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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의 나

신박한 방법은 없다.

by 양우정 Feb 17. 2025

월요일은 00 전기자동차 시승센터에 가서 정기세차를 합니다. 근 4년째 매주 월요일마다 하고 있습니다. 시승센터이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월요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진행했습니다. 주어진 차량은 7대입니다. 경차, 승용차, SUV 등 차종도 다양합니다. 불특정 하게 한 대씩 들어오는 예약 보다 정말 수월한 현장입니다. 물론 한대 당 매출로 따지면 저렴한 편이지만 차량들이 한 곳에 모여있고, 무엇보다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어 급한 상황이 두렵지도 않은 곳입니다. 일정금액이 보장되는 현장이므로 자영업을 하는 저에게는 마치 기본급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곳에서 이 달까지만 세차를 진행해 달라고 합니다. 잘린 거지요. 여러 경로로 왜 잘린 건지 알아보았습니다. 본사 '비용절감팀(?)'이란 곳에서 아이디어를 냈는데 제가 하는 스팀세차보다 저렴한 업체로 변경하는 안이 있었다고 합니다. 시승하러 온 고객들이야 어느 정도 깔끔하면 되므로 스팀으로 하든, 워터리스로 하든 일정 정도 깨끗하면 그만이니 이 부분이 비용절감을 할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는 후문입니다. 


난데없이 웬 비용절감(?)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4년 가까이 별 불만 없이 진행하다가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사단은 트럼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붙여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트럼프의 정책에 위기감을 느낀 회사가 긴축 경영에 돌입했기 때문이라고 짐작됩니다. 그렇습니다. 제 거래처 하나가 트럼프 때문에 날아갔습니다. 


제가 잘린 것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시승센터 직원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저는 "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거지요. 4년 가까이했으니 오래 한 것도 맞고요"라고 호기롭게 '난 괜찮아!'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속은 쓰립니다.  점심시간도 됐고 해서 짬뽕 한 그릇을 해치우고 잠실 교보문고 쪽 빌딩으로 갔습니다.  스팀기를 켜고 외부부터 초벌 세차를 하고 잠시 쉬는데 레이차량 한 대가 지나갑니다. 가만 보니 저와 같은 랩핑을 한 차량입니다. 가끔씩 서로 다른 차량이 예약이 들어왔지만 우연히 같은 곳에서 타 지역 점장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세 달 된 구리 쪽 점장입니다. 같은 가맹본사를 둔 점장입니다. 제가 반가운 것보다 더 반가워하며 차에서 내려 제게 인사를 합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구리점장은 제 차의 장비들을 보고 '우와 우와'를 연발합니다. 

"점장님 차량을 보니 완전 프로처럼 보여요" 

이런 일을 잘 모르면 느낄 수 없지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감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심각한 장비 충이거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구리점장이 저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하니 

"외부 유리창, 잔사 없이 닦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이 질문을 듣는 순간 저의 머리는 3년 6개월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먼저 창업한 선배 점장들을 만났을 때 똑같은 질문을 했었거든요. 그때는 저녁 식사 자리였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점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맨입에?" 

그냥 가르쳐 줄 수는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말을 해주지 않습니다. 저라고 해서 유리창을 깨끗이 닦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다만, 각자 다른 방식이 있을 테고, 선배의 방법을 한 번 들어보고 좋으면 따라 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저는 그 기간 동안 매월 90여 대의 세차를 했습니다. 3년이니 총 3200여 대가 되겠네요. 차량 1대당 외부 유리창은 앞, 뒤, 좌, 우 해서 4개 면이니 대충 12800면의 유리창을 닦은 셈입니다.


사실 유리창을 잔사 없이 닦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젖은 타월로 1차로 닦고 물기가 마르기 전에 2차로 마른 타월로 닦아내라'입니다. 

봄에는 꽃가루가, 여름에는 직사광선이, 겨울에는 제설제의 염화칼슘으로 유리면이 오염되어 있으니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과거의 저와 같은 질문을 던진 구리점장에게 저는 어떤 답을 주었을까요? 순간 '맨입에?'라고 나도 말할까? 하는 장난기가 발동했지만 있는 그대로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그때 상황이 다르므로 오염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고 추가로 말해야지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렇게 입을 떼려는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칩니다. 

'이 말을 해준다고 해서 알아먹을까? 알려줘서 고맙다고 할까?' 

제 짐작은 '아닐 것이다'였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뻔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십중팔구 그 친구는 속으로 '그건 저도 아는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구리점장이 원하는 것은 아주 '신박한' 방법이 없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그랬거든요. 제가 바로 '신박한' 방법을 원했던 것입니다. 초보였던 저는 제가 모르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친구도 그럴 거라고 확신합니다. 결국 스스로 이 방법 저 방법 써가며 경험치를 쌓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자세히 설명을 해줘도 못 알아듣습니다. 안되면 될 때까지 이 방법 저 방법 쓰다 보면 자기만의 방법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구리점장에게 "안되면 될 때까지 하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교육받으며 배운 정석대로 젖은 타월로 닦은 뒤, 물기가 사라지기 전에 마른 타월로 닦으세요"였습니다. 

역시 그 친구 표정을 보니 시큰둥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해서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3년 전에 시작한 거래처 하나가 끊어졌고, 3년 전에 제가 던졌던 질문을 똑같이 받은 기분이 묘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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