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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by 인문학 큐레이터

사람들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부모님이나 매스컴이나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대개 한 곳으로 일정하게 쏠리는 경향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직업이다. 우리는 대개 의사, 변호사, 판사와 같은 전문직이나 대기업, 공무원이 되기 위해 학창 시절부터 대학 진학, 취준까지 스펙을 쌓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을 한다. 사실 이 직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질문하면 진짜 이 직업에 사명을 갖고 준비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으나 대다수는 연봉이 좋아서 복지가 좋아서 이 직업을 선택했노라고 이야기한다.


본인의 적성은 중요하지 않다. 사회에서 그게 좋은 직업이라고 하니까 좋아 보여서 선택한 것이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한번 발 담갔다 나오기엔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짐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노력해서 들어간 회사. 요즘은 대기업, 공기업 심지어 전문직까지 1년 이내에 퇴사하는 비율이 상당하다. 이들은 왜 그동안 쌓아온 노력이 있는데 한순간에 그만두는 것일까?


다녀보면 알게 된다. 이 직업과 이 회사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서 나오는 것이다.


손절 언니도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우리나라 국민들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은행에 취직하였다. 학교 동기들 중에서도 취업을 잘한 편에 속했고 부모님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이 회사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좋았다. 연봉도 좋았고 복지도 좋았고 정년도 보장되었다. 여자 직업 이만한 게 없다며 다들 나를 칭찬했고 부러워했다. 마치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적성에 맞지도 않는 회사를 3년을 넘게 다니면서 내 몸과 마음은 병이 들었다. 매년 새로운 질병에 걸리기 일쑤였고 3년 차에는 돌발성 난청이라는 귀가 들리지 않는 질병까지 걸리고 말았다. 그 연봉과 복지가 뭐가 대수라고 내 몸을 버려가면서까지 그 회사에서 버텨야만 했을까?


그때까지도 난 내 인생을 되찾지 못하였다. 덜컥 겁이 났다. 이 회사를 당장 그만 두면 나를 받아줄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아서였다고 생각했다. 그런 행운이 또 오기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매스컴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하였기에 대기업에서도 신입을 모집하지 않는다는 뉴스를 쏟아냈다.


무엇보다 기나긴 취준 생활을 다시 버틸 자신이 없었다. 매일 '언제 취업하지?'라는 생각으로 한 달에 백만 원도 안 되는 파트타임 급여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살다 간 언젠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퇴사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난 내가 3년이 넘게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고통은 여전히 선명하다.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사회생활의 첫 시작으로 의욕에 가득 찼던, 밝고 초롱초롱한 새내기였다. 하지만, 서서히 무기력과 우울감에 압도되었다.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러워했고 힘겨워 보인다고 했다.


하루 왕복 2시간,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이대로 덤프트럭에 치여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만 싶었고, 손님과 마주 앉아 상담하는 순간에도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었다. 매일 하루가 끝나길 간절히 빌었고, 주말이 너무 소중해 일요일 새벽 2시까지 일부러 잠들지 않으려 했다.


그런 삶을 지속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었고 높은 연봉, 보장된 정년, 타인에게 부러운 삶,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자녀 모두 소중했지만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나 자신이었다. '대기업 직장인'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면 나를 소개하기 힘들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오로지 나 자신으로 홀로 서고 싶었다. 그래야만 매일 하루가 끝나길 바라는 이 절망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과 손절하고 지금 손절연구소의 대표가 되었다. 타인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살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했다. 회사를 손절하고 세상에 나와보니 아직도 타인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타인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정답은 '자기 확신'에 있다. 나라는 존재가 무인도에 갇혀도, 사막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무언의 확신. 그 어떤 일을 해도 성공하리라는 확신. 그 확신만 있다면 더 이상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에서 나 자신의 삶으로 관점을 옮길 수 있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전문직이 되면 넉넉한 급여를 받으며 그래도 의식주는 해결하는 삶을 살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일등 신붓감, 신랑감이 되어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모두가 그런 예측을 할 테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미 타인의 인생과 손절하고 자신의 인생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당장 MZ 퇴사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힘들게 들어간 회사와 손절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림, 노량진에서 줄을 서며 강의를 듣고 공부하던 공시생들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단체로 최면에서 풀려난 것 같다. 물론 난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이 직업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종사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안다.


다만, 겉모습에 현혹되어 자신과 맞지도 않는 직업을 선택하고 보이는 시선에 갇혀 원치도 않는 급여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는 과거의 손절 언니와 같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당신이 왜 지금 그렇게 매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원래 삶은 막연하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고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위와 같은 직종을 선택하면 평타 이상은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택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평준화된 삶'이라고 부른다. 평범이라는 단어에는 함정이 있다. 최악은 면할 수 있지만 최고도 경험할 수 없다.


고만 고만하게 평범하게 사는 게 어쩌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 스스로 발전하기 쉽지 않은 환경에 놓이는 것도 자명하다. 평균 기대 수명은 점점 늘어나 100세가 될 것인데 그때까지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쉽지 않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묻자.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모두가 원하는 '평준화된 삶'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즐거운 삶'인지 말이다.


물론 손절 언니의 주장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안정적인 직장생활과 루틴화 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손절 언니처럼 취향이 명확하고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길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타인의 삶을 사는 당신과 손절하라.


주변 사람과 똑같아지려는 욕심만 손절해도 일상이 한결 즐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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