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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Jan 03. 2018

배가 아픈 아버지는 수액을 맞고

병원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쓴 문장

사사로운 특별함을 기대했던 시간에 기대하지 않았던 공간에 던져졌다.


배가 아픈 아버지는 수액을 맞고, CT촬영을 하고, 누워서 의사를 기다렸다. 누리끼리한 백색 조명 아래 서성이며 흔치 않은 불편한 표정을 지은 사람들 사이에 속해있으니, 나도 저런 표정이겠거니 싶었다. 삑삑 거리는 경고 소리, 전화 소리, 어떻게 아픈지 묻는 소리, 환자를 걱정하는 보호자의 소리 속에서 나는 조용히 입 다물고 아버지 머리에 내 허벅지를 내어줬다. 그도 이젠 늙은 아저씨가 아닌 노인의 냄새다. 기 시간 기다리다 의사 선생님이 검사결과 몇 마디 건내준다. 긴 시간 또 싸워야된다.


아버지는, 십년은 더 살아야되는데, 라고 말했고, 나는, 이러다 오년도 못 가것어요, 라고 농쳤다. 싸한 기운이 내 왼쪽배를 스쳐지나간다. 어리둥절한 고통 섞인 타인의 시선이 교차하는 응급실에서 한 숨 몰아쉬었다. 들숨 끝에 의료용 알콜 냄새가 턱 걸린다.


목숨을 담보로 한 몇 가지 서류에 서명을 하고, 수술실로 아버지를 흘려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없다. 그저, 이따 봐요, 라고 말했다. 배가 고파 병원 구석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햄에그 샌드위치와 바나나 우유를 집어들고 긴 의자 한켠에서 씹어 삼켰다. 삶의 경계와 허기는 얄궃게도 자주 내 앞에 고개를 들이민다.

익숙하게, 입원 수속을 하고 일반 병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익숙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며, 익숙한 쓴웃음 지었다. 어떨땐 서투름이 더 좋기도 하다.

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허기 진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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