선 종이에 손 끝 베인 것 같이 아릿한 장면이다. 벤츠와 배달용 자전거가 마주하는 셈이다. 이들의 계급적 차이는 코제트의 분노에 명분을 더해줬다. 휴. 어린이 만화영화가 이래도 되나. 매 회 총천연색 스펀지같이 말캉한 스토리 속에 바늘이 숨겨져 있다. 순수한 네로와 아로아의 관계에도 사회 시스템이 주는 계급의 논리가 들어와 있었다.





그럼,

우리의 연애는 안녕하신가.


의심과 확신의 경계 그 어딘가를‘썸’이라 한다. 썸 some은 둘 사이의 썸sum이 되지 못할 때가 많고, 서로 왕래 없는 도서지역 섬처럼 되는 경우가 많았다.(라임 좀 맞춰봤다.) 경계에서 감정 핑퐁을 하다 그만둔 게임이 꽤나 많았다. 물론 혼자 헛스윙을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청춘은 주어졌고 마음이 동하는데 어쩌겠는가. 감정을 던지는 서브만 할 때도 있고, 어쩌다 훅 들어와 받아 치지못 할 때도 있었다. 역시 연애는 타이밍. 탁구공 같이 가벼운 감정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미풍이 불어 공이 날아가 버린 경우도 있었다.


기회비용을 생각한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감정과 시간이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연애 또한 내가 가진 자원의 투자니까 신중해져야 한다. 연애의 기회비용을 따져 포기하거나 감정만 박제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여자 쫓아다녀보기도 하고, 남자 친구 있는 여자를 혼자 좋아해 보기도 했던 피 끓던 혈기는 종이컵에 얼마 남지 않은 커피처럼 잘잘하게 식어있다.



친한 동생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본 얼굴들과 커피 한 잔 하며 밀린 근황을 압축해 주고받았다.

“딸 낳았다며! 축하한다. 이쁘겠다.”

“이사한 집은 어때? 역시 집은 하나 있어야지.”

“진급했다면서? 이직인가?”

“걔도 결혼한다던대. 만난 지 얼마나 됐더라.”

“걔랑 걔 이혼한대. 결혼한 지 얼마나 됐더라.”



이런 행사 자리가 아니면 당최 만나기 쉽지 않은 요즘이다. 좁아터진 자취방에서 열댓 명 모여 팅팅 탱탱 프라이팬을 주고받던 우리는 결혼식장에서 팅팅 부은 얼굴로 탱탱했던 그때를 얘기했다. 그래도 오늘은 다행히 장례식장이 아닌 결혼식장이다. 오전 결혼식은 오는 이나 하는 이나 서로 피곤하다고 말하며 결혼식 별점도 매겨봤다. 요약된 근황을 강속구로 뿌렸던 티타임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툭 투둑, 비가 쏟아졌다. 멋 부리고 오느라 다들 우산을 안 챙겨 왔다. 나는 차에 우산이 몇 개 있다고 말했고, 동선이 비슷한 몇은 같이 차에 탔다. 다음은 누구 결혼식이지?라고 말하며 그때 보자고 했다.


아로아는 비를 맞으며 떠내려간 산딸기 바구니를 구해준 네로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감정에 의심은 없고 확신은 충분하다.


‘네로와 아로아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였으면 좋으련만.


만화영화도 현실도 그게 참 어렵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어린 소년 네로도 저렇게 열심히인데 나도 뭔가 해야지. 손가락으로 카톡창을 잔망스럽게 휘저었다. ‘주말에 뭐해?’라고 쓰려다 전송은 못 눌렀다.



비는 내리고,

산딸기 바구니는 떠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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