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에 대학을 왜 가야 하는가에 이렇다 할 해답을 찾지 못한 나는 반항기가 충만한 학생이었다. 겉으로 폭력적이었다거나 고등학생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등의 사고를 야기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누구보다도 강한 소용돌이가 요동치고 있었다. 소용돌이는 나의 존재와 지금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이유,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답을 요구했다. 역설스럽게도 정답을 맞히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싫었고 문학시간에 시조를 배우거나 역할을 나누어 대사에 감정을 담아 연극을 하는 것이 좋았다. 성적은 애매한 중상위권이었지만 딱 그만큼이었고 더 열심히 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법과 사회라는 과목을 만나고 흥미를 갖는다. 놀랍게도 짝꿍이었던 전교 1등 친구를 뒤로하고 법과 사회 과목에서 1등을 한다. 옆자리 짝꿍의 법과 사회 등수를 어깨너머로 몰래 슬쩍 본다. 3등이다. 내가 1등이 맞다. 그러나 별다른 감흥이 없다. 짝꿍은 나에게 열심히 하더니 잘됐다고 축하를 해 준다. 그리고 법과 사회 과목에 많은 시간을 쏟지 못했다고 한다. 나머지 과목은 전부 1등인 친구가 짝꿍이라서 자랑스럽지만 자기 성적에는 감흥이 없는 나. 그날 저녁 누나와 천장을 보고 누워서 나는 뭐 하는 인간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법을 공부하면 어떤 인간이 되는지 대화를 했다. 세상에 태어난 인간의 존재 자체가 궁금했던 터였다. 그날 이후로 법대에 가서 사법시험을 치는 것이 내 목표가 되었다. 문제는 사법시험 합격이 아니라 시험을 치는 것이 목표였다는 것을 나중에 낙방한 후에야 깨달았다. 열심히 했지만 간절하지 않았던 것이 패배의 요인이었다.
운이 좋게도 시골을 떠나 대학에 입학했고 원하던 법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역시 운이 좋게도 기숙사에 당첨되고, 2월 어느 추운 날 방을 배정받는 소집일에 기숙사 침대에 이불도 없이 하루를 지냈다. 아무 생각 없이 갔던 기숙사에는 이불도 각자 준비해야 했음을 몰랐다. 기숙사에서 만난 난생처음 보는 형들에게 이불을 제외한 식당, 시설 등 학교생활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다시 시골에 내려가 짐을 챙겨 기숙사로 왔다. 개강을 하고 적응을 해 나가던 3월의 어느 날, 새내기배움터라는 이름 아래 신입생들과 재학생들이 대형버스를 타고 1박 2일 여행을 가게 되었다. 짜여진 조와 방을 배정받고 같은 방을 사용할 선배들과 인사를 했다. 거기서 형을 처음 만났다. 큰 키와 다부진 체격, 우락부락해 보이지만 반짝반짝 빛이 나는 피부, 멋지게 세워 올린 짧은 스포츠머리에 홀쭉한 얼굴. 양쪽 어깨에 빨간색으로 포인트가 들어가 있고 모자가 달린 스포츠 브랜드의 얇은 재킷과 청바지, 테가 투명한 안경을 쓰고 말하기를 수줍어하며 조심하던 형. 그러나 웃을 때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하던 형. 웃는 형을 보며 덩달아 기분이 좋아 실실거리며 웃던 나. 형은 바로 며칠 전에 전역을 해서 사회에 적응이 덜 되어 모든 것이 낯설다고 했다. 불과 몇 년 후의 내 모습이었지만 다른 세상 사람을 만난 것처럼 형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싶었다. 졸졸 쫓아다니던 내가 좋게 보였는지 형은 나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내가 기숙사에 산다는 얘기에 형은 환호하며 자주 보자고 했다. 형은 술과 사람을 참 좋아했다. 망할 놈의 술을.
