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친구, 연인이 있어도 외롭습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아무리 즐거운 일이 있더라도, 바라던 것들이 이뤄지는 행복한 나날들이라도 문득 등골을 타고 오르는 간지러움과 함께 외로움은 몰려듭니다. 불쑥 고개를 내미는 외로움을 만날 때마다 이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이 남긴 기억과 경험들이 제 머리나 마음속 어딘가에 우울과 자조로 벽을 쌓고, 외로움을 찍어내는 공장이라도 차린 건지 의심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조금씩 더 어른이 되어가며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보니 외로움은 저만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도 외롭다 하고,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여 많은 월급을 받는 친구도 외롭다 합니다. 예쁜 가정을 꾸려 두 아이를 기르는 선배도, 평생 꿈꾸던 자기만의 서점을 운영하는 어느 사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행복하고 즐거운데 문득 솟아나는 외로움을 느낄 때면 한없이 침잠하는 자신과 마주한다 합니다. 스스로의 행복이 덧없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그 뒤에 고난과 슬픔이 몰려들 것을 지레 두려워하게 되고요.
그제야 알았습니다. 세상에 오직 혼자라고 느낄 때는 나만의 외로움이라 생각했는데 다양한 사람이 함께 살아감을 알게 되니 그것이 모두의 외로움이더군요.
사람들은 모두가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존재라고 하지요. 경험해 보니 정말로 그렇습니다. 겉보기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쌍둥이도 전혀 다른 개별적 인격체고, 부모를 쏙 빼닮은 아이도 부모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타인과 비슷한 구석은 찾을 수도 있지만, 완벽하게 같은 사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유일무이한 존재로 태어나기에, 어쩌면 자연스럽게 외로움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정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외로워서, 외로우니까 오늘도 술을 마십니다. 물론 여기서의 오늘이란,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당사자로서 살아가는 그 매일의 나날을 말합니다.(그렇다고 지금 마시지 않고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그날의 경험과 기분에 따라 마십니다. 외로움을 맨바닥에 깔고 뻗어져 나온 사랑과 우정, 기쁨과 슬픔을 위해 마십니다. 조금 마실 때도, 많이 마실 때도 있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 푸짐한 음식과 함께 마시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고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죠. 혼자 마시기도 하고, 여럿이서 마시기도 합니다.
마시는 행위는 먹는 행위와 다릅니다. 식사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지요. 술은 다릅니다. 마시지 않더라도 삶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 생기는 피해는 지극히 적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가끔 마주하는, 술을 한 잔도 못한다며 손사래 칠 때 받는 눈총 등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마시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필수적이지 않기에, 술잔을 잡으려 뻗는 제 손은 오롯이 스스로의 의지로 내미는 겁니다. 마시는 행위는 그렇기에 더욱 의미 있습니다.
마실 때의 정서가 좋습니다. 혼자 마시며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좋고, 여럿이 마실 때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을 관찰하는 것도 좋습니다. 술과 어울리는 음식의 조합을 즐기는 것도 재밌고, 함께 자리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저의 감상도 흥미로워요. 아침부터 마실 일은 거의 없으니, 마실 때마다 그 시점까지 보냈던 하루의 시간을 곱씹는 것도 좋은 안줏거리가 됩니다. 외로우니까 마시는 저의 시간들은 하루, 일주일 또는 한 달, 어쩌면 몇 년을 그 시점에 집중하는 의식의 순간이자 명상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마심을 이끄는 외로움과 그 행위의 의미를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하면 꼭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냥 마시고 싶으니까 핑계 대는 거 아냐?" 하고 말이죠.
어휴. 예. 뭐... 그럴 수도 있죠. 맛있잖아요. 그냥 마시고 싶을 때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러면 안 될까요? 술 말고 다른 것도 마실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