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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Jan 16. 2020

나만의 뮤즈를 맞이하러 갈 시간

[내가 만난 휴먼 디자인]12. 우울함에 대한 새로운 시각

■ 지독하게 우울한 날  


지난  며칠 지독하게 우울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울 때까지 몸이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온통 칙칙한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주변에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스러웠다. 이 세상의 어떤 것에서도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난 이런 날에도 회사에서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내야 했고, 사람들에게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대하기 위해 말투와 표정을 더 신경 써야 했다. 이래 저래 참으로 힘든 날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겐 평생을 걸쳐 이렇게 지독하게 우울한 날들이 시도 때도 없이 꽤 자주 찾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했다. 넌 도대체 왜 이렇게 밝거나 긍정적이지 않냐고.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넌 왜 이 모양이냐고.


그리고  그렇게  우울한 날에는 애써 평소보다 더 크게 밝은 웃음을 지으며 기분이 굉장히 좋은 척 연기를 했다. 그렇게 내 에너지는 더 소진되었다.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리는 우울증.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흔하디 흔한 현상이만 일반적으로 우울감은 유약한 것이나 치료해야 할 질환으로 치부된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나 또한 당연히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기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렇게 숨기려고 애쓰면서 우울감은 더 증폭되었다.   

 

■ 지독한 슬픔을 견디지 못한 천재들   


평소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나,  소위 뛰어난 천재 예술가들이라 불렸던 이들의 비극적 삶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 중에는 유독 매우 짧은 삶의 시간을 가지며 그들의 작품세계만큼이나 극적으로 살다 간 영혼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 중의 대다수는 지독한 우울, 슬픔, 실의, 좌절, 고통 속에서  약물, 알코올, 도박 등에 중독되어 안타깝게 삶을 스스로 마감하기도 했다.


스스로 귀를 잘라 여인에게 선물할 정도였던 미치광이 천재화가 반 고흐.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망상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 예민한 성격에 우울증과 정신질환을 앓았던 버지니아 울프 등, 그들이 천재성을 얻은 대가로 치른 일들은 무척이나 혹독해 보인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신도 위대한 예술의 천재성을 시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던가.  


난 이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를  지독한 우울, 지독한 슬픔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우울, 슬픔이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도 있는 새로운 관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 창조는 슬픔으로부터 나온다


휴먼  디자인은 진화의 본성상 개인이 '슬픔'의 시기를 거치지 않으면 그 어떠한 창조적 변성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비극적인 천재 예술가들이 경험했던 지독한 슬픔은 단순히 질병이 아니라, 그들만의 천재적인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창조의 원천이다. 즉 우울감은 꽃을 피워내기 위한 창조의 고통인 것이다.  


휴먼 디자인은  이러한 창조의 여신이 나타나면 곧 우울함을 동반한 슬픔이 나타나고, 슬픔이라는 변이의 배양기를 통하면서 진화의 잠재력이 꿈들 거리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마치 잘 계산된 인공적인 환경에서 동식물의 세포나 조직의 일부를 가꾸어 기르고 배양하듯, 슬픔이라는 공간에서 승화된 개인은 진정한 창조성을 배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휴먼 디자인은 어느 순간 전에 없던 예상치 못한  새로운 그 무언가가 발현되는 것을  '창조' 또는 '변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노크도 예고도  없이 불현듯 찾아왔다 불현듯 떠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연과 필연을 오고 가는 예술가의 운명을 고백했던 어느 책에서 혹자는, 예술가의 영감은 어디서 오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 기인했을 테다.


■ 슬픔은 그녀를 마중 나갈 채비를 하라는 신의 사인


그러니 어느 순간  창조의 여신이 당신을 찾아오면 슬퍼해선 안되고 행복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자책한다거나, 이 슬픔이 누구 때문이라며 탓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당신의 친구에게 그녀가 찾아왔음을 알게 된다면 왜 즐겁지 않고 그리 슬프냐고,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냐고  이유를 묻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녀가 당신을 불현듯 찾아온다면 다른 사람의 간섭, 침해, 방해 없는 당신만의 공간으로 홀로 들어가서 그녀를 평화롭게 친구로  맞이할 준비를 하면 된다. 그리고 당신의 친구에게도 그녀가 찾아온 것을 알게 됐다면 당신의 친구가  홀로 그녀와 고요하게 조우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면 된다.


기억하자.


그녀가 찾아오는 그 순간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을 잉태하는 창조의 순간이라는 것을.


만일 당신에게 불현듯 지독한 슬픔이 기습한다면, 그것은  그녀를 마중 나갈 채비를 하라는 신의 사인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를 불현듯 찾아온 그녀는, 곧 불현듯 떠나갈 것이라는 것을.


나와 당신의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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