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또트 / 포토그래퍼 필재
* 윤슬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작년 12월 14일인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했으니까 다이어리 쓴 지는 한 7, 8개월 됐지. 그냥 멍하니 흘러가는 대로 지내는 게, 살아있다는 느낌이 안 들었어. 말 그대로 ‘죽어있다’는 단어가 어울렸지. 나는 살아있다는 충만한 느낌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었어. 내가 어떤 맥락에 놓여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품은 채 나아가고 있는지 인지하면서 말이야.
이걸 계기로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걸 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아는 게, 깨어있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 같아서. 다이어리를 쓰고 나서는 정말 하루하루를 꽉 채워서 소중하게 쓰고 있구나 싶어. 전체적인 내 삶에 있어서, 내가 하루에 어떤 일을 계획하고 수행했는지를 다 알 수 있으니까, 전반적으로 나한테 긍정적인 감정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콱 집어서 다이어리에 넣어두는 거지. 그러면 과거에 대해 후회할 일도 다이어리 속 일기에 담아두는 거고, 내가 뭘 할지 적어 놓으니까 미래에 어떤 걸 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과 불안도 사라지는 거고. 과거랑 미래는 다이어리에 담아두고 내가 온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이어리 역할이 가장 큰 것 같아.
너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는 감정은 무엇이라 생각해?
기저에 깔린 건 아무래도 우울인 것 같아. 요즘엔 그렇게 자주 올라오는 감정은 아니지만, 항상 내 생각과 글쓰기의 원천이라고 생각해. 우울은 질문하게 만들고, 거기에 대한 답을 고민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관통하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해 주니까. 우울하면 내가 왜 힘든지,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힘든지에 대해 자연스레 고민하게 되니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서 이유를 찾고,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결국, 좀 힘들어야 성장하는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기저에 있는 ‘우울’이라는 감정을 애정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들에는 뭐가 있을까.
1, 2학년 때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온전하고 충만하게 살려고 되게 애썼던 것 같아. 그게 진정한 정신적 독립이자 멋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지. 그래서 계속 혼자 돌아다녔는데 하나도 즐겁지 않은 거야.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없이 나 혼자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 가까운 가치관 때문에 더 힘들었단 걸 깨닫게 됐지. 그 이후로는 그렇게 고집하던 마음을 내려놓게 되면서 나아진 것 같아. 과거엔 남들로부터의 완전한 고립 상태였어도 잘 지내는 게 옳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누군가와 떨어져 있더라도 심적으로 연결된 상태가 필요하고, 그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품고 다니는 문장이나 단어가 있다면?
내 인생 모토나 좌우명이라기보다는 ‘어떤 말을 어떻게 건네는 게 좋을까.’ 하는 질문을 품고 사는 것 같아.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어떤 억양과 속도, 높낮이로 말하는지에 따라 상대가 받는 느낌이 다르다는 걸 아니까, 매 순간 고민이 되는 거지. 단순히 내용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말의 느낌에 대해 뱉기 전에 한번 생각을 거치고 말하는 거 같아.
자신의 장점, 단점을 공유하고 알아가는 ‘스왓 스쿨’이라는 학교 프로그램이 있었어. 활동이 끝나고 다 같이 동글게 모여서 소감을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냥 문득 떠올라서 뱉었던 말들이 너무 마음에 드는 거야. 그때 내가 하는 말과 글이 내 마음에 들 때, 내가 제일 행복감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됐지. 원래도 대화나 말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때 행복감을 느끼고 조금 더 그쪽으로 집중해서 고민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 내가 말할 때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까, 고민을 더 깊게 품게 된 거지.
스스로를 억누르는 강박이 있다면?
지나친 배려라는 이름으로 남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 ‘내가 남한테 잘해주는 건 그냥 배려하고 싶기 때문이야.’라고 합리화하는 거지. 내가 가지고 있는, 남한테 잘 보여야겠다는 강박이 그렇게 싫은 건 아닌 것 같아. 내가 나를 힘들게 할 정도로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거나 가면을 싹 다 벗고 나를 마주했을 때, 내 가면 쓴 모습이 싫지도 않거든.
예전에는 현타가 좀 있었지. ‘내가 남한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 하고.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에 따라 가면이 싹 다 다르단 말이야. 이제는 내가 그런 여러 모습이 있구나, 수긍을 하게 돼서 괜찮은 것 같아. 이런 강박이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
인터뷰어 또트 / 포토그래퍼 필재
2023.06.30 윤슬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