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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유 Sep 30. 2024

[3]

심장이 요동치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시야가 흐리고 전화를 들고 있는 손가락 끝까지 힘이 들어간다. 손과 팔이 떨린다. 쳐다볼 것도 마땅치 않은 암흑 같은 휑 한 집 안에서 두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좌우로 흔들린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사실이냐며 수십 번이고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얘기로 장난을 칠 형님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또 알고 또 안다. 형이 어떤 사람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히 형을 가지고 이런 장난을 치겠는가. 내가 들은 얘기가 사실임을 안다. 내 안에서 이 얘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정신을 잃지 말고 숨을 죽이라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진짜 사실이 되고야 만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사실임을 알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진짜 사실이 되어버리니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안된다고 외치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사실이어서는 안 된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뭐든 좋으니까 아무거나 떠올려서 막아보라고 한다. 


"네?...... 아... 안 돼요!"


방금 안된다고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 안 된다는 말이다. 잠깐이라도 막아보라고, 나도 손을 더할 테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지연시켜 보라고. 우리가 힘을 합치면 막을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 버텨보자고. 안 되는 게 어디 있느냐며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길게 말하는 시간마저도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온 말이다. '안 돼요!', '안 돼요...', '안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왜. 왜. 왜. 왜. 왜.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세상에 지금 보다 무기력한 순간이 있을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처절하고 또 처절하다. 분명히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말을 들었지만 내가 그 말을 들었음을 알고 싶지 않다. 모르고 싶다. 그 순간만큼은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내가 나를 지우고 싶다. 한 방울에 그쳤던 눈물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소리 없이 줄줄 흘러내린다. 집 천장을 본다. 형과 마주 보고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이뿐일 것만 같다. 까마득한 천장을 보고 있으면 형이 있는 곳으로 통하는 길이 되어 형도 내려다보지 않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형을 마주할 수 있는 통로라도 생겼다고 믿을 수 있지 않을까. 불을 밝히지 않아 어두워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사방이 더 어두웠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형을 더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여기저기 켜진 다른 집들의 불빛과 울퉁불퉁하게 못 난 빛을 비추는 달이 원망스럽다. 더 짙은 어둠을, 형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유일한 어둠을 밀어내고 있는 저 불빛들과 달에게 왜 그러느냐며 울부짖고 싶다. 


형은 없는 것인가. 더 이상 형을 볼 수 없는 것인가. 이상하다, 그리고 어색하다. 전화를 걸면 언제나 같은 말로 전화를 받는 형이지 않은가. '어~ 동아'라고 편하게 외자로 이름을 불러주며 내 존재를 인정해 주고 형의 존재를 알려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젠 형이 없다고 한다. 기분이 좋을 때, 바쁠 때, 피곤할 때 목소리 톤만 다를 뿐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에 있었던 형이다. 그런데... 나는 형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영혼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빈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만 같다. 감각이 점차 사라지고 나를 인지하기가 어렵다.


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하늘에 붕 떠 있는 것만 같다. 세상 모든 것이 멈춰 섰다. 어둡고 고요한 아슬아슬한 집이, 달 빛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는 새까만 집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리길 바란다. 그래서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소름 끼치게 차갑고 까맣게 무너져 가는 마음에서 멀어지고 싶다. 이 모든 것이 거짓이길, 누군가가 설계한 판에서 하나의 장기 말에 불과하길. 언제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기를.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나는 얼마든지 설계자의 꼭두각시가 되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테다. 형과 다시 마주하고 대화하며 형의 존재를, 형이 숨을 쉬고 있음을, 같은 하늘 아래 있음을 느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고 또 보고 싶다. 형을 있음을 알고 싶다.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을 길이 없다.


"새벽에 사고가 있었어... 교통사고가... 경탁이라고 너도 보면 알 거야. 다 같이 경탁이 개업식에 갔다가 축하 자리가 늦게까지 이어져서 새벽에 흩어졌는데..."


형님은 형이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교통사고는 뉴스에서만 접하던 나와는 거리가 먼 사건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형에게 교통사고가 났다 한다. 


"새벽에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다 사고가 났고 쓰러져 있던 형을 뒤에서 달려오던 다른 차가 그만... "


입을 틀어막고 숨죽이며 가만히 들었다.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아야 했다. 형이 처했을 사고 상황을 생생하게 현장을 느껴야 했다. 형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마음으로라도 함께 해야 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니, 아픔을 느낄만한 시간은 있었을까. 형은 그 짧은 순간에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로 한 순간에 형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사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순간에 형은 어땠을까. 숨이 꺼져감을 느낄 시간이라도 있었을까. 새벽에 사고가 났는데 왜 이제야 연락이 온 것인가. 더 빨리 형의 소식을 알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차갑게 식어가는 형의 옆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면 그 식어감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기적이 일어나 차가움이 다시 온기를 갖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형님은 형의 핸드폰이 다른 핸드폰과 바뀌어서 신원 확인이 늦어졌고 사고 확인 등의 절차가 있어서 지금도 경황이 없다고 했다. 이제야 급하게 장례식을 구했고 형 동문의 연락처가 나밖에 없으니 직접 연락을 돌려달라고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형의 소식을 빨리 전하는 것이 내가 할 일임 인지하고서야 희미한 어두운 빛이 눈에 들어왔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의식하고 있던 정신도 반쯤은 돌아왔고,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이 붕 떠 있던 몸도 절반의 감각이 돌아왔다. 무척 괴롭고도 슬픈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어나 꿈과 현실이 반쯤 섞여있는 몽롱한 상태. 얼른 현실로 돌아와 깊은 안도감으로 모든 것이 다 꿈이었음을 알아차려야 하는데, 그래야만 하는데, 온전히 현실로 돌아오질 못하고 있다.


저장된 전화 목록을 순서대로 내려가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받고 소식을 전해 들은 동문들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하지만 담담함에서 뻗칠 감정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기에 겁이 났다. 내 감정을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와중에 동문들의 감정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른 동문들에게도 연락해 줄 것을 부탁하고 도망치듯 전화를 끊고 전화를 계속해 나갔다. 수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음에도 대부분이 통화가 되었다. 통화 연결이 되지 않으면 제발 확인해 달라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뒤늦게 메시지를 확인하고 전화를 해온 동문들에게 사고 경위 등을 설명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아픔이 줄줄 흐르며 아무것도 모를 어둠에 잠식되고 있다. 시야가 어둡다. 몸에 힘이 빠져나가 구겨진 종이가 되어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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