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가이도에 사는 삼 형제

by 남궁인숙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옆좌석에 앉은 젊은 남자는 아이 둘을 돌보느라 본인의 점심 식사는 손도 못 대고 아이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있었다.

젊은 남자는 아이들의 아빠로 보였다.


그의 몸집이 너무 커서 앉아있는 의자가 몹시 좁아 보였다.

아이들은 아빠가 떠 넣어 주는 스파게티를 입에 물고서 앞 좌석에 붙어있는 TV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의 요즘의 성향은 똑같은 것 같다.

아이들의 아빠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틀어주고 조금의 여유를 갖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그대로 잠이 들었다.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옆자리에는 아주 아담한 작은 체구의 젊은 여성이 앉아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여자와 남자가 자리를 바꾼 것이다.

나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여성에게 아이들의 엄마냐고 물으면서 말을 걸었다.

그녀는 일본사람이었다.

좀 전에 남자분이 앉아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더니 아이를 안고 있는좌석에 앉아있는 남자를 가리키면서 남편이라고 하였다.

조금 전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자분이었다.


옆좌석에 아이 둘, 앞 좌석에 아이를 안고 있는 남편 등 다섯 가족이었다.

아이 셋을 둔 젊은 부부의 양육하는 태도가 남달라 보였다.

남자 셋이면 비행기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소란스러울 텐데 아이들은 무척 조용하였다.

아이는 엄마한테 조용히 속삭이면서 물 먹고 싶으니 승무원 부르는 버튼을 눌러달라고 말했다.

비행기를 몇 번 타본 경험이 있어 보였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본인이 앉아있는 좌석 근처에 어린아이들이 앉아 있으면 눈살을 지푸린다.

주변이 시끄럽고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예외인 것 같다.


나는 젊은 여성에게 한국에는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에 가는 게 아니고 발리섬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발리행으로 갈아타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하였다.

홋가이도에서 발리섬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 경로가 있다고 하였다.

첫 번째는 홋가이도에서 도쿄로 가서 인도네시아를 가는 방법과 두 번째는 홋가이도에서 한국을 경유해서 인네시아로 가는 방법 등 두 가지가 있는데 한국에서 가는 게 시간절약이 되어 한국 비행기를 탔다고 하였다.

한국 비행기가 친절하고 편리하다고 말했다.


당신 남편은 아이들에게 참 친절하다고 했더니 남편이 총각 때는 날씬했는데 지금은 스모선수처럼 몸이 커졌다고 하면서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나는 "아마도 당신의 남편이 육아 스트레스가 많아서"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어주었다.

아이가 셋이나 되니 비행기를 타기 위해 들고 다녀야 하는 짐도 많아 보였다.

많은 짐을 가지고 비행기에 탑승하여 아이 셋을 돌보는 두 부부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직업적인 나의 태도일 것이다.

둘째 아이가 자다 일어나서 잠투정을 하였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가진 간식을 줘도 되겠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하였다.

쌀과자를 줬더니 잠투정을 잊고 두 아이는 맛있게 간식을 먹었다.


젊은 여성은 북해도 대학교에서 박사 후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연구원 자격으로 발리에서 개최하는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남편과 이이 셋을 모두 데리고 간다고 하였다.

남편과 함께 연구원 자격으로 참석한다고 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나카무라 마야였다.



남편은 전기공학 전공이며, 자신은 메디컬 전공으로 초대되어 가는데 아이 셋도 데리고 간다고 하였다.

보는 내내 내 눈에는 아이들 돌보는 일이 힘겨워 보였지만, 마야는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고 평온한 인상의 천생 여자였다.

남자아이들 5세, 3세, 8개월이었다.


나카무라 마야는 서른네 살로 아주 웃음이 많았고, 단아하고 참해 보였다.

30분 내내 짧은 영어와 의성어, 의태어를 섞어서 대화를 나눴다.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라고 소개하자 반가워하였다.

자기 아이들도 모두 유아원에 다닌다고 하였다.


나는 마야에게 아이 셋을 키우면서 공부는 언제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마야는 아이들이 유아원에 가 있을 때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일본에서도 결혼을 안 하는 사람도 많고, 결혼 후에도 자녀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한국은 요즘 저출생으로 고민이 많다고 하면서 출산 시 축하금도 백만 원씩 준다고 하니 깜짝 놀라워하였다.

우리는 일본의 유아교육과 복지, 한국의 유아교육과 복지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서로 서울에 올 기회가 있거든 연락하자고 하고. 홋가이도에 오거든 연락하자고 하면서 명함까지 주고받았다.

순수한 한글판으로 되어있는 내 명함 옆자리에 영어로 다시 이름을 써 주었다.

명함 만들 일이 있으면 영어로 명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나와 만나게 되어 유익했다고 하면서 작은 선물을 건넨다.

지퍼백에 보관된 면 손수건인데 아직 미개봉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려고 준비한 것 일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에게 주려고 선물로 가져가는 것 가기도 하고.......

나를 만난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라고 하였다.

선물이라고 건네니 나는 일단 받았다.

내 가방을 뒤져보아도 줄만 한 게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나도 미리 작은 선물 꾸러미를 준비해 둘 걸 하고 후회하였다.

난 줄게 없어서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였다.

하는 수없이 가방 안에 있던 목캔디를 권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받아준다.

예쁘고, 단아하고, 귀엽고, 친절한 여성이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일어서서 나가려고 하는데 반대편에 앉아 계셨던 할머니께서 그녀의 남편에게 큰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어린애들이 너무 착해."

"아주 점잖아. 잘 키웠어요."라고 하였다.

아이 셋 아빠는 못 알아듣는 한국말이지만 의미를 짐작한 듯 빙그레 웃어준다.

젊은 아빠는 업을 띠로 8개월 아이를 앞으로 동여 메고, 나까무라 마야는 짐 보따리를 들고 아이 둘을 앞세워 걷게 하였다.

나는 트렌스퍼하는 곳에서 홋가이도에 사는 삼 형제를 자녀로 둔 그녀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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