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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옴 붙은 날

다섯 마리 옴

by 양우정 Feb 10. 2025

2025년 2월 6일 목요일!

재수에 옴 붙은 날의 서막은 전날 저녁에 시작되었다.


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소파에 의지하여 반쯤 가사상태로 TV를 보고 있었다. 업무 관련 알람음으로 설정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사이렌 소리는 고객이 앱에서 새로 예약을 하거나 취소, 날짜연기 등을 하면 울린다. 내일 오전 10시에 예약을 한 고객이 갑자기 취소를 하여 사이렌이 울렸다.


사유는 갑작스러운 미팅 일정이라고 한다. 그럴 수 있다.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 일은 생긴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다음날을 맞이했다.(그러나 그 일은 다섯 마리 옴 중에 첫 번째 옴이었다)


2월 6일 아침, 다른 예약이 들어와 출동했다. 차종은 BMW 520i다. 요 며칠 동안 세차한 차량들은 눈길 주행으로 인해 외부가 엉망이었다. 튀어 오른 흙탕물이 굳고, 제설제인 염화칼슘을 뒤집어써서 누렇다 못해 하얗게 그러데이션을 그리고 있었다.

2번째 옴2번째 옴

이 차 역시 남의 차 부럽지 않게 오염이 심했다. 차키를 건네받고 세차 전 사진을 찍는다. 외부의 전, 후, 좌, 우, 측면, 이상한 부분(기왕의 스크래치, 기왕의 파손)을 중점으로 찍는다. 물론 고객에게 세차시공 완료 후 세차 전후의 비교 사진을 보내기 위함도 있지만, '내가 저지른 게 아니에요'라는 증거 사진이 되기도 한다.


내부의 바닥 매트를 들어내고, 도어포켓에 있는 잔짐들도 봉투에 담아 빼낸다. 트렁크를 열어 짐을 빼낸다. 이렇게 내부 정리를 하고 나면 스팀세차기의 예열이 끝나고 압력도 차 올라서 스팀을 쏠 준비가 완료된다.


스팀세차기에서 뻗어 나온 호스를 차량을 한 바퀴 돌아 시작점으로 가져와서 초벌 세차를 한다. 초벌 세차는 타월로 밀어가며 닦기 전에 스팀+압력을 통해 차체에 달라붙은 이물질을 떨어뜨리기 위함이다. 이 과정 없이 다짜고짜 타월로 밀어 대다간 차체에 손상이 가기 십상이다. 그렇게 초벌 세차를 마치고, 꺼내둔 바닥매트와 내부틈새에도 스팀을 쏴줬다. 이제 반 건조된 타월을 들고 다시 시작점으로 가서 미트질을 할 찰나다.


"여기서 세차하시면 안 됩니다."

"네?"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3번째 옴3번째 옴

"저는 여기 자주 오는데요?

어제도 왔고, 지난주도 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왜...?"


"바닥이 오염되고, 위험하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와서 관리사무실에서 앞으로 금지한다고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그럼 입주민들에게 알리시고 이렇게 따로 예약을 하지 않게 해야 하지 않나요?"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내부에도 공문을 붙이고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4번째 옴4번째 옴

황망하게 꺼내두었던 바닥매트, 도어포켓의 잔짐, 트렁크의 짐들을 원위치시킨다. 외부스팀 미트질, 왁스 미트질, 내부 바닥청소, 내부 미트질, 내부 유리창 미트질, 타이어 휠 클리닝, 외부 유리창 미트질이 실행되지 못했다. 고객에게 전화를 하니, 고객도 황당해한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지하 4층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어제 취소된 한 건이 떠오른다.


"어째 오늘 운수가 사나운데? 조심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던 순간!

뱀처럼 똬리 틀어진 지하주차장 출구벽에 타이어 휠이 "끼이이이익'하고 쓸리는 소리가 들린다.


'역시, 재수가 없는 날이었어'

'이렇게 연달아 터지는데, 조심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을까?' 4 연타로 옴에게 물려 기고 나니까 이건 내가 어찌어찌해서 피해 갈 수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세차 중간에 빠져나왔으니 1시간 여유가 생겼다.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사 마시며 솟구치는 코티졸을 달래 본다.

'재수 없는 일이 연달아 4번이나 일어났으니 이젠 끝났겠지! 뭐 또 생기겠어?'라고 생각하며 다음 차를 향해 출발한다.


 이번 차량은 프리우스 V다. 연식이 오래된 차량으로 외부는 스크레치가 많고, 곳곳이 찌그러져 있다. 새 차라고 해서 세차요금이 싸지 않듯이 헌 차라고 해서 더 비싸지는 않다. 오히려 스크래치 많은 차가 세차하기엔 마음이 편하다.


작년에 세차를 마치니 어떤 차주가 매우 좋아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데서 세차하면 와이퍼 아래 안쪽 부분은 잘 안 닦아 주는데 사장님은 거기까지 꼼꼼하게 닦아 주셨네요?"


어찌어찌하다가 더러운 것이 보여 닦았는데 잘 닦아지지 않아서 오기가 생겨 사다리까지 타고 올라가 손을 쭉 내밀어 닦은 결과다. 평소에는 그곳을 깨끗이 하기도 하고, 대충 하기도 했는데, 고객으로부터 칭찬을 들은 뒤부터는 중점 관리 대상이 되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보닛과 맞닿아 있으며 와이퍼가 숨어드는 그 공간은 깨끗이 하기가 좀 어렵다. 실외 주차를 하는 차량들은 그 안쪽에 각종 낙엽(침엽수, 활엽수)이 세로로 꽂혀 있다. 그것을 손으로 일일이 빼내고, 송풍기로 어내고, 스팀을 쏴서 먼지를 잠재운  뒤 손으로 닦는다. 좀 성가신 작업이다.


또 한 가지 어려운 점은 와이퍼가 세워지는 차량이 있고, 세울 수 없는 차량이 있다. 물론 시동을 걸고 와이퍼를 유리창 위로 올라오게 하여 멈추고 세우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방법도 차량마다 죄다 제각각이라서 와이퍼를 세울 수 있는 것은 세워서 하고, 세울 수 없는 것은 살짝살짝 들어가며 작업을 한다.  


지금 하고 있는 프리우스 V는 와이퍼를 세울 수 있기에 세워서 작업을 했다. 와이퍼가 들어가는 안쪽 부위를 닦아내다가 세워진 와이퍼를 살짝 건드리니 유리창 쪽으로 '퍽'하고 내려갔다.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다른 소리도 났다.

'퍽' 이후 '찔그럭' 하는 소리다.


뭐지? 하고 살펴보니 와이퍼 날 쪽 부분 위에 있는 플라스틱이 부러져 있다. 몇 년은 갈아 끼우지 않은 듯 와이퍼 고무날은 이빨이 빠져 있었고, 플라스틱은 하얗게 색이 바래 있었다. 그러나 사고는 사고다. 사나운 일진은 아마도 해가 떨어져야 끝나려나 보다.


와이퍼가 급작스럽게 내려가서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여기며 고객에게 상황을 알리고 와이퍼 교체 시에 원하시면 반액을 드리겠다고 하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다음 차를 하기 위해 하남 미사에서 성남 위례로 출발한다.


이쯤 되니 지난날 내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복기를 하게 된다. 동시에 기대가 된다. 다음 차에서는 어떤 악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평소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미신을 믿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다음 차를 하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 사나운 오늘의 일진도 끝이군!"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휴대폰에서 사이렌이 울린다.


다섯 번째 옴다섯 번째 옴


다음 주 예약고객의 취소 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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