새내기 배움터를 사고 없이 마치고 다시 시작된 학교 생활은 행사가 많았고 신입생들은 예외 없이 참석이 요구되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책을 놓지 않는 법학도를 꿈꾸었는데 현실은 달랐다. 과연 이것이 내가 꿈꾸던 학교생활이 맞나 싶었다. 그리고 4월 어느 무렵 교내에 펼쳐진 벚꽃을 보고 술이 생각났다. 대학은 술을 찾게 만드는 곳이었다. 1년 동안 정해진 행사가 있었고 행사는 뒤풀이가 빠지지 않았다. 4월에는 꽃이 피고 5월에는 중간고사가 끝난다. 이어서 기말고사 전까지 날씨가 너무 좋아 도서관에 가만히 앉아서 창 밖으로 보이는 햇살을 참을 수 없었다. 다들 싱싱한 간을 가졌으니 술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숙사에 산다는 죄로 매일 밤 술자리에 불려 다녔다. 덕분에 외로운 저녁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고 큰 산과 같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 설계를 배웠다. 그리고 언제나 옆에는 형이 있었다. 1학년때는 학점 관리만 잘해 놓고 놀고먹는 것이 당연하다는 선배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군대를 다녀오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니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이어서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사장님께 소주 한 병 추가를 외친다. 어느새 1학년만이 누릴 수 있는 생활에 적응해 버렸고 시험기간이 아니면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선배들을 잘 둔 덕분에 값비싼 책들을 공짜로 물려받았고 지칠 줄 모르는 주량도 공짜로 물려받았다.
어느 날, 만취가 되어버린 나를 형이 기숙사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기숙사는 학교 정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높은 언덕을 계속 올라가야 했는데 맨 정신이라도 숨이 차고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런 길을 동생이 걱정된다며 바래다준 것이다. 당시의 기억이 온전하지 않지만 형은 나를 침대까지 눕혀주고서 같은 방을 쓰는 컴퓨터공학 3학년 형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 많이 취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신이 들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난다.
형은 주말이면 조용한 학교에 혼자 있을 나를 걱정하며 형과 친구들이 만든 축구 동호회에 축구를 하러 오라고 했다. 나는 축구를 참 좋아했고 형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좋았고 감사했다. 덕분에 형 친구들도 알게 되고 형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형은 학교에서도 대장이었고 친구들과 있을 때도 대장이었다. 형은 대장답게 골키퍼를 보았다. 그러나 실력은 인간미가 있었고 입을 쉬지 않았다. 골키퍼는 말하느라 바쁜 포지션임을 처음 알았다. 시간이 늦어 형 집에서 샤워를 하고 같이 축구를 했던 형들과 다시 만나 저녁 식사를 했다. 망할 놈의 술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1차, 2차, 3차까지 술자리는 길어졌다. 나 역시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지치는 줄 모르고 술을 부어 댔다. 다만 형들은 대화 주제가 좀 더 어른스러웠고 심오해 보이는 무언가가 멋스러웠다. 학교에서 듣는 얘기들은 대부분이 뻔했지만 여기서 듣는 얘기는 모두가 전공이 달라 새로운 주제가 많았다. 그리고 형들은 서로에게 무심하면서도 잘 살피고 챙겼다. 성인이 된 후에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때야 하는지를 배웠다. 나는 한참 어린 후배이자 동생일 뿐이었으나 형들은 내게 존칭을 쓰면서 대우를 해 주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형이 알뜰살뜰 챙기는 후배라서 깍듯하게 대우를 해 주었던 것 같았다. 형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어서 나도 모르게 괜히 어깨를 으쓱 대며 힘이 들어갔다. 그날은 형 집에서 하루 신세를 졌다.
형 부모님께서는 주말이면 시골 농장에 가신다고 했고, 저녁 늦게 형의 동생과 어색한 인사를 했다. 나보다 형이었고 형제는 많이 닮아 보였다. 다음 날 아침, 형은 동생이 공무원 시험공부를 한다는데 놀고만 있다며 나에게 동생에 대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형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조금은 걱정이 된다고 했다. 동생에 대한 잔소리로 시작했지만 사실은 형 스스로에게 하는 잔소리와 동생에 대한 걱정 어린 얘기였다. 듣는 당사자가 없으니 허공에 떠도는 말을 내가 받아 들었다. 이제 막 입학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라고는 잘 될 것이라는 위로 같지 않은 위로뿐이었다. 형은 내가 억지로라도 쥐어 짜낸 말이었음을 알아채고선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른쪽 입꼬리와 볼이 만나며 찡그리는 표정, 그리고 웃을 듯 말 듯한 왼쪽 입꼬리와 볼. 다 이해한다는 듯한, 마치 아버지의 미소와도 비슷한 형의 첫 번째 특유의 표정이 있다.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편안하게 만드는 쪽에 가까운, 불안한 상황을 금방이라도 해결해 낼 것만 같은 표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다 일어난 동생에게 요즘 집에 늦게 들어온다며 언제 공부를 시작할 것인지 잔소리를 해 댔다. 대학에 입학하고 형을 알게 된 지가 몇 개월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형이 공부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는 심히 당황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